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를 떠나 조조에게로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2
● 유비를 떠나 조조에게로 간
관우가 된 박지아 피디
SBS라는 신대륙
삼국지는 대충 읽었다. 어릴 때 만화로만 읽어서 모든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관우를 짝사랑한 조조는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멋진 브로맨스 같은 느낌이랄까?
KBS에서 떠나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나에게 정이라도 떼 주려는 듯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졌다. KBS에서 나는 유비를 모시는 관우였다. 당시 치열했던 공중파 3사의 토크쇼 각축전에서 KBS 다른 제작사들보다 높은 시청률을 항상 유지했다. 또한 3사 중 제일 시청률이 좋았던 SBS도 내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요일이면 어김없이 시청률 1등을 뺏겼다.
나는 단순한 토크쇼를 만드는데 만족하지 못했다. 투철한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으로 <연예가 중계> 비슷한 코너도 개발해 만들었고 <인간극장> 같은 다큐 형식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다루는 등 토크쇼의 형식을 확장해나갔다
욕심을 낼수록 시청률은 올라갔지만 제작비도 예산을 초과하기 일수였다. 초과되는 제작비 충당을 위해 해외여행 협찬이니 인테리어 협찬이니 이런 마케팅 시스템까지 최초로 도입했다.
연예인 섭외와 시청률을 위해 생각해낸 반짝이던 아이디어들은 후에 진정한 자승자박이 되었다. '연예인이 소파나 냉장고를 바꾸고 싶으면 아침 토크쇼에 나가면 된다.’라고 빈정대는 말들이 나올 만큼 상대적으로 힘없는 시간대의 아침 토크쇼는 연예인들의 호구 프로그램이 되어갔다. 결론은 내가 사력을 다해 영끌하며 관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충성심과 정을 확실히 떼 주었던 사건의 전말을 이러하다. KBS 외주 국장님 aka 아주 높으신 분이 나를 부르셨다. 나는 많이도 불려 다니던 피디였다. 그 당시 아주 인기 있던 여자 정치인 당대표를 한번 섭외해 보라고 했다. 그런 분의 그런 말 한마디. 당신이라면 분명히 섭외를 해올 수 있을 거라는 그러한 믿음의 한마디는 언제나 나를 화르르 불타게 했다. 그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칭찬받는 일이라면 브레이크 댄스라도 출 수 있는 고래가 바로 나였고 나를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게 하는 유비는 KBS였다.
정치인이라... 지금은 정치인들이 각종 예능에 나와 집안도 소개하고 부부 침실까지도 다 보여 주는 시대이다. 아니 오히려 홍보를 위해 서로 출연하려는 민주주의적 시대가 도래했지만 당시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11 시대에 잘 나가는 <서세원쇼>도 아니고 일개 아침 토크쇼에서? 졸병 외주 제작 피디인 내가?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섭외하면 되는지만 연구했다. 전략전술을 짜는 제갈량의 심정이었다. 연줄연줄 알아보니 친한 연예인 아버님이 예전에 청와대 출입 기자로 오래 일하셔서 그쪽에 인맥이 많으셨다. 아주 긴 얘기를 짧게 하자면 섭외를 해냈다. 섭외하는데 오랜 시간과 공이 들었고 섭외됐을 때 나도 방송국도 모두 얼떨떨했다.
이렇게 해피엔딩이면 좋았을 텐데...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스튜디오가 아닌 남산에 MC들 모시고 중계차까지 끌고 가서 녹화를 마쳤는데... 이제 방송만 하면 되는데... 방송을 하지 말라는 청천벽력 같은 지령을 받았다. 일명 <물은 셀프> 사건이 터졌다. 야당과 방송국과의 힘겨루기 한판이 벌어진 거다.
야당들과 언론사들이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든말든 연예인 토크쇼가 이 우주의 전부인 줄 알던 나였다. 그 두 고래 사이에서 힘없는 우리 제작사의 새우등이 터진 거다. 여성 당대표를 대변하는 언론인 출신 여성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했다. KBS가 야당 대표를 불러다 녹화를 해 놓고 방송을 내보내지 않는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얘기하는 것을 지켜봤다. 인간적으로는 그분께 물을 갖다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물은 셀프란다.
얘기는 이때부터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난리가 나고 복잡해지자 KBS가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이다. ‘그 야당 대표 녹화는 KBS 본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어느 외주 제작사가 허락 없이 자의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이 일을 벌인 제작사를 중징계하거나 제작 정지를 시킴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라는 식의 KBS의 입장 표명 기사를 봤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럼 내가 KBS 소속 기술 스텝 10여 명을 모두 보쌈해서 데려오고 KBS 소유의 중계차를 훔쳐 몰고 와서 MC들을 겁박해서 몰카처럼 녹화를 했다는 거네? KBS의 관우 박지아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목을 베어 자결하고 내 머리를 들고 다니며 막 방송국에 피를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삼국지 시대가 아니니까. 나랑 아주 스똬~일이 안 맞는 종류의 사건이 터지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차분히 그들이 했던 그대로 따라 했다. KBS 외주 국장님께 전화했다.
“나에게 그분을 섭외하라고 했던 증거와 증인은 차고 넘칩니다. 그 거품 물고 기자 회견하셨던 당 대변인과 나란히 저도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그런 저런 꼴 당하지 않으시려면 저희 제작사에 어떤 징계도 누명도 씌우지 마십시오. 제가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제 저는 저희 제작사와 KBS를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계급장 떼고 붙어 보자는 겁니다. 그럼 이만.”
KBS는 우리 제작사에 아무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아침 토크쇼 <여유만만>, <체함 삶의 현장> 그리고 < TV는 사랑을 싣고> 세 프로그램을 고이 살려두고 나의 유비였던 여의도를 떠났다. 조조가 있는 목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는 스칼렛 오하라처럼...
적토마는 없었다.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