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비 장성규의 워크맨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9
● 조영남 이경실을 다시 MC로 앉힐 수 있는 사람 누구야? -
아! 아까비 장성규의 워크맨
유튜브 <장성규의 워크맨>은 정말 너무 재미있다. 동시에 볼 때마다 웃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배가 아프고 나를 너무너무 괴롭게 만든다. 왜? 아~~ 나는 왜 저런 걸 만들지 못했을까?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만들지 못했을까?이다. 생각을 왜 못했을까가 아니다. 아니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을 못해낸 것이 맞구나!
KBS에서는 나름 토크쇼의 여왕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주쯤은 되었고 스타데이트 최고의 만남을 무사히 마지막까지 완수해낸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KBS의 시그니처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이 외주제작으로 나온 것이다.
나를 예뻐하시던 여자 부장님은 외주제작국을 떠나 다른 부서로 이동하시고 이번엔 교양국에서 남자 부장님이 외주제작국으로 오셨다. 나를 부르신다고 해서 찾아뵈었다. 그날은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기억이 선명하다.
작고 마르시고 머리는 희끗하나 눈빛만은 책을 억 만권은 읽은 듯 지적인 포스였다. 편안하게 의자를 뒤로 끝까지 젖혀 거의 눕다시피 앉아계셨다. 저러다 뒤로 자빠지면 좀 웃기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이 30살이 다 되어도 깻잎머리에 핀을 꽂고 요란한 복장으로 서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 여기 사람들이 말이에요... 박지아 피디를 만나보라고 하네요. 체험 삶의 현장이 지금 외주로 넘어왔어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 시청률이 음... 좀 마니 그래요.. 그래서 교양국에서 프로그램을 없애려고 하니 사장님이 반대하셨다네요. 공영방송 KBS 간판 프로그램을 없애면 되겠냐고요. 지금 MC가 이계인 아나운서예요. 음... 사실 체험 삶의 현장 하면 조영남 이경실 아닙니까? KBS 본사에서는 어느 피디도 두 분과 일하기 꺼려하네요. 무섭... 다네요. 음... 박지아 피디 조영남 이경실 씨 MC로 다시 복귀시킬 수 있나요? 복귀시키면 체험 삶의 현장 가져가서 만드세요. 네 됐습니다. 가보세요.”하고 읽던 책을 다시 펼쳐 드셨다.
이 말을 듣는데 30분은 족히 벌 받듯 서있었던 것 같다. 부장님의 지령은 FBI 국장님이 신참 요원에게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미션 임파서블을 설명하면서도 그다지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빰빰빰빰 빰빰빰빰 빠 라라~ 빠 라라~ 짠짠. 미션 접수. KBS 외주제작국 사무실은 본관 건물에 있다. 우리 제작사로 다시 복귀하려면 본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을 내려와 약간 긴 구름다리를 건너 신관을 지나서 계단을 내려와 횡단보도 건너 편의점 하나 주차장 하나 건물 하나 지나면 서있는 빌딩 9층에 위치해 있다. 대략 도보 7분 정도면 충~~ 분하다. 스타트!!!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듯이 휴대폰을 꺼냈다. 이경실 씨에게 전화했다. “내가 복귀하면 니가 제작을 따올 수 있다고? 조영남 오빠가 하면 나도 할게.” 신관 구름 계단을 멋있게 뛰어 내려가면서 조영남 씨에게 전화했다. “경실이가 복귀한다면 나도 하지.” 깻잎머리 휘날리며 횡단보도를 사뿐사뿐 건넜다. “영남 아저씨가 경실 언니 출연하면 한 대요.” “그래? 대신 출연료는 KBS보다 두 배 줘야 된다. 그동안 KBS가 우리한테 출연료 너무 짜게 줬어.”
출연료를 들어보니 과연 두 분의 시가보다 한참 적게 받고 있었다. 그 당시 관행이었다. KBS는 다른 방송사보다 단지 KBS라는 이유만으로 정말 출연료를 거의 반값으로 지급했다. 지금 KBS 까는 거냐고요? 아뇨! 앞으로 이 글을 쓰면서 이전에 모든 방송국들이 저질렀던 갑질을 낱낱이 다 깔 겁니다. “알겠습니다. 두 배로 드리지요.”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출연료 협상까지 마쳤다. 미션 클리어. 6분 42초!!!
이렇게 멋있게 섭외를 해서 외주제작을 받아 열심히 만들고 만들어서 죽어가던 체험 삶의 현장을 다시 10%대 이상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데, 유튜브 붐이 일어날 때쯤 나도 유튜브 아이템을 찾고 있었는데, 왜 체험 삶의 현장 같은 워크맨 이런 걸 생각해내지 못했냐 말이지. 나는 정말 멍청하다.
장성규 씨는 그 옛날 조영남 이경실 씨를 보는 것 같다. 아무 말이나 막 해서 그 어떤 kbs 본사 피디들도 오래 같이 일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두 분 기가 너무 셌기 때문이다. 왜 그럼 아무 말 대잔치 엠씨랑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프로그램 하면 대박 터질 거란 생각을 못해냈느냐 말이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면 아 저건 내가 생각한 건데... 아 저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건데... 하는 말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다 멍청한 짓이다. 하면 되지 왜 안 하고 있다가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고 질투하느냐 말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못난 꼰대 라떼의 행태이다. 그러다 노트북을 꺼내 지난 기획안을 들추고 하다가 이내 열정이 식어버린다. 이 짓을 많이도 했다. 하지만 워크맨은 웃기고 나는 라떼에 꼰대다.
꼰대 라떼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미 라떼인데 라떼가 상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라떼에 바닐라 향 시럽을 첨가해 달콤하고 진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 아바라가 되든 아예 달고나 라떼가 되든 맛있고 멋있는 라떼가 되면 되는 거다. 참고로 나는 얼어 죽어도 아바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