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금붕어의 완전한 사랑법 10

소설 오 마이 베이비

by 박지아피디

PS 예전에 써 놓은 거라 유치한 것 같아 연재를

중단했는데 몇몇 구독자 분들의 요청으로

다시 연재합니다


3월 초 어느 날이었다.

꼬마 때부터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베이비의 ‘진짜’ 친구들과 ‘무조건 달려요~’ 술자리를 한 토요일 새벽 두 시...

베이비는 여느 때처럼 택시 타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내게 전화했다. 혀가 잔뜩 꼬인 목소리로~

“박찌~로~오옹 ~ 음냐. 음냐.. 꺼억~~ 너네 집에 지금 가도 되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 대신 꿩이라더니... 이게 웬 떡이냐? 도 유분수지...’ 나야 뭐~ 너무 좋지...

그래도 나는 베이비보다 어른이다.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외박하면 부모님 걱정하시잖아...?(참으로 가식스럽다)”

“몰라... 오늘은 삐뚤어질 테다”

ㅋ 이쁜 베이비는 참 삐뚤어져도 너무 이쁘게 삐뚤어지시네.

그래 뭐~ 베이비가 청소년, 미성년자인가?

이젠 성인 중에서도 上성인인데... 자기가 잘 알아서 하겠지 뭐~ 하며 “오라~” 컴온베이베~그랬다.

웬일로 술 냄새를 잔뜩 피우며 헤롱 거리는 베이비... 손에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찌롱이 줄려고 세 개 샀는데 가지고 나오다가 엄마한테 하나 뺏겼다”

“이게 뭔데...?”

“아까 버스를 잘못 타서 남대문 시장에 잘못 내려서 간 김에 사 왔어~”

열어보니 일제 때 비누였다.

며칠 전 베이비랑 남대문 가서 만년필 구경하고 쟁반 사고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아 맞다. 간 김에 때 비누 샀어야 했는데... 까먹었네. 히잉~”

“그게 뭔데...”

“으~응. 때 비누로 씻으면 각질 제거돼서 때 안 밀어도 돼. 뽀득뽀득해지고 진짜 좋아. 언제 남대문 가면 사 와야지 했는데... 만년필 보다가 까먹고 안 사 왔네~”

“ 다음에 또 와서 꼭 사자~” 베이비가 내 머리 쓰다듬으며 그랬다.

버스 잘못 타서 남대문 시장에 잘못 내렸다는 건 거짓말이다.

아까 낮 1시쯤 전화 왔었다.

“근데 때 비누란 게 일제도 있고 프랑스 제도 있어?”

“어... 왜?”

“아니, 그냥... 찌롱이가 쓰는 건 뭔데...?”

좀 의아했다. 그때 마침 진짜 급한 전화가 왔다.

“아! 베이비 미안한데... 받아야 하는 전화가 와서... 이따 전화할게...”

그리고 지금 새벽 두 시에 헤롱대는 베이비가 때 비누를 들고 있다.

“찌롱이 쓰는 거 이거 맞아? 일제랑 프랑스제 두 개 있는데 둘 다 살까 하다가 그냥 일제만 세 개 샀어”

아니다. 난... 계란 흰자로 만든 프랑스제 때 비누 세트를 쓴다.

“하나는 들고 나오다가 엄마한테 뺏겼다”

엄마한테 하나 뺏긴 게 되게 억울한가 보다. 두 번이나 얘기하는 걸 보니... 베이비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인데... 이래서 엄마들이 ‘아들놈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 하시나 보다.

베이비는 하는 짓은 애기처럼 귀여운데... 언제나 아저씨처럼 무뚝뚝하게 굴려고 노력한다. 그게 어설프고 참~ 좋다. 나란 사람도 매사 어설프다. 같이 어설퍼서 너무 좋다. 커플 어설픔 커플 신상이 나왔다~

“때 비누” 하면 일제가 원래는 최고일 거다. 내가 남대문 시장 갔어도 일제랑 프랑스제랑 중에 고르라면 당연히 일제 골랐을 거다. 지금 가 어느 때인데... 내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져 프랑스제를 쓴 거다. 서양인 인 프랑스 사람들은 “때”에 대해서 뭘 알겠는가? 로마인이라면 또 모를까? 발꿈치 “때” 만큼도 모르고 만든 걸 거다. 온천과 목욕 문화가 발달한 일본이야 말로 “때”의 파라다이스지... 최고지... 암만... 프랑스와 ‘때’라니... 어불성설이다. 와인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프랑스 고속전철이 떼제베 인가?

베이비 말투로 “에이고~ 야~야야~ 그건 아니다야~ Sorry 리 머치”

때 비누 들고 온 것도 감동인데...

오늘은 베이비가 나 좋아서 죽게 만들려고 작심을 했는지...

“친구들 오랜만에 봐서 기분 좋았나 보네... 많이 마신 거 보니까...”

취한 거 처음 봐서 물었다

“재미 하나도 없었어...”

쓰는 7살짜리 사내아이처럼 일러바치듯 베이비가 말했다.

“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는데 재밌게 놀지..?”

