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한방이다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2

by 박지아피디

학교 담임을 찾아가

교회 오빠들과 놀게 해 주라고

부탁하던 엄마 자유와의 전쟁


외할머니랑 구룡포에 살 때 엄마는 가끔 나를 찾아왔다. 엄마라고 부르기 좀 낯설었다. 외할머니가 나의 엄마 노릇을 해 주었기에 언니야들만큼 젊었던 엄마는 그냥 아는 언니가 가끔 놀러 오는 기분이었다. 엄마와의 유대관계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대구로 올라가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매일 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외할머니와 헤어진 것도 서러웠지만 대구에서의 환경은 너무 낯설었다. 엄마가 운영하는 양장점 밑에 붙어있는 작은방에 남동생과 나 엄마 아빠 이렇게 오글오글 모여서 자는 것도 좁은 부엌도 싫었다.


낯선 가족들이 마당을 둘러 방방마다 셋이나 더 있고 우리는 주인집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가족들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무서웠고 옆방에 세 들어 사는 부부는 매일 싸우고 울고 했다. 저녁상에는 콩나물과 오뎅볶음 멀건 뭇국이 다였다.


할머니가 매일 해주시던 신선한 생선구이 칼칼한 게장 된장찌개 오징어 볶음 이런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할머니의 넓은 집과 언니야들 그리고 바다가 그리웠다. 매일 우는 나를 보며 젊은 엄마도 속은 편치 않았으리라.


엄마는 양장점에서 미싱 언니야와 재단사 오빠야하고 하루 종일 옷을 만들었다. 언제나 예쁜 옷들을 만들어 동네 아줌마들에게 팔았다. 나는 엄마 밑에서 일찍이 남다른 패션 감각과 손님 응대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의상실에는 딱히 옷을 맞추지 않아도 수다 떨러 오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따라서 엄마는 동네 정보통이었다. 엄마의 의상실에는 예쁜 언니들이 예쁜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가득한 우리나라 글씨가 아닌 글들로 쓰인 잡지책이 많았다. 다 일본 말들이었다.


엄마는 예쁜 옷들의 영감을 일본말 잡지에서 많이 얻으시는 것 같았다. 잡지에서 본 듯한 옷들은 동네 아줌마들에게 입혀졌다. 덩치가 큰 아줌마들은 같은 옷 다른 느낌의 엄마 표 옷들을 입었다. 대구에서 좋은 점은 딱 하나였다. 그 동네에서 의상실은 엄마의 <준 의상실> 하나밖에 없었기에 신기해하는 또래 여자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왔다.

한 번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왜 다른 사람 옷만 만들어주냐고 나는 언제 옷을 만들어 줄 거냐고? 엄마는 가만히 나를 보더니 그날 밤을 새워서 나에게 치마 마이 양장 한 벌을 만들어 주었다. 어른 옷을 작게 만든 살구색 치마와 가다마이였다. 그리고 남은 천으로 작은 천 핸드백을 덤으로 만들어주었다. 새 옷을 입고 신나게 학교를 갔다.


하지만 남자 애들이 아가씨라고 놀리며 따라다녔다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았다. 아가씨라는 말이 그 당시 그 동네에서는 좋지 않은 뉘앙스도 있었다. 왠지 모르게 나를 비하한다는 느낌이 어린 나에게 설핏 들었다. 구룡포에서도 동네 친구들은 나를 <경주옥> 손녀딸이라고 놀렸다. 엄마들이 아가씨 있는 집 애랑 놀지 말라 했다고 나랑은 잘 놀아주지 않았고 우리 집에도 놀러 오지 않았다.


엄마는 옷 만드는 기술도 좋았지만 영업력도 좋았다. 나는 4학년 때 학교 마칭 밴드에 들어갔다. 밴드를 만든다는 소리에 손을 번쩍 들었다. 음주는 없었지만 가무를 한다니 너무 좋았다. 밴드 반에 모이니 선생님이 자기가 하고 싶은 악기를 고르라고 하셨다. 내 눈에는 늘 보던 큰 젓가락 두 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작은북과 젓가락 같이 생긴 북채 두 개를 잡았다. 당연했다. 젓가락 두 개로 두드리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니까.


선생님이 작은북 박자를 가르쳐 주셨다. 다른 애들은 하나도 못 따라 했지만 나는 잘 따라 쳤다. 나는 다른 애들까지 가르쳐 줄 수 있는 나름 작은북 팀장이 되었다. 예뻐 보이는 아코디언도 멋지게 봉을 돌리며 눈에 띄는 단장 역할도 매력 있어 보였지만 작은북은 내 운명이었다.


