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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Jun 12. 2022

세 번째 레터 : 나는 매일매일 ○○을 한다

2022-05-29 발송된 레터


‘해윤의 해피레터’를 하게 된 계기로 소개한 적이 있지만, 나는 작년 문예창작과 친구들과 하루에 한 편씩 주제를 정해 일기를 썼다. ‘나는 매일매일 ○○을 한다’는 내가 낸 주제였다.


작년 방송 작가를 하면서 ‘나는 매일매일 사과를 하고 있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낸 주제였다. 그때로부터 시간은 흘렀고 나는 이제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주제로 올해는 내가 매일매일 뭘 하고 있는지 적어봤다.



1. 나는 매일매일 러브레터를 쓴다.

 

우리 학원은 수업이 끝나면 오늘 아이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아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피드백을 부모님께 보낸다. 이 피드백을 작성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정시 퇴근을 하지 못하고 야근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 아이에 대한 칭찬을 쓰는 게 길어지느라 야근을 하게 되는 거라니!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야근을 감수할 수 있다.

평소에 한 아이의 보호자님께 보내는 피드백의 길이(아이에 대한 칭찬을 이것저것 다 쓰다보면 계속 길어진다.)


수업 중 아이들이 툭 툭 내뱉는 말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저는 잘하는 게 없어요.’ ‘엄마가 저는 뭐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대요.’ ‘전 못해요’ 하지만 나는 수업을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의 진면모를 발견하곤 한다.


아이가 스스로 모르는 어휘를 끝까지 써줬을 때, 아이가 내 말을 진지하게 경청해줄 때, 평소 글쓰기 어려워하는 아이가 오늘은 도전했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수업하는 나만 아는 게 아니라, 기록해서 부모님께 전할 수 있는 게 너무나 기쁘다.


그렇게 피드백을 보낸 뒤 퇴근하던 중에 ‘제가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되었네요’ 학부모님께 이런 답변을 받으면 그야말로 피로가 녹는다. 그날 밤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헤벌쭉 웃으며, 힘찬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독서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고 계속 재시험을 보는 햇살이가 있었다. 원장님을 통해서 그 햇살이의 보호자께서 아이의 학습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걱정하신다는 고민을 들었다.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나만 아는 햇살이의 모습이 있었다. 읽는 책마다 재시험 결과가 뜨면 아이들은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선생님만 찾게 되거나, 너무 주눅이 들어 재시험을 아예 거부하게 되면 곤란해진다. 하지만 내가 지도하는 햇살이는 재시험이 떠도 주눅 들지 않았다. ‘다시!’라고 해맑게 외치며 자리로 돌아가 스스로 책을 폈다.


재시험 때는 선생님이 도와줘도 된다는 룰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재시험 책을 대충 읽기도 하는데, 햇살이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주었다. 어떤 날은 수업 시간이 끝나 다른 아이들은 다 간 교실 안에서도, 재시험을 다 보고 집에 갈 거라며 늦게까지 남은 날도 있었다. 나는 그런 햇살이의 모습을 자세히 써서 피드백을 보내드렸다.


평소에 햇살이의 보호자님은 바쁘셔서 피드백에 답장을 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피드백을 읽어 보시기는 하셨으려나..?’ 생각하며 퇴근했다. 그런데 다음 수업에 햇살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밝게 웃으며 외쳤다.


‘선생님 톡 덕에 칭찬받았어요! 선생님 톡을 우리 아빠도 읽고, 엄마도 읽고, 할머니도 읽었어요!’


햇살이의 온 가족이 모여서 돌아가면서 내가 보내드린 피드백을 읽으셨을 장면이 상상됐다. 그날 밤 나는 늦게 퇴근했는데도 신나서 거의 날아다니면서 귀가했다. 들뜬 발걸음으로 밤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나 매일매일 러브레터를 보내는 일을 하고 있구나.’


