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 고치는 불치병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20
● 죽어도 못 고치는 불치병
또 하나의 마침표 그리고 쉼표
안정만 되면 불안정 해지는 불치병 때문에 또 궁둥이가 들썩거렸다. [랄랄라 온]에는 가만히 있어도 돈을 막 벌어다 주는 소속 연예인들이 있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하는 둥 마는 둥 해도 잘 자란 후배 피디들이 알아서 척척 만들어주는 토크 프로그램도 있었다. 뭔가 대단히 환상적인 환경이었다.
모든 게 너무 익숙했다. 좋게 표현을 해서 [익숙한]거다.
사실은 [지긋지긋]했다.
하루도 빼지 않고 소속 연예인들 관리해야 하고 매주 방송국에 상납(?) 해야 하는 토크 게스트 섭외 때문에 꿈속에서도 누군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과격하게 표현했지만 좀 쉬고 싶었고 쉬어야 했다. 그러나 랄랄라 온은 박지아이고 박지아가 랄랄라 온이었다. ‘나 혼자 좀 잠깐 쉬다 올게’라고 말할 대상이 없었다. 박지아가 쉬려면 랄랄라 온도 같이 쉬어야 했다.
잘 나가고 있는 개그맨 오라버니들에게 이제는 저 없어도 일이 많이 들어올 거니까
독립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특히 팽황후님께서 매우 슬퍼하셨다. 방송국 토크쇼 담당 차장님께도 제작에서 빠지겠다고 말씀드렸다. 난리가 났다.
차장님과 외주 담당 PD님 두 분이 친히 집 앞까지 찾아오셨다.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설득하셨다. 그러나 두 분은 또한 나를 누구보다 잘 아셨다. 천하의 또라이라는 것을...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좀 쉬었다 빨리 돌아오라 하셨다. 그때 얻어먹은 한정식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떡갈비가 너무 맛있었다.
의외로 문제는 방송국이 아니었다. 토크쇼의 MC분들이 더 난리셨다. MC 세 분 중에 특히 나를 아끼셨던 배우분이 나를 부르셨다. 당시 탤개맨(개그맨처럼 웃기는 탤런트를 칭하는 말)으로 유명하셨던 분이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예능 토크 프로그램을 다 털고 다니시던 분이다.
“너왜그러는데?” 6글자 한마디를 하셨다.
“재미없어서요!” 6글자 한마디로 응수했다. 와중에 뭔가 선비들이 시조를 주고받는 상황극 같아 재밌다 느껴졌다. 그분은 술을 따르며 말씀하셨다. “제작사가 어려워서 접는다면 도와주기라도 하겠는데 재미없어서 때려치운다니 내가 할 말이 없도다.” 댓구에 실패하셨다. 내가 이겼다.
이로써 나의 피디 게임 2라운드는 끝이 났다. 또 하나의 마침표가 찍어졌고 새로운 쉼표가 생성됐다. 회사는 잠시 휴업 신고를 하고 정말 미친 듯이 놀았다. 비싼 등록금 내가면서 대학 4년 동안 배운 건 노는 거 하나였다. 그러한 전공을 살려 볼 기회도 없이 일만 했다. 전공을 제대로 살려 원도 한도 없이 놀았다.
역시 나는 놀 팔자는 아닌가 보다. 몇 달 놀고 있는데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거의 국내 최고의 대형 제작사에서 제작국장 자리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내가 만들던 오종종한 프로그램들이 아니라 여러 방송사들의 큰 프로그램들을 많이 제작하고 소속 연예인들도 꽤 많은 곳이었다. 웬만한 작은 케이블 방송국보다 큰 곳이었다. 내 회사를 잠시 쉬는 거지 접은 건 아니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닭의 대가리냐? 소의 꼬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챕터를 정리해야 하듯이 나는 또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낭떠러지에서 새로운 비상을 했다. 큰 판에서 어디 한번 놀아볼까나?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