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2 발송 레터
어느 날, 통화를 하다 단이가 툭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빨리 네가 원장이 되어서, 나를 행정직으로 뽑아 줘.”
단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야겠다. 일단 단이의 소개를 먼저 하자면, 자신의 전공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멋있는 친구다. 작년까지는 대학원 공부도 하면서 대형과의 조교 일도 하다 보니 고생도 많이 했다. 그래서 올해 초엔 조교를 그만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재를 주변 환경은 가만두지 않는 법. 인재를 알아본 교수님의 추진으로 단이는 조교는 그만두게 되었지만 학교의 다른 부서로 스카웃이 되었다.
단이는 자기는 사실 회사에서 사무직을 하기 싫어 대학원을 갔는데 결국 이걸 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다 단이가 나에게 농담을 섞어 말하게 된 거다. 그러게, 네가 빨리 원장이 되어 학원을 차리면 자기를 행정업무 담당으로 뽑아가라고. 내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기뻐하자 단이가 꿈을 구체화 시켰다.
"한 10년 후쯤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학원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네가 원장하면 내가 행정업무 할게. 돌아가면서 아이들도 가르치자."
단이는 국문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나는 복수전공으로 '글로벌다문화학과'를 이수했다. 우리 둘의 조합으로 이렇게 멋진 꿈이 탄생할 수가! 단이의 제안이 정말 좋게 느껴졌다. 단이가 말한 그 꿈을 내가 속으로 그려보는 동안, 단이가 말했다.
"와 근데 10년 후면, 서른여섯살이겠네. 믿겨져?"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단박에 이렇게 말했다.
"와, 서른여섯이면 아직 새파랗게 젊네."
나는 원래 원장님, 하면 마흔에서 쉰인 나잇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10년 후에 내가 만약 원장이 된다면 아직 서른 중반밖에 안 된다니! 서른 중반에 내가 만약 원장이 된다면, 그래도 여전히 새파랗게 젊고 참 많은 걸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끊고 내가 10년 후의 내 모습을 ‘아직 새파랗게 젊다’고 바로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건 내 주변의 멀고 가까운 서른 중반의 지인들 덕분이었다. 그분들은 아직 나에게 생생하게 젊다는 느낌이 강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서른 중반의 지인들을 소개해보겠다.
1. 아주 먼 지(나만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인 – 사실 지인이 아닌데요...
: 모니카 / 립제이 내 스우파 최애 댄서들...♥
내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댄서 모니카와 립제이. 나는 스우파를 보면서 ‘이렇게 멋진 여성들이 많다니!’ 하고 감동받았다. 특히 립제이 댄서님께 푹 빠져서 인터뷰도 꽤 많이 봤다. 립제이님이 인터뷰 중에 ‘수업을 받기 전엔 팔굽혀펴기 백 번을 해야 했다.’를 말씀하신 걸 보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춤을 추기도 전에 저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면, 지금 내가 보는 춤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과정과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내가 가늠할 수도 없는 연단으로 하나의 전문성 있는 동작이 나왔겠구나 싶었다.
전문가가 자신의 본업을 하는 모습은 이렇게나 멋있다.
모니카와 립제이는 서른 중반인 현재 최고 전성기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유명세는 그들의 요행이 아니라, 방송에서 연락을 받기 전에 이미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안다. 모니카 립제이는 방송 전에도 이미 학원을 차려 많은 후배들을 육성 중이었다.
그리고 모니카의 인터뷰도 보면, ‘어떤 댄스판이 되어야 하는지’ 평소에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단단한 가치관이 드러난다. 이십대에 부지런히 노력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날아다니고 모니카와 립제이. 저런 믓찐 언니들이 있기 때문에 더 용기가 난다. ‘어쩌면 10년 후엔 나도 저렇게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야!’ 라고 다짐하면서.
2. 먼 지(역시 나만 기억하고 있는)인
: 구독자 28만명 영어 유튜버 양킹님.
이미지 출처 : 양킹님 유튜브 계정(양킹YangKING)
양킹님과의 인연은 좀 특이한데, 양킹님은 나를 기억 못할 것인데 나는 그분을 가깝게 느낀다는 점이다. 일단 양킹님을 처음 만난 건 교회에서다. 교회를 옮기게 되면서 나는 ○○교회를 처음 오는 사람의 교육을 담당하는 ‘행복가족부’를 가게 되었다. 이때 만난 우리 팀의 팀장님이 양킹님이었다.
처음에는 양킹님이 유튜버인지 몰랐기 때문에 나에겐 그냥 ‘교회 팀장님’이었다. 그러다 양킹님이 본업 때문에 호주로(*2019년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무슨 일로 가시게 되냐고 묻다가, 양킹님이 영어 유튜버시고 그래서 회화 영어를 하는 콘텐츠를 찍기 위해 해외로 가시게 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어 공부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바로 구독 버튼을 눌렀다. 그 뒤로 양킹님의 영상들을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양킹님의 계정의 역사에 함께했다고 나름 자부할 수 있다.(물론 양킹님은 이제 나를 기억 못하시겠지만..! ㅋㅋ)
양킹님은 나에게 ‘지금 시작해서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면 뭔가가 되긴 된다’의 산증인이시다. 3년 전 내가 구독할 때만 해도 양킹님도 영어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실 때였다. 처음엔 나도 양킹님의 공부법을 따라하며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러다 나는 중간에 포기했는데 양킹님은 그 공부법을 매일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양킹님은 28만명의 유튜버가 되셨다. 양킹님이 처음 실버버튼을 받아 개봉하는 영상을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지금의 양킹님은 정말 원어민 수준으로 생활 영어를 잘하신다. 나는 그냥 3년 동안 23살에서 26살이 된 사람인데 말이다. 하하. 양킹님을 보다 보면 ‘3년 전 양킹님 채널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10분씩만 영어 공부를 했어도 26살인 지금 내 영어 실력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안 해볼 수 없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양킹님은 원래 명문대를 나오시고 직장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으로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퇴사를 하시고 사업도 실패하는 시행착오도 겪은 뒤 '영어 유튜버'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회사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 더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서른 중후반이신 지금, 영어 유튜버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콘텐츠를 만드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신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시기만 해도 지켜보는 내가 큰 용기를 얻곤 했다.
