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김종욱 찾기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0

by 박지아피디

모두의 김종욱 찾기

공영방송 흥신소

<TV는 사랑을 싣고>


첫사랑은 초등학교 야구부 주장이었다. 그냥 멋있었다. 공포의 외인구단 까치 같다고나 할까? 어린 나이에도 사내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사랑은 교감은 아니었다. 그냥 BTS의 아미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진짜 서로의 호감을 인지하면서 만난 상대는 중학생 때 다니던 교회 오빠였다. 그렇다. 담임선생님께서 문제 삼으시던 그 문제의 교회 그리고 교회 오빠. 내 이름이 박지아라서 나를 별을 담는 표주박이라고 했던 오빠였다.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보들레르처럼 느껴졌다.

이 오빠를 찾고 싶다면? 내가 스타가 되면 된다. 유명 연예인이 되면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에서 나를 집요하게 섭외할 것이고 방송국 놈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이 잡듯이 찾아다니며 기어이 그 오빠를 KBS 녹화장 커튼 뒤에 숨겨놓을 것이다. 그 유명한 시그널 음악이 들리면 걸어 나와 눈물 그렁그렁한 나를 어색하게 안아줄 것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또한 <전국 노래자랑> 만큼 전대미문의 KBS 간판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날렸다, 전국의 첫사랑 들은 자신을 찾아주기 맘 졸이며 기다렸겠지만 스타들은 첫사랑을 찾기보다는 새로운 사랑을 찾기를 원했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섭외가 힘들어져서 6년 사귄 연인들처럼 시들시들 시청률 하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한 외주제작사가 다 죽어가던 <체험 삶의 현장>을 살려놓은 <체험>을 한 KBS는 또 나를 불렀다. 체험 삶의 현장을 잘 만들고 있으니 <TV는 사랑을 싣고>도 한번 잘 살려 보라고... 이즈음 나는 KBS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야구부 주장이 첫사랑이라서 그런가? 내가 6학년 때 국내 프로야구가 첫 출범해서 그런가? 삼성 라이온즈의 첫 팬이자 자체 결성한 혜성 여자 야구단을 창설해서 그런가? 아무튼 나는 30대에 외주제작계의 구원 투수가 되어버렸다.

구원투수는 마무리 투수이다. 즉 경기를 마무리 짓는 역할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또한 나의 주체 못 하는 열정적인 섭외로 다시 시청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쩐지 동시에 나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건 확실한데 누구와 사랑에 빠진 건지 까먹게 된 느낌이랄까? 계속되는 성공으로 인해 나란 사람에겐 절대 올 것 같지 않던 권태기가 온 것이다.


뭔가 더 큰 도전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한 것이 날갯죽지가 자라나는 것 같았다. 나를 낭떠러지로 떠미는 어미 독수리는 없었지만 다 자란 독수리는 둥지를 떠나 비상해야 한다. 그것이 동물의 세계이다. 한 가지 게임에 만랩을 찍은 카를로스 대 군주이자 게임 중독자는 다른 게임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나의 새로운 <김종욱 찾기> 여정이 시작됐다.


나는 정든 KBS도 제작사도 떠나야 했다. 나를 자른 사람도 없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심지어 모두가 말렸다. 이 챕터를 마무리하듯 무엇이 펼쳐질지 모르는 낭떠러지 위에서 비상했다. 2005년 나는 독립을 한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까비 장성규의 워크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