실제로 나랑 만난 이후로 친구들 모임에 자주 빠졌었다. ‘찌롱이’이란 매력적인 여자분한테 홀딱 빠져 있어서...

“한 사람 생각밖에 안 나더라....”

순간, 거짓말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빨래를 집어넣어 미친 듯이 돌고 흔들리고 쿵쾅거려서 곧 폭발할 것 같은... 부하 걸린 세탁기처럼...

오늘 내 심장도 너무 많은 감동에 부하가 걸린 것 같다.

심장이 하도 세게 요동쳐서 밖으로 튀어나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도 아닌데... 얼굴이 달아오르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10초가 지나고.. 헤롱 대며 베이비가 말을 이어갔다..

“찌롱이 생각만 나더라... 난 너 없으면 못살겠다. 못살겠어...”

엄마... 나 어떡해~

심장이 터져 버린 것 같아.

살면서 내가 누구에게 이렇게 과격한 고백의 말을 들을 본 적 있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최루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홍대 클럽 M2에서 가장 큰 우퍼 스피커 통에 거꾸로 쳐 박힌 것 같았다.

지금 이렇게 심장이 심하게 쾅거린다면 지금 죽는대도 그 여진으로 내 심장은 혼자서 백 년은 더 뛰고 있으리라...

내 심장은 영원히 상처 받지 않고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심장이 되어 버렸다. 난 베이비에게 다이아 반지보다 이 백만 배 더 좋은

다이아 심장을 선물 받았다.

지금 당장 베이비와 영원히 헤어진 대도..

지금 이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 충분하다. 내가 안다.

베이비의 진심이 너무 느껴진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 모든 말들이 진심이란 걸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베이비는 정우성처럼 진짜 영화배우를 하면 되는 거다. 매니저는 내가 하고...

근데 이 노릇을 어쩌면 좋으냐...

...

나도 이제 베이비 없으면 못 살 것 같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짧은 명언: 좋은 옷 보면 생각나는 거, 그게 사랑이야. 맛있는 거 보면 같이 먹고 싶고 좋은 경치 보면 같이 보고 싶은 거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거 있을 때 여기 그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거 그게 사랑인 거야. 그건 누가 많이 가지고 누가 적게 가지고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 거야. - 공지영의 <착한 여자> 중에서 -


그날 밤, 베이비가 너무 취해 횡설수설하는 거 처음 보았다. 그 말들도 너무 감동스러워 짧은 세치 혀로 아니, 내 독수리 타법으로는 다 표현을 못할 것 같다....

한 두어 시간 동안의 횡설수설 내용을 요약하자면...

“억울해. 억울해... 찌이로~옹이 너 왜 하필 이럴 때... 으이~씨 흑흑~ ”

울기까지 했다. 오늘 술 제대로 많이 드셨나 보다.. 참 귀엽다.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나도 술 취하면 이렇게 귀엽고 싶다.

위의 베이비의 말을 해석하자면...

이건 평소 베이비랑 나누던 대화들에 근거한 정보들로 유추한 거다.

나는... 조금 아주 진짜로 쪼끔만 슬프다.

나 베이비는 요새 PC방이 여러 가지로 좀 어렵다.... 돈을 속 시원하게 많이 못 버니 찌롱이한테 잘해주지 못해 속상하다. 그전엔 PC방이 장사가 좀 돼서 돈 좀 만졌었는데 ‘진짜’ 친구들하고 이래저래 술 먹고 별 한 것도 없이 쓰다 보니 돈이 거의 없다. 그때 안 쓰고 모아놓았으면...

“박 찌롱이 죽도록 사고 싶어 보고 또 보러 다니는 2백만 원짜리 명품 ‘카렌다쉬’ Pink 만년필 세트뿐 아니라 브랜드별로 디자인별로 깔 별로 만년필 잔뜩 사줬을 텐데... ”이 뜻이다.

베이비... 내가 좋아하는 ‘LAMY라미’ 신상 핑크 사파리 만년필 세트’

15만 원이나 주고 사줬잖아. 울지 마. 이 바보야...

“77 사이즈의 육식주의자인 찌롱이가 제일 좋아하는 일 등급 한우 꽃등심 삼시 세 때 사 먹일 수 있었는데...”

삼겹살에 홍초소주가 최고야... 울지 말라니까... 귀염둥이 베이비야,,.

“안식년, 안식년, 콧바람, 콧바람 하며 해외여행 가고 싶다고 칭얼대는 찌롱이 어디든 다 데리고 다닐 수 있었는데... ” 어이구~ 여권이나 빨리 갱신하셔요~

저번에 우리 을왕리 가서 조개구이 먹었잖아. 나 그때 코 완전 뻥 뚫렸잖아~... 착한 베이비 그러니까 울지 마. 옆집에서 들으면 어디 초상난 줄 알겠다.

“왜 하필 돈도 별로 없는 이때 찌롱이를 만났나... 아 억울하다.” 하는 뜻이다.

억울하다고 우는 거 보니 나도 가슴이 아팠다.

내가 물건들 보고 이쁘다고 할 때마다 “내가 열심히 돈 많이 벌어서 다 사줄게” 그랬거든...

