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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Jan 14. 2021

서핑의 추억 [2]

발리에서 생긴 일

 발리 도착 다음날 아침.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서핑스쿨 건물로 갔다. 예쁜 카페테리아로 꾸며져 있고 벽마다 나무장으로 짠 천정높이의 서재들에 책이 꽉 차있었다. 밑에는 각종 서핑 용품들과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친근하기도 하고 마치 홍대 북카페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라 안심되었다.


 각각 다른 호텔들에서 온 12명의 이를테면 서핑 캠프 동기들이 모였다. 앞으로의 일정과 주의사항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20 30대 청춘들이었다. 그리고 정말 특이한 것은 12명 전부다 혼자 왔다는 것이다. 그 점은 참으로 위로가 되었고 절대 이들에게 내 나이를 밝히지 말아야겠다 결심했다. 주책도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서핑 옷으로 갈아입고 라커에 가방 등 소지품을 넣고 문을 닫으려는데 자물쇠가 말을 안 들어 대충 닫고 나왔다. 강사가 시키는 대로 롱보드를 머리에 이고 도보로 5분 동안 해변으로 걸어갔다. 12척의 롱보드가 원주민 이순신의 지시에 따라 줄지어 바다로 출격하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롱보드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정수리가 짓이겨져 머리통이 깨지는 것 같고 점점 목이 자라처럼 쑥쑥 눌려 들어갔다. 내가 나를 보지는 못했지만 뒤뚱뒤뚱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누구 아는 사람이 볼까 봐 남사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 쪽팔려 아 쪽팔려 아 무거워 아 더워 아아아 시 X 정말 죽것네. 이것이 진정한 사서 고생이란 거구나. 외화낭비까지 해가며 거금을 들여 내 손으로 고생을 샀구나.' 롱보드를 집어던지고 니킥으로 두 동강 내서 박살을 내버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호기심 많은 내 팔자를 한탄하다 보니 어느새 비치에 당도했다.


 모래바닥에 패대기치다시피 보드를 내려놓고 꾸따 해변을 바라보았다.  정말 큰 바다였다. 바다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결마다 소쿠리에 깨알 박혀 있듯이 서퍼들이 얹혀있었다. 나도 곧 저렇게 될 거니 마음을 진정시켜보자 애써봤지만 곧이어 시작된 보드 지상훈련은 나를 더욱 열폭하게 만들었다.


 12명의 동기들은 자신의 보드들을 모래 해변에 놓고 그 위에 엎드려 누워서 인간 거북이들처럼 모래를 바다 삼아 가짜 패들링을 해야 했다. 모래가 입으로 들어가 서걱서걱 씹히고 땀이 눈을 타고 들어와 선블록 크림과 뒤섞여 망막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정말 서러웠다. 왜 나는 이역만리 외딴섬에 와서 거북이처럼 모래 위를 파닥거리고 있는 것인가? 그 뒤가 더 가관이었다.


 가짜 패들링 연습을 끝내고는 "UP" 이란 구령에 맞춰 엎드려 있다가 화다닥 일어나 보드 정중앙에 스쾃 자세를 취해며 한 번에 착지해야 했다. 양팔은 비스듬히 앞으로 뻗은 채로. 다들 한 번에 쌱하고 일어나서 촥하고 스쾃 자세를 취했다. 나만 끙하고 일어나서 억하고 비틀거렸다. 나만 2 구령 1 업을 하고 있었다. 허리랑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았다. 말 그대로 토가 나왔다. 실신하기 일보직전에 지상훈련과 이론수업은 끝이 났다. 새벽훈련이 끝났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부터는 바다에 들어간다고 했다.


 또 그놈의 롱보드를 이고 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캠프 사무실까지 걸어갔다. 거의 불구가 되다시피 한 몸으로 샤워를 했다. 라커에서 가방을 꺼내 지갑을 보니 환전한 현지 돈이 반 이상 없어졌다. 말하자면 한 움큼의 지폐 다발이 반 움큼으로 줄어 있었다. 담당 직원에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11명의 동기들은 돈을 도난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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