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지 않는 어른들

언제부터 이렇게 조심스러워졌을까

by 뽀시락 쿠크

비가 와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분다. 비가 너무 안 와 걱정이었는데, 한 번 내리고 나니 공기가 한결 상쾌해졌다. 답답했던 무더위도 한순간에 가시고, 세상이 깨끗하게 씻긴 느낌이다.


며칠 전, 비 오는 날 오랜만에 비를 맞았다. 어렸을 때는 비 맞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비를 맞으며 장난치고 뛰어다녔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아 쫄딱 젖어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비가 오면 오히려 신났던 것 같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딱히 비를 맞은 적이 없다. 비가 오면 편의점에 들러 일회용 우산을 사거나, 날씨를 보고 우산을 챙겨나가거나. 가장 큰 이유는 걸어다니는 시간이 짧아져서인 것 같다. 지하철역에서 건물까지, 건물에서 건물까지. 가까운 거리는 잠깐 뛰어가고, 건물의 처마 밑에 잠시 쉬어간다.

언제부터 이렇게 비를 피하게 되었을까. 옷이 젖으면 안 되고, 머리가 젖으면 안 되고, 신발이 젖으면 안 되고. 어른이 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아니면 그냥 비 맞는 것이 귀찮아졌거나.


가끔 별 생각 없이 비 맞으며 친구들과 집 방향으로 뛰어가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그때는 비가 오면 그냥 맞으면 되는 일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겼을 뿐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많은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예상하고, 피하려고 한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챙기고, 교통이 복잡할 것 같으면 일찍 나서고,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미리 대비한다. 그렇게 살다 보니 spontaneous한 순간들이 줄어든 것 같다.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별로 인생을 진지하게 심각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내가 지나치게 고민하던 것들도 사실 그 정도로 에너지를 쓸 만했던 일인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면 그 정도로 애썼기 때문에 대부분 잘 지나갔던 것일까?

답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일기를 쓰면서도 '오늘 뭘 써야 하지?' 하고 고민하고, 운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의심하고, 친구를 만나면서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 하고 점검한다.


지금은 힘을 좀 빼고 가볍게 지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인생 뭐라고, 오늘 하루 즐거우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비를 맞아도 괜찮고 말이다.


그날 비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우산을 찾아 헤매느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비가 오면 맞으면 되는 거라고. 옷이 젖으면 말리면 되고, 머리가 젖으면 말리면 되는 거라고.

물론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 상황이거나, 새로 산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여전히 우산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그냥 비를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 시절 비 맞던 그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고 미리 준비하느라 지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그냥 받아들이는 여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가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충동과 현실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