내가 마칭 밴드에서 작은북을 치게 되었다고 엄마에게 말하자마자 엄마는 학교에 찾아가셨다. 다음날부터 밴드부 애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엄마가 밴드부 옷을 다 주문받아 오신 거였다. 후에 우리 집이 극적으로 잘 살게 된 것도 엄마의 영업력과 동물적 촉 덕분이었다.


아파트로 이사 가고 더 큰 아파트로 이사 가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대구에 최초로 생긴 72평 아파트. 이름도 걸맞은 궁전맨션으로 이사 가게 된 것도 엄마의 수완 때문이었다. 72평 아파트에는 베란다에 큰 연못도 있고 커다란 잉어들과 거북이까지 있었다. 집을 걸어 다니면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넓었고 적응이 안되었다. 이번엔 작은집으로 다시 가자고 매일 울었다.


엄마를 떠 올리면 생각나는 일화가 두 개 있다. 하루는 학교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했는데 엄마가 바빠서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내가 다니는 중학교에 내렸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엄마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랐다. 아까 집에서 본 엄마가 순간이동으로 학교 앞까지 먼저 와 있다니? 놀란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아까 잘 갔다 오라고 말을 못 해줘서 택시를 잡아타고 버스를 앞질러 학교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엄마는 늘 바쁘고 나에게 좀 무신경했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한방이 있었다. 그 한방 정신은 내가 고이고이 잘 이어받았다. 나도 가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깜짝 이벤트를 한다. 놀라고 감동하는 이들을 보면 어릴 적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를 보고 놀란 내가 떠올라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초중고를 거치며 나는 마칭 밴드 단원 오락 반장 합창단 지휘자. 응원단장 학생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뭔가 나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다. 그 와중에 왜 그런지 나는 공부를 잘했다. 수업시간에 들은 것만으로도 시험을 항상 잘 봤다. 엄마는 나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아마 바빠서 그랬으리라. 그런데 나는 시험을 볼 때마다 상장을 타갔다. 아이큐테스트에서 142가 나왔다. 엄마의 비상한 머리를 고이 전수받은 것이다. 엄마는 암산을 정말 잘하고 손님들 치수를 일일이 정확히 기억하셨다.


중학생 때부터 뭔가 청소년의 통과의례처럼 학교 바로 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녔다. 교회는 너무 좋았다. 학교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분위기가 특이했다. 찬송가를 부르고 큰소리로 통성 기도를 하면 예수님이란 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했다. 엄마처럼 크게 한방이 있는 분이 틀림없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신생이었고 공부를 엄청 시키는 학교였다. 중3짜리들을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키는 독한 학교였다. 하지만 교회에서 연극반 성가대 등 맡은 일이 많은 나는 정규 수업을 마치면 교회를 가야 했다. 야자를 하지 않고 교회를 가서 교회 오빠들하고 1층 빵집에서 얘기하는 것을 담임선생님께 들켜 엄청 야단을 맞았다. 그래도 내가 계속 도망을 치니까 엄마를 부르셨다.


엄마는 화려한 옷을 입으시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악어가죽 핸드백을 옆에 끼고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끼고 교무실에 오셨다. 다짜고짜 담임선생님께 내 성적표와 상장들을 늘어놓으시고 당당히 말씀하셨다. 지아가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는데 교회 오빠들하고 좀 노는 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 오히려 선생님께 따지셨다. 단단히 벼르고 있던 담임선생님은 딸꾹질을 하셨다. 교무실 모든 선생님들도 다 뜨악한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시크하게 돈 봉투를 탁자에 탁하고 내려놓으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고는 유유히 떠나셨다. 엄마의 턱 빠지는 한방에 나는 합법적으로 야자를 쨀 수 있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엄마는 내 유머 감각과 예술적 감각을 존중해 주셨다. 고등학생 때 만우절에 애들을 어떻게 속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침에 큰 자를 팔에 대고 붕대를 칭칭 감고 보자기로 어깨와 팔에 걸쳐서 싸주셨다. 이왕 까불 거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나는 친구들 선생님들 다 실컷 놀려먹고 하교할 때 깁스를 풀며 교회 오빠들을 만나러 유유히 뉴욕제과로 사라졌다.


이렇듯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기운을 외탁하여 남다른 한방을 지닌 인간으로 자라났다. 그래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어린이가 성장하기엔 너무 생뚱맞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신 부모님과 외할머니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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