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오렌지족 조연출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5

by 박지아피디

● X세대 오렌지족 조연출 - 사극에서 여권 신장을 외치다


1등으로 합격했다. 순전히 천우신조 조상님이 도우신 거다. 자본이 부족한 외주제작사가 방송국을 개국시켜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부지리로 공채 1기 PD가 된 것이다. 피디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피디가 되었다. 오죽하면 2차 면접 보러 갈 때 강남 나이트클럽에서 막 끄집어낸 애처럼 빨강 머리, 초미니스커트, 12센티 하이힐에 긴 손톱 목에는 가죽 띠까지 둥둥 고 갔을까? 물론 입사 첫날도 정장 따위 입지 않았고 압구정 X세대 스타일 풀풀 풍기며 명품 가방을 매고 당시 회사 선배들 아무도 없던 자동차를 끌고 10분 늦게 출근했다.


기이하게 첫 출근하는 나의 모습에 회사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기를 걸었다고 한다. 일주일 안에 울면서 그만둔다에 과반 수 이상이 돈을 걸었고 나머지는 한 달 안에 그만둔다에 배팅했다고 한다. 선배들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아무도 돈을 따게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25년 동안 울기는커녕 낄낄거리며 아직도 피디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 배정받은 프로그램은 <인간의 땅>이라는 KBS 주말 드라마로 사극과 현대극이 공존하는 대하드라마 막내 조연출이었다. 방송 전이지만 촬영은 여름부터 진행되었고 연출 일손이 부족했던 드라마 팀 선배 피디님들은 신입 PD들이 들어온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배정된 첫날 선배님들은 집단으로 대표님을 찾아가 나를 빼고 일을 당장 할 수 있는 신입피디로 바꿔달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대표님 민속촌 촬영장에 하이힐을 신고 왔어요. 그리고 김혜자 선생님께서 너는 누구니 물으시니 저는 피디입니다 하더라고요. 김혜자 선생님이 황당해서 깔깔깔 박장대소하셨습니다. 자기가 조연출이지 무슨 피디입니까? 염정아 씨한테는 왜 촬영장에 늦게 오냐고 눈 똑바로 뜨고 따지더라고요. 저희가 끌어냈습니다. 당장 바꿔주세요.”라고 당시 회사 차장님이면서 대표님과 <인간의 땅> 공동연출이었던 선임 피디가 나의 어처구니없는 등장을 자세히 묘사했다고 한다.


그때 대표님 왈 “하이힐은 운동화로 갈아 신으라 하고 염정아 씨가 늦은 건 잘못했네. 그 팀에 파견한 애들 중에 박지아가 젤 잘할 거야. 두고 봐.” 그러셨단다. 크으~ 역시 드라마 감독님이시라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르신 거였다. 그분의 예견대로 나는 잘하든 못하든 결국 계속하고 있고 동기 PD 12명은 현재 아무도 방송 일을 하지 않는다.


<인간의 땅>은 MBC만 출연하시던 김혜자 선생님께서 최초로 타 방송국 인 KBS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신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멕시코 미국 등 해외 로케 및 미국의 원로배우인 토니 커티스가 출연하는 등 시작은 정말 화려했다. SBS의 <모래시계>가 나오기 전까지는... 물론 MBC <까레이스키>가 나오는 바람에 체면치레는 하게 되었다.


