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의 신동 PD되다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
예능은 딴짓이다
평생 딴 짓만 하고 살아온 박지아PD의 25년 예능과 인생 이야기
● 항구 방석집에서 음주가무 웃음을
파셨던 외할머니 -흥의 상업화
뿌와앙~ 뿌와앙~. 선착장 어시장에 고래가 잡혀들어 왔다는 뱃고동 소리다. 구룡포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길고 긴 선착장 시장으로 달려간다. 나도 이소리만 들으면 바지를 추켜올리고 달려 나간다. 외할머니 집이자 술집은 갑판장에서 멀지않다.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갈 때 마다 내 조그만 심장이 요동치며 쿵쾅거린다. 그 산더미보다 큰 고래를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경외감이 든다.
저렇게 큰 물고기가 바다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저것을 저 쪼그만 사람들이 잡아왔다는 것. 심지어는 떼거지로 몰려들어 썰고 자르고 해서 팔고 그 자리에서 나무궤짝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생으로도 먹고 기름에 구워서도 먹는다. 한 장소에서 도소매 판매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나무궤짝에 둘러않은 무리들은 어림잡아 200여명은 되어 보인다.
한참이 지나면 메뚜기 떼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고래는 뼈만 남는다. 그 광경은 보지 않고서는 말로 아무리 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중에 외할머니 집을 떠나 엄마아빠와 대구에서 살게 되었을 때 나는 동화책에서 그 고래를 보게 되었다. 쪼그만 사람들에게 잡혀서 조그만 밧줄로 여기저기 묶여있는 것은 고래는 아니었다. 걸리버라는 고래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이었다. 그 동화책 첫 그림을 보고는 뒤를 더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안다. 걸리버도 고래처럼 쪼그만 사람들에게 잘려서 먹히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걸리버 여행기 소인국 편의 나머지 이야기를 모른다. 지금도 다시 들춰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걸리버는 내 어린 기억 속에 아주 너무 커서 아주 너무 더 불쌍했던 고래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기억들 때문에 동화나 소설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결코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닌 현실보다 오히려 축소되거나 변형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연유로 대구에 있는 엄마아빠와 떨어져 외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지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7살 3월21일생인데도 8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컸던 나는 구룡포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법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구룡포에 단하나 있는 초등학교 교장 교감선생님과 몇몇 선생님들은 외할머니의 술집 일명 방석집에 단골이었다. 애가 키가 이렇게 큰데 나이를 떠나서 학교에 보내야 되지 않겠냐며 할머니가 따르는 맥주와 하얀 돈 봉투에 나의 불법 입학거래는 성사되었다. 아마 이 때부터 나는 법제도과 관습에 시큰둥한 어린이가 되기 시작한 것 같다.
학교에서는 우리들을 야단치고 때리기도 하는 무서운 선생님들이 알록달록 한복 입은 언니야들과는 무지하게 환하게 웃고 여기저기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근엄한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낮에는 학교에서 근엄한 그들과 저녁에 할머니 집에서 심하게 발랄하고 친절해지는 그들을 동시에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에 피디가 되고 수많은 섭외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감히 범접하기도 힘든 톱스타든 차갑도록 교양이 넘치든 성격 무섭기로 유명한 연예인이든 만나서 섭외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밤만 되면 저들도 어린아이처럼 친절하고 발랄해진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뼈 속 깊이 체득했기 때문이다. 크면서 어른사람들 특히 선생님 공공기관 관계자들 교양 있는 척하는 이들에게 너무 격의 없이 대하는 것 때문에 버릇없다거나 말을 함부로 한다고 혼이 많이 났던 것은 약간 억울했다. 나는 친근하게 대한 것 뿐이데...훌쩍.
한복 입은 언니야들도 나의 거리낌 없는 성격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언니야들은 낮에는 늘어지게 자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주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맥주로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스카프를 덮어쓰고 껌을 씹으면서 삐딱구두를 신고 목욕탕을 다녀왔다. 학교를 마치고 주거지이자 가게인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언니들이 목욕탕에서 빨리 돌아와 화장하기를 기다렸다. 화장하는 게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항상 옆에서 구경하곤 했다. 하얀 얼굴에 눈은 파랗게 눈썹은 까맣게 입술과 볼은 아주 빨갛게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신기한 것은 그 얼굴들은 큰 나무문을 양옆으로 열면 드러나는 가구인지 가전제품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가는 커다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 연기자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얼굴 큰 귀걸이 꼬불꼬불한 머리 날씬하고 긴 다리. 그들은 꾀꼬리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했다. 언니야들도 늘 노래를 하고 젓가락을 두드렸다. 그리고 크게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크게 웃었다. 어릴 때 나는 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분위기가 시끌벅적하고 나중에는 격양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남다른 박자감이 생겼다. 음주가무 오락은 나에게 친근한 것이었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과 매일 보는 언니야들은 다 같아보였다.
언니야들은 눈물도 많았다. 할머니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길게는 세 달 정도 있다가 다른 예쁜 언니야들이 왔다. 한복 언니야들은 떠나기 전에는 며칠 동안 울었다. 술과 담배에 쩐 냄새를 풍기며 눈이 시커멓게 번지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나한테 부비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좋겠다. 너는 좋겠다 라고... 나는 언니야들이 부러웠다. 항상 예쁜얼굴 예쁜 옷들만 입고 다니는 언니야들은 내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도 내 친구였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야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연예인들에 대한 남다른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언니야들의 노래와 웃음은 돈으로 환산되어 내 학비가 되고 할머니의 생계비가 되었다.
언니야 중에 한명이 떠나면 외할머니는 작은 내 손을 잡고 석유 냄새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내겐 가장 큰 도시인 포항으로 가셨다. 좁고 기다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있는 직업소개소라는 곳에서 새로운 언니야들을 데려 오셨다. 포항에 가면 집에서 먹지 못했던 맛있는 것을 사주셨다. 언니야가 떠나면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공식이 생겼다. 슬픈 일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 작고 예쁜 외할머니는 언제나 당당하고 멋있었다. 요리도 잘하시고 거친 남자들도 무섭게 잘 다루셨다. 언니야들에게는 엄마라고 불리며 따뜻하셨다. 가끔은 언니야들하고 싸울 때도 있었지만 술 한 잔에 금방 풀어지곤 했다. 외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느낀 여성상은 다양했다. 씩씩하고 감정표현에 솔직했고 화려하기도 하고 여렸다. 변화무쌍한 바다와 커다란 고래 그리고 예쁜 언니야들을 보고 자란 나는 후에 비슷한 환경을 찾아간 것 같다. 연예인들과 쇼 오락 프로그램을 만드는 예능피디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일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