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이름이 그게 뭐야?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1
● 제작사가 랄랄라 온이 뭐야?
마구 삐뚤어질 테다
“네 랄랄라 온입니다.”라고 회사 전화를 받으면 다들 어이없어했다. 특히 안 좋은 일이 있어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면 가관이다. “랄랄라 온은 말이에요?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상황은 심각한데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제대로 웃끼다. 방송국 사람들은 물론 스태프 회사들과 연예인들 할 거 없이 회사 이름을 가지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장난하는 것 같다고.
그렇다. <엿 먹어라> 하는 심정이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30대는 어른이지만 피디 생활 십 년이면 딱 반항기 충천한 질풍노도의 사춘기다. 일을 잘한다고 기고만장해 질대로 기고만장해진 내가 내 회사까지 차렸으니 자만심은 하늘을 찔렀다. [랄랄라 온]이라는 이름은 고지식한 방송계 사람들에게 엿 먹어라 하는 객기가 깔려있었고 나는 방송계의 자유 영혼이 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KBS에서 구원투수니 뭐니 사랑받아 놓고 뭔 억하심정이 그리 많아서 <엿 먹으라>는 심한 말을 하냐고 하겠지만 외주 피디 생활 십 년에 과연 꽃길만 있었을까? 지금부터는 이상한 피디가 차린 소형 제작사의 소꿉장난 같은 탄생에서 처절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쓸 것이다.
방송국의 호화찬란한 각종 갑질들, 외주 제작의 극단적인 열악함 그리고 가장 개방적일 것 같은 방송인들의 보수 꼰대 정신을 고자질할 것이다. 플러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던 하룻강아지 박지아 대표의 어처구니없는 회사 운영 과정도 만천하에 까발릴 것이다.
시작부터가 틀려먹었다. 보통의 경우엔 독립을 한다면 제작할 프로그램을 미리 따 놓거나 어느 정도 방송국과 얘기가 된 다음 제작사를 차리겠지. 청개구리를 조상님으로 둔 것인가 나는 딱 반대로 했다. 아무 대책도 없이 사무실 하나 달랑 얻었다.
예쁜 책상 사고 의자 맞추고 핑크 톤으로 인테리어 한답시고 한 달을 보냈다. 셀 돈도 없고 할 일도 없는데 경리 한 명, 막내 작가 한 명을 정직원으로 고용했다. 그 후로도 셋이서 회사 이름 만들고 명함 디자인하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무려 4개월을 사장님 놀이에 허비했다. 한마디로 돈지랄을 한 것이다.
일천 구백 구십 사 년부터 이천 사 년까지 딱 10년을 채우고 제 발로 나오기까지 나도 번 아웃이 됐었나 보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충전의 시간이었으리라고 포장해 본다. 충전을 대충 마치고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다른 방송국을 어슬렁거렸다. 떠나온 고향땅 KBS는 제외였다.
랄랄라 온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핑크색 명함을 들고 세상에서 가장 나를 미워하는 SBS로 무작정 찾아갔다. KBS에서 내가 맹위를 떨칠 때 가장 치를 떨던 사람이 바로 경쟁 방송국 SBS 차장님이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박지아 피디는 SBS 일 절대 못하게 하겠다던 소문을 풍문으로 많이 들었다. 바로 그분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나는 진정 미친 외주 제작사 대표가 되었다. 제2 라운드 : 쌈닭의 리얼 야생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