모래시계는 전대미문의 드라마로 기록되었다. 최초로 4일 연속 방영에 김종학 감독 송지나 극본의 환상적인 궁합 그리고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의 정제된 연기로 퇴근 시계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선발주자였던 인간의 땅은 밀려나고 후발주자이자 80세 노역까지 불사한 김희애 주연의 까레이스키는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어느 날 대표님이 직접 나를 부르셨다. 염정아 씨가 맡았던 금단의 연기와 대사를 모니터를 해달라 하셨다. 내가 가장 전문적이지 않아 시청자의 수준에 가장 비슷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질문은 조선시대에 금단이란 젊은 여자가 두 남자 중에 자기가 맘에 드는 남자를 고르는 장면에서 이게 말이 되는 것 같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표님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여자가 남자를 고를 수 없냐며 감독님은 전근대적인 사람이라며 흥분했다. 뒤에 늘어서 있던 선배들은 낄낄대며 웃으셨고 감독님은 얼굴이 뻘개지셨다. 드라마 속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서 말이 되냐고 물으신 건데 그런 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감독님은 그 후로 막내 조연출인 나에게 의견을 많이 물으셨고 심지어는 그 어마어마한 대하드라마 대본 수정도 맡기셨다. 답은 엉뚱하게 낼 지언정 선배들과 달리 무섭기로 유명한 감독님에게 유일하게 나는 예스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보다 더 신기한 것은 의견을 내면 낼수록 나는 점점 진지해져 갔다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칭찬받고 싶어서 드라마 개론 책도 공부하고 다른 드라마를 참고도 하고 자료조사라는 것을 하면서 노~~ 오력 이란 걸 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사고의 능력을 키워주려면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줘야 한다. 질문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답이 아니라 생각의 방법을 체계화해 나가게 된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감독님이 왜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지 처음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질문 너머를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 정말 단순히 젊은 세대의 의견이 궁금하셨다. 둘째 감독님을 지독히도 무서워해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나의 선배들에게 유치원생처럼 아무 말이나 막 해대는 나로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감독님은 정말 나를 특별하게 아끼신 것 같다.


내가 엉뚱하기만 하고 이리저리 치이다가 결국 지쳐서 피디를 그만두기보다는 훌륭하게 성장해서 좋은 피디가 되기를 바라셨고 질문을 많이 함으로써 참여의식 및 진지하게 사고하게 만드는 특별교육을 해주신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승이 중요하다. 나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대표 호랑이 감독님에게 수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연출의 세계에 발 디딘 후로도 계속 감독님이 내게 했던 수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나에게 던진 질문들에 해답을 찾는 방식으로 기획하고 섭외하고 연출하고 편집했다.


감독님의 질문들은 간단했다 “이게 재밌나? 이게 말이 되나? 이 장면이 필요한가? 흐름에 맞나? 시청자가 이해할까?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답을 내놓아야 하는 나는 다른 많은 상황들을 고려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독님의 질문들이 소중하고 고마워진다. 너무나 소중한 가르침을 뼈 속 깊이 주입시켜준 덕분에 나름의 원칙을 가질 수 있었고 비교적 연구하는 피디로 커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금방 성숙해졌냐면 그건 또 아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배정된 프로그램은 최장수 최초 실버 프로그램 뽀식이 김병조 님이 MC로 진행했던 KBS <언제나 청춘>이었다. 그 팀에 막내 조연출로 배정되자마자 또 구성안을 써보라는 선배 피디 말에 지금까지 한 방송들은 보니까 너무 고리타분하니 바꿔야 한다며 자신 있게 내 나름의 개선안을 내놓았다. 시대에 발맞추어야 한다며 에어로빅도 하고 피자도 먹고 영어를 배우는 코너를 마구 집어넣었다. 선배들은 막 웃다가 한번 해볼까? 하면서 나에게 새로운 코너들을 맡기셨다.


영어 잘하는 내 친구를 강사로 섭외하고 입담 걸걸한 나의 외할머니와 그녀의 친구들을 출연시켜 피자를 먹으며 영어를 배우는 새 코너를 진행했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에어로빅을 하면서 서로 예쁘게 보이시려고 싸우고 식은 피자를 드시느라 다들 복통을 호소하셨고 영어교육은 할머니들 입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난장판이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조연출 생활을 8개월쯤 하던 어느 날. 나의 첫 직장은 수미상관 법처럼 적은 자본으로 케이블 방송국을 출범시키고 적은 자본 때문에 경영난을 겪다가 대기업의 홈쇼핑 채널에 인수되었다. 동기들과 선배들은 대우 좋은 대기업 홈쇼핑 채널로 이동했다. 1년도 안되게 드라마 하나 교양 프로그램 하나 짧게 경험했지만 방송이 내 운명 같았다. 어쩐지 홈쇼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길이 모색될 것이라 생각하고 정든 첫 직장을 나왔다.


첫 직장을 제 발로 나온 건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한 인생 최초의 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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