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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Jan 11. 2021

사람이 심보를 곱게 써야지

 나란 사람은 군중에 강하다. 팀워크에도 강하고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도 있다. 남들을 웃기는 것에도 탁월하다. 하지만 왠지 맨투맨에는 정말 취약하다. 너무 부끄럽다. 누군가와 단둘이 있을 때는 빨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밖에 안 든다. 그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예외가 없다. 물론 단둘이라도 일 얘기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다.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일 때 취약하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가도 개인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속으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비웃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개인 간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나이가 많이 들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다양한 방법으로 둘만의 인간관계를 망치기 시작한다. 첫째. 친해졌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장난치거나 놀리고 무례하게 굴어서 그쪽이 화내고 돌아서는 방법. 둘째 너무 정성 들이고  잘해주다가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없다고 여겨서 상처 받고 내가 나가떨어지는 방법. 마지막은 나를 너무 좋아해서 엄청 집착하고 달라붙어서 내가 숨이 막혀 넌덜머리를 내면서 도망가는 방법. 나는 이 세 가지를 골고루 섞어가며 구사한다, 결론은 관계를 망친다.


 관계가 망쳐지면 너무 속상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희한하게 속이 시원 섭섭할 때가 많다. 단지 아쉽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심보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들러 심리학을 얘기하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어봤더니 모든 행동에는 자신의 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반드시 있다고 되어있다. 안면홍조 때문에 쑥스러워서 연애를 못한다는 사람은 안면홍조가 되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쓰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책에 나오는 질문자 청년처럼 그 말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조금은 이해한다.


 그러니까 내 경우로 따져보자면 맨투맨 인간관계를 망치는 목적이 있다는 건데... 인간관계를 망치고자 하는 목적이 대체 뭘까? 어째서 나같이 여러 사람 어울리기 좋아하는 인간이 깊은 인간관계에서는 도망을 다니는 걸까?

물론 오랜 친구 등 몇 명의 깊은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 외에 새로 시작되는 관계에서는 짧고 굵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인간관계를 할 때 이 사람은 인성이 부족해라든가 저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안 되라던가 최종적으로는 내가 저 사람보다 우위에 있기에 내 맘대로 해도 된다. 이런 속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도망가거나 나를 떠나게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이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런 속마음을 발견하는데도 오래 걸렸지만 내가 사람 깔보는 경향이 있으니 진심으로 나쁜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게 더 힘든 일이었다. 대개 인간은 자신이 자신의 행동보다는 실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마련이니까...


 이 즈음에 자꾸 돌아가신 외할머니랑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히 내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니까 옛날 일들이 새록새록 많이 떠오른다.

특히 외할머니께서 늘 지나가듯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사람이 말이야 심보를 곱게 써야지'라는 거였다.


 평생 동안 심보 고약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내 인생에 부침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작 심보가 사납고 고약한 사람은 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둘만의 관계가 되었을 때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것은 어떤 이유로든 내가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애초에 내가 그 인간관계를 망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


 그래 이제 나란 사람 심보 고약했다는 거 발견도 하고 어렵게 인정도 했어. 그럼 이제 어떻게 살래? 어떻게 살아야 심보 고운 사람으로 대변신할 수 있겠어? 잘 생각해보자.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계산 없이 우열 없이 난폭한 자기기만 없이 단정한 마음으로 대해야 되겠어? 안 대해야 되겠어?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라지만 또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다니 잘 노력해보자. 한번 사는 인생 심보 고운 사람으로 살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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