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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Jan 15. 2021

날씨를 많이 타요 그래서 그냥


여보세요? 거기 하늘이시죠? 사실 오늘 고해성사 같은 걸 해보려고 연락드렸어요. 저는 날씨에 정말 취약해요. 딱히 어떤 날씨를 타는 것도 아니에요. 그 날의 날씨가 그 날의 제 기분을 못 맞춰주면 그렇다는 이유로 모든 걸  날씨 탓으로 돌려요. 어제 오후부터는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 날씨도 우중충하기를 바랐거든요. 그런데 한파는 어디 간데없고 내일이라도 봄이 올 것처럼 따뜻하지 뭐예요. 기분이 더 나빠졌어요. 날씨만 풀리면 당장 뛰쳐나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내 탓이 아니라 부질없이 속없는 사람처럼 풀려버린 날씨 탓을 하게 되네요. 오늘은 또 비가 추적추적 왔네요. 비 오는 날 좋아한다고 이런 날씨 분위기 있어 좋아한다고 떠들면서 맥주 마시던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이 가라앉는 기분을 또 저 오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흩뿌리는 비 탓을 하게 되네요. 추운 걸 지독하게 싫어했지만 이번 한파 때는 또 그럭저럭 뜨뜻하게 집에만 있다 보니

오히려 기분은 따뜻했어요. 지난여름에도 비가 계속 왔지만 생각해보니 기분이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네요. 뜨거운 여름을 무지 좋아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또한 기분이 날아갈 때도 기운이 완전히 없어질 때도 있었더라고요. 그런 걸 생각해보니 그동안 저는 날씨를 타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됐더라고요. 그저 그냥 내 기분을 타는 사람이더라고요. 하늘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날씨 탓만 했어요. 하늘은 제 할 일만 했을 뿐인데 제가 너무 경솔했고 이기적이었어요. 그런데도 저한테 아무 말을 안 하시니 제가 더 미안해지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앞으로도 제 기분 탓보다는 날씨 탓을 해도 될까요? 날씨 탓을 하면 그래도 좀 기분이 나아지거든요. 대답이 없으니 허락하신 줄 알게요.

어제오늘 제 기분이 다운된 이유는 날씨 탓이에요.

제 기분이 아니라 날씨 탓이요. 그런 걸로 할게요.



사진 : 우유니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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