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와 N번째 전성시대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18
●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
연예인들의 N번째 전성시대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의 전성기가 오기 마련이다. 에이 나는 전성기 온 적 없어하는 사람들도 잘 뒤져보면 어릴 때나 젊었을 때를 그 자체로 전성기였다고 여겨도 좋을 듯하다. 나는 꼭 일의 성공을 전성기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두 번의 전성기가 있었다. 첫 번째 전성기는 대학생 시절 패리스 힐튼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 때였다. 그때를 나의 최고의 전성기라 생각한다. 말했듯이 나에게 전성기란 일의 성공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만족해하는 상태를 전성기라 정의한다. 이때는 뭐 뇌에 주름 한 줄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모든 것에 만족했다. 아 얼굴에도 주름이 없었구나...
두 번째 전성기는 KBS 프로그램들을 연출하던 시절이다. 이때의 나는 일을 너무 좋아했다. 일이 곧 나였고 나의 기쁨은 일을 하는 그 자체였다. 일의 성공들은 그냥 따라온 결과물들이었을 뿐이다. 한 번은 이런 소문이 난 적이 있다. 내가 KBS 담당 분들에게 접대를 많이 한다고.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트린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그 담당자분들이 나에게 접대는커녕 자장면 한 그릇 얻어먹은 적 있으면 덜 억울하겠다고 하셨다.
바로 이점이다. 나는 그때 부정적인 감정이 없었다. 누가 나를 모함하든 억울한 일을 당하든 공을 뺏기든 분하지가 않았다. 쌈닭의 전투력이 아닌 그런 청정한 마음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줄 용의가 있다. 많지 않아 흔쾌히...
황제 부부 같은 경우처럼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연예인들을 많이 봤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영자 씨 그리고 송은이 씨다. 이영자 씨는 오랜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부침이 참 많았다. 아주 긴 슬럼프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도 개그프로가 아니라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신이 내린 [먹기술] 하나로 말이다. 그녀 때문에 다음날 사 먹은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황제 부부와 개그맨들을 매니지먼트하면서 개그맨들과 많이 친해졌다. 그들이 한창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그들을 만났다. 송은이 씨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자신의 회사에서 엄청난 콘텐츠들을 만들고 있지만 김숙 씨와 함께 일이 하나도 없었던 수년을 보내야 했다.
방송국이 불러주지 않으면 우리가 그냥 방송을 하자며 만든 프로그램이 팟 캐스트의 <비밀보장>이었다. 비밀보장이라는 작은 오디오 프로그램이 지금의 송은이 김숙의 N번째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해주었다. 이들 또한 일의 성공보다는 자신에게 만족하는 감정 상태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누구든 힘든 시기가 있지만 도망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 나팔바지 버리지 마시라. 유행도 다시 돌아온다.
2013년 가을. 한 종편 채널에서 <이영자의 전성시대>라는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한 적이 있다. 제목은 그녀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작명한 것이었다. 레트로 감성 충만한 제목에 향수를 일으키는 영상 기법으로 프로그램 타이틀까지 제작했다. 게스트를 초대해서 캠핑카에 태우고 다니면서 맛있는 지역음식을 해 먹으며 토크를 하는 내용이다. 몇 회 못했다.
이런 말을 정말 내 입으로 정말 또 하긴 싫다. 하지만 이것도 한 5년 정도 앞서간 프로그램이었다. 그녀의 전성기는 나의 전성기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내 연출력이 부족했다기보단 무정한 하늘에 탓을 돌려본다. 못나기 그지없다.
2년 전부터 그녀의 전성기가 돌아오는 걸 보면서 진짜 <영자의 전성시대>가 이제 왔네... 하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녀가 추천하는 음식들을 먹으려고 추위에 떨면서 식당 앞에 줄을 선다. 난 왜 이렇게 뭐든 너무 빨라서 좋은 기회를 다 놓치냐고 투덜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