당신의 자녀가 이렇게 사랑스럽다고, 이렇게 그 자체로 귀하고,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고백하는 러브레터를 쓰는 일.


거기까지 생각하자 한 생각이 떠올랐다. ‘메일링 서비스 이름을 해윤의 러브레터라고 지을까?’ 그때가 한참 내가 오픈할 메일링 서비스 이름을 고민하던 때였다. ‘해윤의 해피레터’라는 타이틀의 시작점엔 ‘해윤의 러브레터’가 있었다.



2. 나는 매일매일 기도를 한다.


이걸 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어서 여기다 쓰는 게 민망하긴 하다. 나는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매일매일 큐티(*조용한 시간과 장소에서 말씀 묵상을 하는 시간)를 하고 기도한다. 이걸 할 수 있는 이유는 운이 좋게도 내가 앉아서 출근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서서 출근길을 가야 했다면 이걸 하는 게 정말 어려웠을 것 같다.

지하철에서의 큐티

큐티를 하는 이유는, 나는 내가 믿는 신에 대해 알게 되고 그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게 좋아서다. 예를 들면, 내가 믿는 신은 원수에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법칙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오른뺨을 맞으면 원수에게도 오른뺨을 같이 치거나, 최소한 소송을 해서 합의금을 받아내는 게 ‘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믿는 종교는 네 왼뺨도 내어주는 게 너를 위해서도 정답이고 선한 일이라고 한다.

 

내가 느꼈을 때, 내가 믿는 종교의 정신은 속된 말로 ‘호구’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매일매일 출근하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너무 재고 따지지 않게 해달라고.’ ‘무언가를 나누는 걸 아까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믿는 종교의 계산법을 따르게 해달라고’

 

나누는 것이, 타인을 위하는 것이 타인에게도 좋을 뿐만 아니라 결국 어떠한 형태의 선으로 나에게도 돌아올 것이라는 그 계산법을.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종종 ‘이걸 왜 내가 해야 하지?’ ‘이거 내 손해 아니야?’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속이 좁아지는 걸 느낄 때마다 내가 지혜로워지길 바라며 기도한다. 지식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고, 나의 자랑을 위해서만 쓰일 때도 있지만 지혜는 타인을 배제하지 않고 나와 타인의 공존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도 말고도 하는 또 다른 기도는 내가 애정하는 지인들을 위한 기도다. 누군가의 건강을, 누군가의 평안을,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한다. 기도 수첩에 내 소중한 이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한 명 한 명 눈으로 더듬어가며 읽으며 기도한다.

내 기도노트 공개~내가 평소에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둔다


사실, 이 레터를 쓰기 전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떨지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혹시나 이 글을 읽은 내 지인 중 하나가 언젠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또는 간절히 바라는 게 생겼을 때, 


‘그러고 보니 해윤이 걔가 매일매일 남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연락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인이 나를 오래 봤든, 적게 봤든, 같은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나와 사이가 가깝든, 서먹서먹해졌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정말 기쁘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거다. 내가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오히려 나에겐 행복하다.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건지, 그리고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나는 나 스스로 잘 안다. 누군가는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져?’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마음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3. 나는 매일매일 글을 위한 고민을 한다. 


해윤의 해피레터를 오픈할 때 내 목표는 ‘내 레터를 읽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였다. 


그런데 최근에 깨달은 건 역시 해피레터를 오픈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 무엇보다도 나라는 것이다. 


출근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생겨 내가 글을 쓸 수 있을지 생각에 두근두근한다. 글을 쓰게 될 에피소드를 하나라도 만나면, 신이 나서 핸드폰을 꺼내 든다. 금요일만 되어도 주말에 해피레터를 쓰고 발송할 생각에 힘이 넘친다. 이미 오픈 전에 10편의 글을 뭘 쓸지 정해두었는데, 그 뒤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지금은 시즌 2 글들을 벌써 메모하는 중이다. 


