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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Jun 19. 2022

네 번째 레터 :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쉽게 정을 주는지

2022-06-05 발송된 레터


매주 월요일만 되면, 자기 반이 아닌데도 우리 반 쪽을 서성이는 햇살이를 만나게 된다.


이 햇살이는 내가 첫 근무를 시작한 2월 겨울방학에 만난 아이다. 겨울 방학동안에만 나와 함께 수업을 하다가, 3월이 되어서 햇살이는 다른 반에 배치됐다. 내 근무 시작일은 2월 14일이었으니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꽉 채운 한 달도 아닌 보름 남짓이었다. 그런데도 햇살이는 3월부터 지금까지 꼬박꼬박 내 반으로 찾아온다.


올 때도 갈 때도 꼭 인사를 나에게 하러 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바로 다음 수업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교실을 뛰어다니게 되는데.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문에 찰싹 붙은 채로 내가 눈을 마주쳐 주기를 기다리는 햇살이를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 나는 무장해제가 되어 활짝 웃게 된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햇살이가 자기 이제 간다는 뜻으로 작은 손을 흔든다. 그러면 나도 햇살이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준다.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던 햇살이는 어떻게 하면 나와 수업을 할 수 있냐고 자주 물었다. 그런데 시간표를 보니 햇살이가 월요일, 토요일에 오는데 토요일은 내 휴무일이었다. 그래서 월요일, 토요일 둘 다 햇살이를 봐줄 수 있는 선생님으로 반이 바뀌게 된 거다.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자 아이도 자신이 나와 수업할 수 없다는 건 스스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는 다른 반에 가기 전에 나에게 와 꼭 포옹을 하고 갔다. 다른 반에 가기 전에 내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거나, 어느 날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교실로 끌고 가기도 했다. 칭찬 스티커 판에 ‘선생님과 가위바위보 하기’란이 있는데, 그걸 하겠다고 수업 중에 자신의 반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 교실로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날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눈치도 없는 내 손이 햇살이를 이겨버릴 때 내 자신을 원망했다...)


어떤 날은 햇살이가 우리 학원에서 어린이날 선물로 준 팝콘 두 봉지 중 한 봉지를 나에게 내밀기도 했다. “선생님 줄게요!” 하면서. 그래놓곤 집에 가려다 다시 돌아와서 “선생님, 팝콘 다시 주세요..”라고 말해서 날 웃게 해줬다.


매번 내 인사를 받고서야 집에 가는 햇살이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정을 쉽게 줄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고작 보름 남짓이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도 좋은 선생님이니 선생님을 바꾸게 되어도 아이가 잘 적응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방학 때 나와 수업하다가 평일에는 야간반으로 반을 옮기게 된 햇살이도 있었다. 그 아이도 야간반 수업을 하기 전에 내 교실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 그 인사가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평범한 인사가 아니었다. 햇살이는 허공에다 두 손가락으로 하트를 계속해서 그렸다. 내가 웃으면서 “햇살아 고마워~”하고 연신 말해줘야 만족한 듯이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그런 햇살이가 야간반을 하다가 배가 아프다고 한 적이 있었다. 야간반 담당이 아닌 내가 정시에 퇴근 준비를 다 마쳤던 날이었다. 다른 동료 선생님과 나가려고 하는 그 찰나에 야간반 선생님과 햇살이가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야간반 선생님께서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햇살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런데 햇살이가 배가 아프다고 자주 칭얼거려서 수업 진행이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 교실에서 따로 햇살이가 있으면서 어머님을 기다려도 될지 여쭤보러 오신 거였다.


사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난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햇살이를 보니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배가 아프다는 햇살이를 우리 반 교실에 혼자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같이 퇴근하려던 다른 동료 선생님은 배웅하고 햇살이와 교실에 남았다.


그걸 보고 햇살이는 나에게 “선생님은 왜 집에 안 가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햇살이 갈 때 같이 가려고!”라고 이야기했다. 텅 빈 교실에서 햇살이는 심심했는지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동화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드레스를 입혀주고 공주님 왕관을 씌워주고 나서는 나에게 그림이 어떻냐고 물어봤다. 내가 “햇살이 그림 너무 잘 그렸다!” 말해주자 햇살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님 줄 그림이에요.”


그리곤 ‘엄마’ 옆에 나와 내 동생들 그리고 아빠까지 그려줘서 멋진 나의 가족 그림을 선물해줬다. 조금 늦게 퇴근하게 되긴 했지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햇살이에게 선물 받게 된 거다. 햇살이로부터 그림을 받아 들었을 때 생각했다.


