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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Feb 25. 2021

글공부의 단계별 감정 변화

화가 나는 단계


소설을 많이 읽고 있었다. 좋은 은유와 문학적 상징을 음미하며 웃음 많은 여고생처럼 행복했다. 마치 앞으로의 공부가 잔잔한 바다의 요트 위처럼 평안할 것이라며 발그레 분홍빛 볼을 하며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 황순원 스마트 소설 응모를 위해 스마트 소설집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짧은 몇 페이지에 온 인생과 진리가 밸런타인데이 연인에게 선물할 초콜릿 상자처럼 다양하고 요령 있게 꽉 들어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우주 비행사가 온갖 영양과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캡슐 한알 같은 온전한 내용이었다. 단편의 순간들을 하나의 완전한 사유 감으로 둔갑시켰다. 마법사들처럼...


사유할 거리가 엄청났다. 6편 정도 읽고 나니 달리는 석탄 화차처럼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이걸 내가 짜낸다고 생각하니 냉동실에 얼려놓아 동상 걸린 손가락처럼 한 문장도 써진다. 깨끗하게 비워버린 쓰레기통 안처럼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미천한 글재주가 새삼 원망스럽다. 6살짜리 떼쓰는 계집아이 같은 심정이 된다. 동동 발구르기를 하기라도 할 것처럼...


배 오른쪽 아래가 묵직한 것이 마음이 체한 것 같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폭주하며 납기일 맞춰야 된다는 듯이 난폭하게 밟아제끼며 서두른다. 혼자 달리는 도로인데 마치 수천 명의 적들이 쫒아오는 전쟁터처럼 여기며 혼자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구랑 결투하는 건지 모르겠다. 돈키호테라도 된 것인가?


 황소를 한 마리 통째로 삼킨 보아뱀처럼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도 못하면서 글을 마구 퍼 먹었다. 걸식증 걸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미처 삼키지도 못하고 눈꺼풀위에 얹어 놓기만 했다. 나는 배가 고프 짜증 부리지만 소화가 안돼도 화를 내는 성격이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것을 정서불안 환자처럼 유독 못 참고 표현하는 편이다. 글쓰기에도 거울에 비치듯이 성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심보가 놀부 마누라처럼 고약하다. 남들 몇십 년 들인 노력의 결과들을 보고 찢어진 눈으로 질투나 하는 좀뱅이다.


좀 느긋하게 자중하며 현미 한알씩 꼭꼭 씹어 선식 하는 스님이 수행하듯 문장을 읽자. 멧돼지처럼 급한 성미도 좀 고쳐야 한다. 이미 시속 100킬로로 달리고 있는데 더 빠른 속도를 원하는 초짜 카레이서처럼 굴다가는 전복당할게 분명하다. 죽는다. 최소한 다친다.


늦게 시작했다 해도 소림사 무도인들처럼 계단을 열개씩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단계씩 그리고 무엇보다 무릎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토끼가 주변을 살피듯 조심조심 고지를 향해야 한다. 발아래 펼쳐진 경치도 보지 못하고 바람도 태양도 투명하다듯이 의식하지 못하고 산 꼭대기를 향해서도 안된다. 글을 그런 식으로 쓰는 바보가 어디 있나? 욕하며 절대 저러지 말야야지했던 X세대 꼰대  중독자랑 다를 것이 없다. 글이란 그렇게 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어제 오후부터는 또 빨간천을 보고 흥분한 투우같은 성질이 올라와 스마트한 짧은 소설들에 질투하며 억장이 911 빌딩 무너지듯 순식간에 강한 좌절감을 느꼈다. 나의 이 모든 과정을 오래전에 거치신 글 스승님께서 철딱서니 어른이인 나를 능숙하게 달래주셨다. 좌절이 생긴 것 자체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 하셨다. 젠체하며 음미하고 그래 뭐 저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어라고 철 없는 선무당처럼 덤빌 때가 초보인 거지 지금의 나는 그만큼 실력이 안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단계이기에 좋은 징조라 하셨다.


길조라 알려진 까치가 내 뱃속에 숨어 들어 날개짓하며 좋은 소식을 알려줬다고 생각하니 배아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뱃속의 까치야 고마워 좋은 소식 알려줘서... 감정이 오뉴월 아지랭이처럼 흔들거리며 널뛰기를 한다. 이게 예술가의 감성인가? 좋게 생각하자. 여린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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