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매니저를 왜 해?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7

by 박지아피디

PD가 매니저를 왜 해?

1호가 되고 싶었어

25년 동안 예능을 하면서 한 번도 예능은 한마디로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적이 없다. 그러다 이 글들쓰기 시작하면서 그 정의에 대해서 심사숙고를 한 시간 정도 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예능은 <딴짓하기>라는 것이다.

연예인인 이상한 짓. 별난 짓, 엉뚱한 짓을 하는 건 다 예능이다. 생각해 보라 <꽃보다 할배>는 배우인 할아버지 분들이 배낭 메고 유럽을 여행하는 콘셉트이다. 명백한 딴짓이다. <1박 2일>, <정글의 법칙> 매우 딴짓이다. 예를 들자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그렇다. 한 평생 예능 PD를 한 나도 어찌 보면 골수 예능인이다. 그렇다면 나도 딴짓의 대가인 것이다. 스스로 연예인이 되어 보기로 한 딴짓의 꿈은 시린 이만 떠안고 무참히 짓밟혔다. 그렇다면 이번엔 연예인의 매니저가 되어보기로 했다.


이 실험의 출발은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SBS 아침 토크쇼에서 베트남 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매우 신망받는 출판 베이스 대기업에서 베트남에 우물이랑 학교를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예인을 대동해 촬영하고 2편에 걸쳐 방송에 홍보하고자 하는 와중에 거미줄 같은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참으로 좋은 취지였고 2주 동안의 모든 체제 비용을 그 기업에서 협찬하는 것이기에 쾌재를 부르면서 섭외에 돌입했다.

베트남 첫 번째 게스트로는 하정우 님의 파더 국민 시아버지 김용건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그분의 유머 감각을 다 아시지만 그 당시에는 예능에 한 번도 출연하신 적이 없으셨다. 용건 선생님과 촬영하면서 한시도 웃지 않을 때가 없었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농담이고 언제나 장난칠 일만 구상하셨다. 웃긴 것보다는 너무 놀라웠다. 신사인 줄 알았는데 천하의 장난꾸러기셨다. 그 분과 1주일 베트남 촬영을 하면서 배꼽을 하노이 하롱베이퐁당 빠트리고 왔다. 지금은 유능한 예능인이 되셨다. 아 그때 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베트남 두 번째 게스트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고 생각해 존경하는 개그맨 부부였다. 여간 공들인 게 아니었다. 보통 섭외에 있어서 어려운 게 부부 섭외나 가족 대동 섭외이다. 웬만한 연예인들은 가족 공개를 꺼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코미디를 보고 웃으며 자랐다. 나에게는 웃음의 황제였다. 황제와 팽황후를 모시고 해외를 가는 일인데 내가 얼마나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까?


역시는 역시였다. 정말 너무 웃겼다. 1주일 동안 그분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내가 하자는 건 다 해주셨다. 하노이 길바닥에서 즉흥 콩트도 해주셨다. 나는 너무 황홀해서 ‘오~~신이시여!!! 왜 저를 이렇게 이뻐하시나이까?’라고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세상만사 웃긴다고 다 웃고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촬영 마지막 날 황제의 부인께서 수고 많았노라며 하노이에서 제일 비싼 한정식 집에서 맛있는 걸 하사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지아 피디. 우리♡♡ 아빠 매니저 좀 해줘요. 지아 피디라면 우리 ♡♡아빠 다시 방송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 그 나이 때의 80년대 90년대 인기 개그맨들은 그 당시 설 무대도 출연할 프로그램도 없었다. 신진 개그맨들이 줄줄이 등장해 그들과 세대교체가 이루어진지 한잠 지났을 때였다. 라디오만 주야장천 7년째 하면서 기죽어 있는 남편을 보면서 옆에서 속앓이를 많이도 하셨던 것이다. 부인의 심정이 이러한데 본인의 심정은 말해 무엇하랴?


무슨 일이든 광속으로 결정해대는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난생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제가요? 전 피디인데요?”한국에 돌아와서도 두 분의 설득은 이어졌다.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계산이 팍팍되는데 이건 통 그림이 안 그려졌다.

그러다 당시 너무 인기 있던 프로그램 <강호동의 야심만만>의 CP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 혹시 천하의 강호동이 쩔쩔매는 사람이 프로그램에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고 정말 툭하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화들짝 반기면서 안 그래도 그런 캐릭터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 뒤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선 게스트로 먼저 출연하시게 했다. 우리의 황제 포함 비슷한 시기에 활약하신 입담꾼 5명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 회 차는 말 그대로 초 대박이 났다. 황제가 귀환했다며. 그 전설적인 [목욕탕 세신사와 젖꼭지 사건] 에피소드 하나로 토크를 초토화시켰다. 그 뒤로 바로 강호동 님 옆에 MC를 꿰차고 그 후로도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아저씨 꽃 중년 시대의 서막이 린 것이다.


그렇게 황제를 시작으로 그 나이 대 개그맨을 네 명이나 매니지먼트하게 됐다. 광고도 많이 찍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무엇보다 다시 웃길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맨날 우셨다. 네 분 다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감당이 안됐지만 뭔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지금은 온 국민이 너무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에서 <1호가 될 순 없어>라고 외치며 황제 부부는 온 국민을 웃기고 계시다.


안정이 되면 불안정이 시작되는 나는 네 분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떠나야 했다. 또 떠났다. 글을 쓰다 보니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진짜 너무 이상한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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