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은 아무나 하나?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6
● 연예인은 아무나 하나?
희대의 이상한 프로그램
<피디 베이비 앙앙앙>
2007년 즈음 3개의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면서 [랄랄라 온]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뭔가 안정되는 듯하면 안정을 잘 못 참는 희한한 성격의 소유자가 나다.
연예인들과 늘 함께 하다 보니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TV에 출연해 볼까? 한번 맘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경상도 가시나라서 바로 실행에 착수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이 패리스 힐튼이었다. 그냥 좋았다. 생각 없이 막사는 게 너무 맘에 들었다. 나는 패리스 힐튼과 니콜 리치의 <심플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의 광팬이었다. 나도 막 그냥 막살아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들보다 더 생각 있게 산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패리스 힐튼이 되고 싶은 박지아 PD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프로그램 기획을 했다. 이름 하여 <피디 베이비 앙앙앙> 피디와 베이비는 내 정체성이었다. 직업은 피디지만 속은 완전 애 같은 나. 그리고 ‘앙앙앙’은 내 전매특허였다.
섭외를 하려면 사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무조건 조르기다. [우는 애 젖 준다] 했다. 나의 섭외는 그냥 인디언 기우제 같은 것이었다. 특별한 기술 없이 내 프로그램에 나올 때까지 앙앙거리는 거였다. 그러면 앙앙거리는 거 듣기 싫어서라도 출연하거나 저러다 나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내가 하도 딱해서 출연해주시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기획안을 당시 인기 있던 예능 전문 케이블 채널에 가지고 갔다. 담당 부장님은 나와 인연이 있으신 분인데 나의 기이함과 똘기를 매우 높이 사시는 분이셨다. 재밌겠다며 의외로 흔쾌히 해보라고 하셨다. 비록 적은 제작비를 받았지만 결국 내가 주인공인 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한 시간 짜리였다. 짜릿했다. 이제 난 스타가 될 것이었다.
패리스 힐튼이 되고 싶은 날라리 여자 피디가 연예인들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당신들처럼 스타가 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생 막장 인터뷰 쇼였다. 지금은 나영석 피디 김태호 피디가 피디 테이너인데 그런 개념인 것이다. 생각해보니 지금으로 치자면 자기가 찍고 자기가 주인공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은 것이었다. 이것도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다.
나름 연줄로 조성아 원장님께 메이크업도 받고 진짜 연예인처럼 프로그램 타이틀도 찍고 다했다. 카메라와 조명 붐대 마이크 등등을 다 핑크색으로 특수 제작했다. 푸조에서 빨간 스포츠 오픈카까지 협찬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푸조에서 왜 생면부지 나에게 차를 협찬해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회 게스트까지 완벽하게 섭외를 해놓았다. 무려 배우 김하늘이었다. 지금도 탑스타지만 그 당시 <온에어>라는 SBS 드라마를 인기리에 마치자마자 섭외한 터라 완전히 내 프로그램은 뜰일 만 남았었다. 촬영 장소도 김하늘 씨의 명성에 힘입어 힐튼호텔 스위트룸을 협찬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글의 흐름상 아시겠지만 프로그램은 완전히 폭망 했다. 요란 벅적한 핑크색 촬영 장비들과 그것들보다 더 요란하게 핑크로 철갑을 한 나를 보더니 김하늘 씨가 기겁을 했다. 매니저를 불러서 다른 방으로 갔다. 나랑 매우 친했던 매니저가 다시 돌아와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대로 전해드릴게요. 하늘 씨가 나는 저 여자랑은 죽어도 인터뷰 못한다.라고 하셨어요. 어떡하죠?”
그렇다. 연예인은 아무나 못한다. 김하늘 씨에게는 미안하다고 하고 곱게 보내드렸다. 하지만 이미 예고도 나가고 방송 일정이 잡혀있었기에 당시 친했던 정준하 씨와 인터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순결한 19>의 DJ DOC 정재용과도 인터뷰하고 해서 가까스로 1회 방송을 내보냈다.
TV에 내 모습이 나오니 너무 신기했다.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았다. 난 이제 한국의 패리스 힐튼이 되는 거다. 2회는 ‘쏘핫’을 신곡으로 낸 원더걸스와도 인터뷰하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 하우스 음악의 1세대 주자 [하우스룰즈]도 인터뷰하는 등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난리 통에 첫 삽은 뜬 거였다.
하지만 2회 방송이 나가고는 더 큰 난리가 났다. 그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된 그 케이블 방송국의 아주 놓으신 임원분이 저게 뭐냐며? 저 이상한 여자는 누구냐며?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방송을 중단하라고 노발대발하신 거다.
이로써 항상 만들었다 하면 히트 치던 성공 제조기 박지아 피디는 2회 만에 막을 내리는 최단기간 종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일찍 막 내린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여파로 나는 아직도 앞니 여섯 개가 시리다.
제작비가 적은 관계로 초과하는 예산을 메꾸고자 강남의 잘 나가는 치과를 섭외했다. 내가 연예인처럼 예쁘게 변신하는 과정을 다룬다며 앞니 여섯 개를 라미네이트 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그야말로 생니를 간 것이다.
2회 만에 종영당한 후 받았던 협찬비용은 그대로 다시 토해내고 내 앞니는 아직도 찬바람이 불 때마다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