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를 훔쳐라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6
● 테이프를 훔쳐라 - 손에 땀을
쥐었던 입봉 도둑질
인간의 땅에서 감독님과 공동 연출하시던 대빵 피디님이 홈쇼핑으로 이직하지 않고 작은 외주 프로덕션을 직접 차리셨다. 이 피디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내가 드라마 현장에 출근하자마자 난봉꾼 같은 박지아를 빼 달라고 하셨던 바로 그분이다. 집안의 개망나니가 효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분께 나는 유일한 직원이 된 거다. 대빵 피디님은 아침에 방송하는 소규모 연예인 토크쇼를 따오셨다. 후에 영입된 다른 선배 피디님과 대빵 피디님과 함께 <행복 탐험>이라는 토크쇼의 조연출을 맡게 되었다.
KBS 별관에 녹화를 하러 처음 방송국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드라마 <인간의 땅>과 실버 프로그램 <언제나 청춘>은 주로 야외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막내 조연출은 방송국에 한 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낡은 창고에서나 맡을 수 있는 쾌쾌한 냄새가 났고 크고 웅장한 스튜디오에 TV에서나 보던 스탠드 카메라들, 높은 천장에 달린 조명들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영화 <바람의 전설>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 백수였던 배우 이성재가 라틴댄스 스텝 한 발자국 떼는 순간 휘몰아쳤던 그런 바람이 나를 감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대학생 때 출근도장을 찍으며 다니던 나이트클럽의 조명과 우퍼의 쿵쾅거림은 정말 애들 장난이었다. 이곳이 바로 어른의 세계이고 여기보다 재밌는 곳은 다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말 그대로 이 일에 미치도록 꽂힌 것이다. 이 곳이 피바람이 부는 예능의 전쟁터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토크쇼는 정말 재밌었다. 연예인을 섭외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구성안을 작성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VCR 영상물을 촬영하고 그것을 편집해간다. 스튜디오에서는 미리 짜인 구성에 맞춰 MC들과 게스트와 이야기를 하고 찍어온 영상들을 본다.
그리고 스튜디오 녹화본을 편집하고 음악을 넣고 방송을 한다. 매주 70분짜리 토크쇼를 한 개씩 만드니 일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나는 스펀지 같은 습득력으로 토크쇼를 만드는 전 과정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나이트클럽에서도 새로운 춤은 내가 제일 빠르게 습득했듯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나도 편집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하도 열심히 하고 편집을 해보고 싶어 하니 선배 피디님이 예고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너무 기뻤다. 다른 방송 예고들을 보면서 나는 저것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다는 조연출의 치기는 차고 넘쳤다. 15초짜리 예고를 만드는데 꼬박 이틀 밤을 새웠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고 자막체를 이것도 넣어보고 저것도 넣어보고 하니 나는 이미 조연출 시절부터 종편실에서 악명 높은 피디가 되어있었다. 남들은 30분이면 끝내는 예고 종편을 5시간씩 붙들고 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걸로 칸 영화제에 출품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배 피디님은 연출도 잘하시지만 특히 미장센이 뛰어난 분이셨다. 화면 효과나 자막을 정말 예쁘고 세련되게 디자인해서 넣으셨다. 열심히 따라 했다. 더 예쁘게 더 세련되게 만들고 싶었다.
선배 피디는 6개월 정도 일하시다가 다른 곳으로 가셨다. 대빵 피디님은 다른 피디를 뽑지 않고 자신이 직접 연출하셨다. 대빵 피디님도 처음 하는 낯선 연예인 토크쇼를 후배 피디가 하는 것을 보고 익히신 것이다. 작가 두 명 피디 한 명 조연출 한 명 이렇게 단출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그 정도 인원으로 제작되었다.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 한번 시작하자면 작가 예닐곱에 피디팀 9명 정도 그리고 촬영과 편집 스텝 등 인원이 다섯 배는 늘어났다. 어떨 때는 조촐하게 4명이서 토크쇼를 만들어내던 그 시절이 그립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각자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수많은 스텝들이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일의 사각지대가 거의 없었다.
