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십니까?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4

by 박지아피디

● 책을 좋아하십니까?

퀴즈는요?

<서바이벌 독서 퀴즈 왕>

KBS 프로그램을 연출할 당시에는 나름 귀여움 많이 받으며 공주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공주도 공주 나름이다. 일단 왕비의 시기 질투를 받았으나 일곱 난쟁이의 사랑을 받았고 끝내는 지나가던 과객 같은 왕자의 낙점을 무르아 왕국으로 떠나는 백설 공주. 그녀가 글로벌 대표 주자이다.


K- CULTURE 공주로는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드는 평강공주 같은 현명한 공주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명고를 찢어발겨서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고 도망쳐 나온 낙랑 공주 신세로 마무리가 되었다.

원래 나는 긍정의 아이콘이자 순한 양의 대명사였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그저 열정적이기만 했던 순둥이였다. 하지만 KBS에 엄청난 선전포고를 하며 수류탄을 투척하고 맨발로 도망쳐 나온 그 순간부터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변질되었다.

한 번 피 맛을 본 어린양은 한순간에 쌈닭으로 변해있었다. 그 전에도 숱하게 당했을 억울하고 부당한 일들이 드디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항변들을 하기 시작했고 전투적으로 변해갔다.


[김미화의 U]는 차장님과 의기투합하여 호기롭게 순항을 했다. 남의 회사라고 빈둥거린 적도 없었지만 내 회사니까 더욱 열심히 했다. 거의 0%로 시작된 프로그램을 5%대까지 올려놓았다. 노고에는 반드시 상이 따르는 법! SBS에서 받기 망설여지는 선물을 주려했다.

내가 했던 KBS 아침 토크쇼와 같은 시간대의 SBS 토크쇼에 제작사로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러니까 SBS 입성한 지 몇 개월 안 되어서 레귤러 프로그램을 두 개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았지만 망설여졌다. 다른 것보다 10년 몸담았던 그전 제작사 대표님이 마음에 걸렸다. 쉽게 말해서 관우 보고 유비와 싸우라는 거였다. 나의 첫 사수이자 마지막 사수였던 대빵 피디님께 전화를 걸었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라고 하셨다. 이로써 코찔찔이 었던 나와 존경해 마지않는 대표님은 사제지간을 벗어나 동등한 위치에서 전장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전쟁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KBS에 있다가 SBS 토크쇼 제작사로 합류한 나는 기존에 있던 5개 제작사들의 대단한 텃세를 만끽해야 했다. 원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내가 들어감으로써 자신들의 먹을 양식이 줄어드니 당연한 일이다.


하도 쪼아대니 나도 안 아플 리 없다. 아프면 누구나 방어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나는 공격적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누구 말대로 생존의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들이 뭐라고 하건 그냥 입 다물고 열심히 했다. 하는 족족 시청률 1등 해버렸다. 그리고 원래 가진 DNA가 워낙 흐물흐물하다 보니 그들과도 결국은 다 친해졌다.

다른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지 않으려면 그냥 월등해 버리면 된다. 나는 2개의 레귤러 프로그램을 하고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기획안으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따냈다. 이름 하여 <서바이벌 독서 퀴즈 왕> 다들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게임, 퀴즈 등을 몹시 즐긴다. 그 옛날 너무 좋아했던 프로그램 <장학퀴즈>와 <책 책 책을 읽읍시다>를 짬뽕한 오마주였다.

이 둘을 합쳐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기획안을 만들고 잘 아는 출판사 대표님을 찾아뵈었다. 책이나 실컷 협찬받으려고 입에 거품 물고 열심히 기획의도를 설명드렸다. 세 가족이 주어진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한 문제를 풀어보는 퀴즈 프로그램이니 대한민국 독서 증진 캠페인으로 아주 훌륭할 것이 자명하다고...


그랬더니 머리도 희끗하신 그분께서 어디로 전화를 걸어 막말을 하셨다. “야!!! 내가 좋은 프로그램 하나 소개해 줄 테니까 암말 말고 너희 회사 올해 남은 홍보예산 여기다 써.”하고 초등학교 동창생이라는 대기업 전무님에게서 삥을 뜯어내셨다. 독서랑은 일말의 상관도 없는 대기업 상해보험 회사였다. 하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면 책을 좀 읽긴 하겠다.


책이나 얻을 요량으로 갔다가 프로그램 제작비까지 따오게 된 것이다. SBS가 거절할 이유가 없다. 프로그램 취지 좋지. 실험적이지. 게다가 돈까지 마련해 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랄랄라 온]은 새 땅에 입성한 지 1여 년 만에 레귤러 프로그램 세 개를 만드는 제작사가 되었다. 이때부터는 다른 제작사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게 뻔하니까.


작명하는 센스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프로그램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바이벌 독서 퀴즈왕> 나는 서바이벌하는 사람이고 게임을 즐기며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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