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없던 아이에서 하고 싶은 게 많은 어른으로
"뭐 배워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 없나?"
엄마의 이 질문에 나는 늘 "음..."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쉬워하며 말씀하셨다. "왜 하고 싶은 게 없을까? 엄마는 어렸을 때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었는데..."
어렸을 때의 나는 부끄럼이 많고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렇게 의욕이 넘치는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본인들이 어렸을 때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나에게는 부족함 없이 지원해주려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종합학원... 각종 학원들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흘러가는 대로 보냈다. 어쩌면 퇴근이 늦으신 부모님이 아이의 시간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이 학원이었고,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주체적으로 생각할 시간도,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가장 큰 걱정은 이런 것들이었다. '부모님이 늦게 오실 때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면 무섭고 슬플 텐데.'
아마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고팠나 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학생 때는 보통의 학생들처럼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였다. 아주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해외에 나가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진짜 변화는 취업 후에 찾아왔다. 퇴근 후 잠만 자기 바쁘던 직장인 2~3년차 즈음, 하루 일찍 퇴근한 날이 있었다. 회사 기숙사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퇴근하면 뭐하고 쉴까? 나는 뭘 해야 하지? 시간이 났을 때는 보통 뭘 하지?'
이 아까운 내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까. 그제야 하고 싶은 게 뭔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엄마의 모습이었다. 가끔 퇴근 후에 사물놀이를 배우러 가시던 엄마. 그것이 엄마의 유일한 자유 시간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열정이 싹텄던 것 같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찾기 시작한 건, 나만의 온전한 시간과 돈이 생겼을 때부터였다. 학생 때는 시간이 많아도 돈이 부족하지 않나.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기 싫었는데, 자유롭게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른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이제 나는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성향과 잘 맞는 것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내가 좋다. 설렌다.
설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고, 상상도 해보고, 실천도 해보자. 책 읽기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언어 배우기, 요리 클래스, 그림 그리기까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결국 모든 것은 나를 만드는 일이다. 어린 시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대답했던 그 아이가, 이제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