대빵 피디님이 직접 연출하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 피디님은 기본적으로 학구적인 스타일이고 그 전 회사 감독님께 일을 배웠으니 질문과 이론에 늘 충실하셨다. 뭔가 새롭고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나에게 구하셨다. 나는 신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그것들이 반영되어 방송이 나갈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옆에서 편집하는 걸 계속 보다 보니 또 슬며시 조연출의 치기가 올라왔다. 예고편 만드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본편도 왠지 내가 더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종편을 마치고 KBS 담당 CP님과 시사를 하면 꼭 여러 개의 수정사항이 나왔다. 나는 수정사항 없이 편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이뷔통 가방보다 편집기를 만지고 싶은 욕망이 더 끓어올랐다. 대빵 피디님께 이제는 내가 본편을 편집해 보겠다고 자신 있게 졸랐다. 한방에 거절당했다. 피디님이 자주 쓰시는 말이 있었다. “택도 없다.” 그 말을 들었다. 드라마팀 촬영장에 갔을 때 제일 앞장서서 나를 쫓아내려고 했던 분이셨으니 영원히 철없는 조연출로만 여기시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네 달이 지났다. 문제의 그날. 나는 거사를 치르기로 했다. 더없이 비장했다. 다들 퇴근한 밤에 나는 자신의 회사에 잠입했다. 비밀리에 일본 장교를 암살하려는 만주 독립군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눈에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초 집중 초긴장 상태였다. 녹화 본 테이프를 가지고 밤새 도둑 편집을 했다. 대빵 피디보다 편집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랐다. 나도 내가 그렇게 빠르게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손이 저절로 글을 쓰게 만든다는 어느 대작가의 말처럼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처럼 미친 듯이 편집했다. 내 생애 최고의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온 우주에 오로지 나와 편집기 그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잘못되면 회사에서 잘리고 영원히 방송 일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압박감과 싸워가며 내가 보기에 더할 수 없이 완벽한 가편집을 해냈다. 목화씨를 훔쳐오는 문익점의 심정이었다. 날이 밝았다. 가편집을 들고 KBS 별관에 있는 본사 종편실에 바로 갔다. 좀 일찍 시작하자고 말씀드리고 종편을 빠르게 시작했다. 대빵 피디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가 지각 출근하는 줄 알고 편집을 하시려고 녹화테이프를 찾는 것이리라. 나는 핸드폰을 아예 꺼두고 종편에 집중했다.
누군들 조연출이 도둑 편집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을까? 원래 예약된 종편 시간이 되어서 대빵 피디는 종편실 감독님께 전화를 하셨다. 편집 일정을 늦추려고 하셨는데 조연출이 와서 하고 있다고 말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오셨다. 모두가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했고 이 일을 저지른 당사자인 나는 유구무언이었다. 무슨 말을 하리오.
대빵 피디는 아무 말 없이 뒤에서 지켜보셨다. 레미제라블의 심정으로 종편을 마쳤다. 편집한 것을 처음부터 다시 보지도 않고 CP님께 전화를 걸더니 시사를 하러 혼자 들어가라 했다. 아마 혼자 신나게 수정당하고 야단 맞고 와보라는 뜻이셨으리라.
이번엔 미지의 신세계를 찾아 떠났던 콜럼버스의 심정으로 종편 테이프를 들고 시사실에 들어갔다. 연출 피디 없이 혼자 온 조연출을 보는 여자 CP님은 의외로 다정하게 맞아 주셨다. “니가 했니? 어디 한번 보자.” 나는 시사를 하는 70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 거라 예상했지만 반대였다. 찰나처럼 70분이 지나갔다. 재밌었다. 수정이 하나도 안 걸렸다.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대빵 피디에게 전화를 걸어 “더 잘하는 대요? 이제 편집은 넘기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는 도둑 입봉을 하게 되었다.
대빵 피디님은 그 후에도 나를 못 미더워하셨다. 하지만 엄청 나를 자랑하고 다니신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