나는 요즘 수업하면서 아이들에게 ‘꿈’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80퍼센트는 자신의 꿈이 의사라고 답한다. 그러면 일단 더 캐묻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널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뭐냐고’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다양한 대답을 해준다. ‘만들기를 좋아해요’ ‘축구를 좋아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 나는 그때 슬며시 나에 대한 사실 하나를 아이들에게 밝힌다. 선생님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선생님은 주에 5일은 선생님으로 일하지만, 나머지 주 2일은 글을 쓴다고. 그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의 눈도 흥미로 반짝거린다. 나는 이어서 설명해준다. 


‘그러니 햇살이도 주 5일은 의사로 일하고, 나머지 2일은 만들기를 하고, 축구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 돼. 그러면 행복한 의사, 행복한 어른이 될 거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햇살이가 뭘 좋아하는지 마음의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대다수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는 얼굴을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햇살아, 선생님 봐봐. 글 쓰는 선생님 하니까 진짜 행복해 보이지 않니?’ 


내 표정을 본 아이들은 백이면 백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럼 나도 밝게 웃으며 속으로 햇살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길 빈다.  



작년 방송작가 일을 할 때는 나는 1. 매일매일 사과를 한다. 2. 매일매일 드라마를 본다. 3. 매일매일 글을 위한 고민을 한다 라고 일기를 썼다. 그런데 올해는 마지막 항목 빼고는 두 가지나 바뀌었다. 올해 내가 매일매일 하는 일들이 작년에 했던 일보다 지금 더 마음에 든다.


매일매일 이 일들을 해서 행복하고, 이 일들을 하는 내가 내가 원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는 이 일들이 앞으로 내가 원하는 나에 더욱 가깝게 만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매일매일 하는 게 뭔지 살펴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매일매일 밥을 먹을 것이고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일을 각자 매일매일 하고 있다.


누군가는 학교로 가고 누군가는 학원에 가고 누군가는 회사로 가고 누군가는 집에서 무언가를 할 거다. 누군가는 전혀 안 하는 일을, 어떤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매일 하고 있다.


매일매일 당신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 일을 하는 지금의 당신이 행복하길, 그리고 그 일들이 지금의 당신을 미래에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데려가 주길 바라며 편지를 부친다.




Q.

매일매일 당신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해윤의 해피레터 비하인드 03

부제 : 이런 동생들을 두다니 난 정말 행운이야~


해피레터의 피드백을 받기 시작한 두 번째 레터부터, 지금까지 매번 피드백을 빠짐 없이 써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동생들이다.


사실 피드백은 주로 둘째가 써줬는데, 세 번째 레터에서는 두 명 다 써줬다. 두 명의 피드백 모두 감동이었고,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ㅎㅎ 내가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잘라왔다. (물론 동생들의 허락 받는 것도 완료!♥) 


내 동생들이 일상에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니.. 참 감사했다.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게 손해인 것 같고, 그걸 생각하면 짜증이 날 수도 있었을텐데. '어려운 사람을 선뜻 돕는 건 문제가 아니다.' '남을 돕는 건 행복한 일인데 그걸 손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불행해 지는 것 같다'라는 문장들이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내 동생들은 이미 자신들의 사회에서 내가 실현하길 원하는 가치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내 생각을 이해해주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이미 자신의 가치관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동생들이 있어서 난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 따뜻한 동생들이라서 나에게 그토록 힘이 되었구나 하고. 솔직히 피드백 쓴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런데 동생들은 피드백을 받기 시작한 레터까지 지금까지 매번 꼬박꼬박 써주었다. 너희들이 내 동생들이어서 감사해. 이토록 변함없는 지지를 표현해줘서 고마워. 


또 다른 비하인드인데 사실 이번 레터를 발송하면서 기대한 게 있었다. 피드백 폼에 누군가가 자신의 기도 제목을 적어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아쉽게도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가 레터를 보냄으로써 어떤 씨앗을 심었다는 건 알고 있다. 언젠가 정말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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