아이들은 정을 받으면 그걸 꼭 돌려주려고 하는구나.


햇살이가 굳이 “선생님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마음을 꼭 표현했다.



최근에(그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야간반을 담당하게 되면서, 다른 반으로 보내야 했던 햇살이가 있었다. 그 햇살이가 나를 너무 좋아해 주는 걸 알고 있어서 보낼 때 망설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야간반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그 햇살이까지 맡을 여력이 도저히 되지 않아서 보내게 되었다.



처음으로 다른 반으로 가서 수업을 한 햇살이가 나에게 편지를 써줬다. 편지를 읽고 마음이 아팠던 건, 햇살이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착한 쌤과 헤어지면 마음에서 눈물 분수가 나와요.’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애정하는 선생님과 헤어져서 마음에서 눈물 분수가 나왔던 적이.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을 너무 사랑했다. 선생님은 서른 명 남짓인 아이들에게 공부 플래너를 짜게 지도하신 뒤, 그 플래너를 일일이 채점해주시고 검사해주시고 피드백을 남겨주셨다.


아이들 생일에는 쌤이 편지를 써주시고 롤링페이퍼를 만들어 주셔서 잊지 못할 생일을 챙겨주시는 분이었다. 지금 어른이 되었고, 비슷한 일을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선생님 일을 하시느라 그렇게 바쁘셨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주셨고 사랑을 주실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반년 정도만 우리를 가르치신 뒤 해외로 유학을 떠나셨다. 나는 그 분을 너무 그리워해서 이메일로 편지도 쓰고, 작년까지도 스승의 날마다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결국 연락은 끊어지고 말았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는데도, 결국 연이 끊긴 선생님이라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에 사무치곤 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걸 후회하니?’라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결국 끊어진 인연이지만, 선생님과 함께한 반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편지를 써준 햇살이와 한 교실에 우리 둘만 남아 대화를 나눴던 장면이었다. 그날 햇살이가 책을 읽다가 물었다.


“선생님 ‘온정’이 뭐예요?”


일단 정을 검색해보니 사전에서 ‘정’의 뜻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었다. 나는 정의 뜻을 먼저 설명해주며 햇살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햇살아, 우리는 서로에게 정이 들었지, 그렇지?’ 그러자 햇살이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햇살이의 표정은 기쁨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그럼 ‘정’의 뜻을 알았으니 온정의 뜻은 뭘까? 여기서 ‘온’은 ‘따듯할 온’이니까.


‘온정’의 뜻은, 따스한 사랑.”


나는 그때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온정을 배울 때 나를 바라보던 햇살이의 눈빛. 내가 햇살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좀 숙이자, 휘어지던 그 반달 눈 모양. 그 아이도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었던 순간, 눈빛이 통한 우리가 동시에 배시시 웃은 것도.


그날 햇살이를 배웅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가 무엇이었냐 묻자, 햇살이는 ‘온정’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햇살이도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라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다음 주에 수업을 나가면서 햇살이에게 줄 답장을 쓸 거다.


햇살이가 이 학원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 학원에 취업하지 않았다면, 햇살이가 처음부터 다른 선생님께 배정을 받았다면, 내가 처음부터 야간반을 했더라면 우리는 아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런데 선생님이 햇살이를 잠시라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우리가 서로를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 온정을 나눌 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그 순간은 정말 짧았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라고.


관계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일하면서 내가 맡았던 아이들을 다른 반으로 보내게 되는 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곤 했다. 내가 일하는 시간대가 포화상태가 될 때, 아이가 시간표를 바꾸게 될 때, 새로운 학원생을 받아야 할 때 등등.. 그건 내가 햇살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상황에 의해 헤어져야 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수많은 우연을 뚫고 만난 우리 인연에 감사하며, 우리가 만나는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온정을 나누는 것.


내가 줄 수 있는 한, 가장 따뜻한 애정으로.



Q.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도록,

온정을 나눈 순간은 언제인가요?



+) 해윤의 해피레터 비하인드 04 

네 번째 레터에서 편지를 써준 햇살이에게 답장 편지를 보냈다. 아이가 '저도 선생님처럼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평생 저 말을 듣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친구가 준 피드백을 보고 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해윤 오아시스, 해윤 실크로드라니 너무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ㅎㅎ 친구 말이 맞다. 나도 햇살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나 역시도 아이들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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