사실, 일제 때 비누 세 개 사는 값으로는 프랑스제 때 비누세트 하나도 못 산다. 베이비는 비싼 건 사줄 돈 없고 때 비누라도 사주고 싶어서 남대문에 갔을 거다. 때 비누가 두 종류여서 당황했을 거다. 베이비는 아마 때 비누라는 단어조차 나한테서 처음 들어봤을 거다. 프랑스제는 너무 비싸고... 그래서 아마 일제 때 비누 세 개를 샀을 거다.

맘 같아서는 일제든 불란서제든 5대양 6대주 전 세계 때 비누 나라별로 다 사주고 싶었을 거다. 그거 사들고 집에 갔다가 저녁에 친구들 만나러 갔을 거다.

빨리 술 먹고 찌롱이 갔다 줘야지 했을 거다.

술 먹는 내내 끌어안고 있었으니 나 한 사람밖에 생각 안 났겠지... 빨리 갖다 주고 싶으니까 술자리 하나도 재미없었겠지...

그런데 그나마도 엄마가 그거 뭐냐며 때 비누 하나 달라고 했으니... 전 세계에서 제일 사랑하는 여자가 때 비누 하나 달라는데... 안 줄 수도 없고... 사실 그럴까 봐 나올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쇼핑백에서 꺼내서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방에서 들고 나온 건데... 남대문에서 낡은 검은 비닐에 넣어 물건 팔지 않는다. 엄마 몰래 나가려다 거실에서 들켰을 거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했겠나... 그나마도 세 개에서 두 개가 됐으니...

일제 때 비누 두 개 받고 심봉사 눈 뜬 거 모냥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뽀뽀해대고 오버를 해대니까...(베이비 마음이 이쁘니까...)

“아~하~ 찌롱이 없으면 사는 게 별 재미는 없겠구나”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너 없으면 못 산다” 고 말한 걸 거다.

근데 난 연기가 아니라 진짜 너무 좋았다. 아마 앞으로 로또 1등이 당첨된다 해도 이거보다 기쁘지는 않을 거다.

베이비의 그 모든 착한 동선들을 따라다니며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베이비... 사실 저렇게 울만큼 슬픈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하도 오랜만에 나와서 친구들이 안 놔주고 술 많이 먹였을 거다.

그러니 저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억울하다’라는 이상한 단어를 쓰며 곡을 하고 있는 거다.

이래서 내가 3차원을 싫어한다니까...

여기가 4차원 세계라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기만 해도 뚝딱뚝딱...

흥부네 화초장에서 금은보화 쏟아지듯...

망할 놈의 프랑스 때 비누가 ‘돈 벌어 나줘~’ 샹송까지 불러가며 한도 끝도 없이 쏟아질 텐데...

애꿎은 베이비 울리는 이놈의 3차원이 진~짜 싫다.

돈이란 게 뭔지... 있어도 탈, 없어도 탈이다.

베이비는 내가 뭐 살 때마다 입버릇처럼 “우리 엄마도 나중에 하나 사줘야지”했다. 두 개 사서 하나는 엄마 갖다 드리라고 하고 싶지만 웬만하면 참는다. 그것도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계속 거절하니까 참 그것도 못할 짓이다 싶고 베이비도 자존심 상할 일이다.

그래도 간간히 베이비 거는 안 비싼 거로 하나씩 사준다. 나도 이 양반아~ 맘 같아서는 아이템이 뭐든 간에 매일 하나씩 사주고 싶다고...

돈이 없어서 못 사주는 게 아니라 부담될까 봐 사주고 싶어도 못 사주는 나도~ 곡을 할 만큼 답답하다고.... 이 양반아~ 뭘 좀 알고나 울든가... 나도 억울하다고...

그렇게 한참 곡을 하더니 이번엔 아주 강단 있게 헤롱 대며...

“찌로~옹이 너! 이제부터 일하지 마!! 돈 벌지 마!!! 여자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말이야~음냐 음냐 ~” 아직은 그래도 베이비보다 내가 열 배는 더 버는 것 같긴 한데...ㅋ

“집에서 좋아하는 책이나 읽꼬! 반신욕이나 하고!! 그냥 놀아!!! 내가 뭐~ 박찌로~옹 밥 굶길까 봐 그러냐??”


나 암말도 안 했는데...


<10> 곡명 : Early In The Morning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중)

아티스트명 : Vanity Fare (베너티 페어)

Evening is the time of day I find nothing much to see

Don't know what to do, but I come to When it's early in the morning

Over by the window day is dawningWhen I feel the air

I feel that life is very good to me, you knowIn the sun, there is so much yellow something in the early morning meadow

Tells me that today you're on your way And you'll be coming home, home to me

Night time isn't clear to meI find nothing near to me

Don't know what to do but I come to When it's early in the morning

Very, very early without warning I cameFeel a newly born vibration

Sneaking up on me again There's a song bird on my pillow

I can see the fun in weeping willowI can see the sun

You're on your way and you'll be coming Home, home with me

이 음악을 들으며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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