연예인 섭외 대첩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7

by 박지아피디

● 전쟁의 서막 1 : 토크쇼 춘추 전국시대 - 연예인 섭외 대첩

그 후 <행복 탐험>, < 행복채널>, < 여유만만> 등 kbs 아침 토크쇼를 무려 3년이나 계속했다. 편집으로 어엿한 피디가 되고 나서 날개를 달았다.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게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매 라운드 적을 격파해 나가면서 힘이 세지고 아이템들을 획득해 가듯이 연예인 토크쇼는 나에게 중독적인 마력이 있는 장르였다. 일단 호흡이 매우 빨랐다.


주중 데일리 토크쇼인데 5개의 외주제작사가 거의 한주에 하나씩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월화수목금금금의 나날들을 이어갔다. 거의 한주에 하나씩이란 말은 이러하다. 제작사가 무려 다섯 개나 되지만 가끔 섭외가 펑크 나는 제작사가 있기에 어떨 때는 다른 제작사가 그걸 메꾸며 주 2회를 제작해야 하는 것이다. 글을 흐름상 아시겠지만 그 펑크는 주로 내가 메꾸었다. 약졸 박지아 PD는 점점 중원을 장악해나가는 무림의 고수가 되어갔다.


그렇다. 어쩐지 나는 섭외를 너무 잘했다. 토크쇼는 연예인 섭외가 90%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연예인에 대한 남다른 친근감을 가지고 자라난 덕분에 연예인들을 공략하는 법을 동물적으로 알아챘다. 마치 피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나타나는 상어 독수리 하이에나처럼 연예인들의 아킬레스건을 잘 알아냈다. 아킬레스 건이란 것은 그들의 약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르면 자신도 모르게 허물어지는 버튼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자존감, 가족, 허세 등 각각 다양하다.

할머니의 술집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어른들을 관찰했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 패턴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해야겠다.


한 번은 아주 나이 많고 인기 많은 할머니 연예인 두 분을 섭외할 일이 있었다. 한분씩만 나와도 시청률이 엄청난데 나는 두 분이 같이 나오면 정말 토크가 폭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 두 분은 무엇으로 버튼을 삼아야 할 것인가? 나는 즉각 알아챘다. 하얀 돈 봉투다. 보통 출연료는 방송 나간 후 익월 말에 개인통장으로 입금된다. 그러려면 출연하고도 거의 두 달이나 세 달 후에 숫자로 아무 의미도 감동도 없이 전해진다. 이른바 언택트 선물인 것이다. 할머니들은 그런 거 싫어하신다.


대빵 피디님께 말씀드려서 나는 두 분을 오늘 당장 섭외해 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출연료를 좀 미리 달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대빵 피디님은 전형적인 츤데레셨다. 항상 야단 먼저 치시고 잔소리 2시간 정도 하다가 내 뜻대로 쓱 해주셨다.


나는 토크쇼 출연료 50만 원씩 하얀 편지봉투에 두툼하게 넣어서 두 분이 촬영 중이신 KBS 드라마 녹화장으로 달려갔다. 생전 일면식 없는 나의 손에 이끌려 나온 두 분은 내 섭외 제안을 당연히 거절하셨다. 토크쇼 나가서 할 말이 없다. 시간이 없다 등등 거절 레퍼토리를 암송 잘된 시조처럼 흥얼흥얼 읊으셨다.


나는 두 분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떡 내놓았다. 저의 회사는 출연료를 미리 드립니다. 할 말 있으실 때 나오시면 됩니다. 두 분은 엄마에게 한방 먹은 나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처럼 입을 떡 벌리셨다. 그리고 순한 양처럼 정말 깨알 같이 스케줄로 꽉 찬 너덜너덜한 수첩에 바로 다음 주 녹화 날짜에 동그라미를 쳐 주셨다. 갑작스러운 현금 수령에 갑작스럽게 토크쇼에서 할 말들이 많이 떠오르신 것 같았다.


두 분에게는 입 발린 출연 명분이 필요한 게 아니다. 두 분처럼 나이 드신 분들은 정확한 것을 좋아하신다. 그 수많은 세월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간지러운 혓바닥으로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다가 사기 치고 뒤통수친 일을 많이 당하셨을까? 결과는? 당연히 뒤집어졌다. 60년 내공 두 분의 연기자께서 120년의 연기 인생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하이라이트만 말씀해 주시는데 그 어찌 재미가 없으리오.


그렇다고 아무 연예인에게나 다 하얀 편지봉투에 담긴 출연료를 내밀며 녹화 스케줄을 잡으려다가는 딱 싸대기 맞기 십상이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뭐가 아쉬워서 돈 50만 원에 자기 인생 얘기를 다 털어낼까? 사람 봐가면서 전략을 짜야한다. 부자 할머니 연기자들에게도 돈이 필요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알아봐 주는 20대 어린 피디가 귀여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절박하고 진심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아셨으리라.


토크쇼는 일을 해나가는 그 자체가 배움이었지만 수많은 연예인들이 하는 인생 얘기를 듣는 것이 정말 꿀이었다. 어쩜 그렇게 우여곡절들이 많고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들 하셨는지... 그들 대부분은 어려운 역경을 웃음으로 승화해 나가셨다. 긍정 에너지가 뭔지를 나는 그들을 통해 배워나갔다.


사람은 모두 한 권의 인생 책이라고 한다. 나는 어린 나이부터 토크쇼를 하면서 많은 인생 책들을 읽었다. 3년 동안의 토크쇼는 나의 독서량을 엄청나게 늘려준 고마운 프로그램들이었다. 이외의 나의 방대한 섭외 스토리는 <섭외 십략>이라는 챕터에서 후에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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