양킹님의 유튜브를 보다보면 ‘10년 뒤의 양킹님의 모습은, 그리고 나의 모습은 어떨까?’ ‘각자가 원하는 모습에 얼마나 도달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물론 양킹님이 더 먼저 도달해있을 것 같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하시는 분...) 자극이 되어주시는 멋진 분이다
3. 나왔다 진짜 지인!
: 첫 방송 메인작가님
내 첫 방송의 메인 작가님의 나이를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메인’ 작가님인데 내 생각보다 너무 젊으셨기 때문이었다. 젊으셔도 경력은 10년 이상이신 분들. 메인 작가님들은 나에게 ‘프로’란 무엇인지 알려주신 분들이었다.
막내 작가들이 출연자 후보를 인터뷰하고 있을 때, 건너 듣기만 하셔도 ‘방송이 될지 안 될지’ 각을 아시는 분들이셨다. 인터뷰를 읽으며 행간 속 숨은 출연자의 심리를 알아채셨다. 평범한 사람들이 작가님 손을 거치면 한 편의 드라마 주인공들이 되었다. 주말이면 50분 분량의 휴먼 다큐의 나레이션을 뚝딱 만들어내셨다.
여기서 더 경이로운 건, 작가님들이 주말 동안 나레이션만 쓰시는 게 아니라 나레이션을 쓰긴 전엔 TC 체크(* 나레이션이 들어가야 할 분량의 초를 세는 일)도 하셔야 하고, 자막 수정도 하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님들이 쓰신 자막은 어쩜 그렇게 센스 있고 재밌는지.
나는 방송의 최종본을 만들기 위해 메인작가님과 피디님이 나란히 앉아서 1분 단위로 방송을 자르고, 붙이고, 순서를 바꿨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가 하시는 걸 봤다. 그걸 보며 ‘방송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나는 첫 방송에서 짧으면 짧다고 볼 수 있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에만 일했지만, 정말 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전문가’와 함께 일한 경험 말이다. 전문가란 어떤 사람인지, 전문가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직접 보고 느꼈다.
내가 앞에서 말한 지인들은 지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과 너무나 먼 지인인데, 그래도 우리 방송 메인작가님들은 내가 ‘알고 있는’ 분이다. 이렇게 멋진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어서 나는 참 복이 많았다.
단이와의 통화를 마친 후 나의 서른 중반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서른 중반의 나는 교육 전공으로 대학원을 이수할 수도 있고, 내가 본래 했던 콘텐츠 공부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에세이가 아닌 다른 글을 써보고 있을 수도 있고, 정말 한 학원의 원장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10년 뒤의 나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 같다. 모니카와 립제이, 양킹님, 메인작가님들을 보면 다들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다. 각자 치열하게 노력해서 ‘댄스’와 ‘영어’와 ‘방송’에 프로가 된 사람들. 특히 메인작가님들과 함께 일할 땐, 나도 언젠가 저분들처럼 꼭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내 몫을 하는 걸 넘어서 다른 사람의 실수도 ‘넉넉히’ 덮어줄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 되고 싶다고.
10년 뒤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으면 좋겠다. 글을 아주아주 오래 써서 10년 뒤쯤에는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꿈이 더 추가됐다. 아이들을 다루는데도 전문가가 되어 있고 싶다.
지금의 나는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자주 궁금해하곤 한다. 독립은 했을까? 결혼은... 했을까?(과연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예전에는 이것저것 상상을 하다가 결국 걱정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해보기로 했다.
나는 무엇이든 되어있을 수 있겠구나.
아직 새파랗게 젊으니까.
Q.
10년 뒤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 해윤의 해피레터 비하인드 05
이번 레터에서도 뜻깊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일단 가볍게 웃게 되면서도 두고두고 생각났던 피드백은 이것.
피드백을 읽다보면 자주 놀라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말로 나는 생각도 못한 사유를 해주는 게 타인이었다. 피드백을 통해 이렇게 귀하디 귀한 생각을 공유받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피드백의 말대로 16살의 내가 26살의 나를 보면 정말 놀랄 거다. 시간을 되돌아 16살의 나를 떠올려 보니 10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고, 놀랍게도 성장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른 여섯살의 나는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해줄지 기대가 되었다. 정말 지금의 나로서는 예측 못하고 상상도 못할 행복을 누리고 있겠지. 그걸 기대해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내용이라 이곳에 올리진 못하지만. 내 동생이 10년 뒤 자신이 이루면 좋겠는 꿈 두 가지를 상세하게 적어주었다. 나와 동생은 사이가 매우 좋고 대화도 나름 자주하는 편이다. 그런데 내 동생이 이런 꿈을 가지고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동생의 꿈은 정말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분야 쪽의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내 동생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모르는 세상을 마음껏 탐험하고 넓혀갔구나 생각이 들었다.
글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다.
누군가가 써준 글을 읽으면 그걸로 그 사람을 더 알아가게 되고,
결국은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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