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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Dec 29. 2020

응답한다 2020

설렐 때마다 쓰는 글


내 생애 최고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이다


첫째 완벽 그 자체의 드라마다

스토리 대사 연기 소품 음악 모두가 완벽하다 예능 피디 작가들이 만들어 질투도 낼 만하지만 비욘드 질투다 질투도 깜냥이나 돼야 질투할 자격도 있는 거다 어느 때고 습관적으로 틀어놓는다


두 번째 1988에서 시작되는 90년대 내 청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7살에 학교를 들어가 89년에

대학생이 되었고 94년 피디가 되기까지 그 7년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상자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쓸모 있는 용도는 하나도 없지만 가장 귀하다 가장 쁘다 내게는 가장 비싼 시절이다


셋째는 제목이다 [응답하라]는 어디다 갖다 붙여도 찰떡처럼 붙는다 [응답하라]는 모두의 삶에서 모두가 바라는 것을 모두 포함한 단어다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의 응답을 바란다 장사꾼은 손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나 같은 피디는 시청자들의 응답에 피를 말린다


우리는 모두 응답을 기다리고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손에 쥐어진 삶에 대해 뭐라도 응답해야 한다 뜨겁게든 시들하게든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2020이 국물 한두 숟가락 남은 국밥처럼 나에게 물어본다 이제 거의 다 먹었으니 뭐라도 응답하라고 뭐라고 마지막 한마디로 응답할 거냐고


2020 너 참 터진 입이라고 내게 응답을 바라냐 이 역병에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정녕 한마디라도 듣고 싶은 게냐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주마


2020 너를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너는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최악의 해로 남아줘야 한다 2020이 그나마 나았다고 할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네가 다시는 없을 최악의 해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0 너는 반드시 유럽의 페스트처럼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해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나의 응답이다 이것이 너의 운명이다


응답하라 2021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지나온 우리에게 제대로 된 환한 빛으로 제대로 응답을 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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