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때 아이와 서로를 잘 알아서 할 수 있는 농담을 건네다가, 애정 어린 손짓들을 나누다가, 함께 깔깔대며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 나 이 햇살이와 언제 이렇게 친해졌지?’
이런 생각이 드는 아이들은 첫 만남이 주로 흐릿하다. 첫 만남이 중요하지 않을 만큼, 어느새 서로에게 섞여들어 웃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첫 만남이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 이야기할 햇살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첫 만남의 주인공이다.
햇살이가 우리 교실로 처음 오게 된 상황은 이렇다. 동료 선생님께서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셨다. 그래서 동료 선생님께서 전임으로 쭉 맡아온 아이가 우리 반으로 새로 오게 되었다.
햇살이를 처음 봤을 때 인상은 의젓하고 똘똘한 아이였다. 어린 나이인데도 안경을 쓰고 와서 굉장히 똑 부러져 보였다. 처음 봤는데도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먼저 말도 잘 해줘서 ‘(논술 수업은 서로의 상호작용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게 어렵지 않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햇살이는 새로운 교실에 들어와서 전 선생님을 찾았다. ‘전 선생님이 좋았다’, ‘전 선생님이 보고 싶다’, ‘전 선생님이랑 수업하고 싶다’고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그런데 일단 햇살이가 왔을 때 시간대가 우리 교실에 아이들이 많은 때였다. 그리고 아이들도 다 저학년이고 선생님을 많이 찾는 아이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햇살이가 나에게 보내준 시그널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은 정식 수업 전 읽기 능력을 훈련시키는 ‘트레이닝’ 커리큘럼 시간이었다. 이때 단계별로 아이들이 시간은 잘 기입하는지, 누락한 내용은 없는지 교실을 계속 돌면서 확인을 해야 했다. 당연히 나를 찾는 아이들이 많았고 나는 정신없이 교실 안을 뛰어다녀야 했다. 햇살이는 요약 파트를 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나는 햇살이의 옆에 붙어서 같이 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를 찾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 판단에 햇살이와 함께 하는 요약은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햇살이에게 요약을 먼저 스스로 하고 있어라, 선생님이 일단 다른 아이들 봐주고 오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햇살이가 의젓하고 똑똑해 보여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지라는 계산에 한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의 내 행동은 실수였다.
아이들을 봐주고 온 뒤 햇살이에게 가보니, 햇살이는 안경도 벗어놓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놀라서 햇살이에게 뛰어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햇살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때 본 햇살이의 원망 섞인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이 올 때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햇살이는 이렇게 말한 뒤 서러움에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 앞에서, 사실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우리 학원의 시스템은 일대일 맞춤 수업이다. 누구는 책을 읽고 있고, 누구는 문제를 풀고, 누구는 독서 감상문을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먼저 봐주고 있으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익숙해진 상태이다. 그래서 햇살이가 울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런 생각을 먼저 했다.
‘*학년인데 선생님이 바로 와주지 않았다고 울다니, 이건 응석이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게 사실일지라도, 일단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지금 슬퍼서 눈물이 나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봐 주며 사과했다. 금방 오겠다고 했는데, 바로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햇살이가 나를 기다리면서 많이 속상했을 것 같다고. 수업을 마치고 여전히 훌쩍이는 햇살이를 안아주었다.
원장님께 이 일을 상의 드리면서 추가적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햇살이가 전 선생님과 정말 돈독한 유대 관계를 쌓았다는 것. 햇살이가 그 선생님을 유독 따라서 사실은 저학년인데 고학년 반에 들어갈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학원 카톡 채널에서 전 선생님께서 햇살이 어머님께 보내드린 메시지들을 죽 읽었다. 햇살이의 모든 성장 과정에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힘과 노력을 쓰신 게 보였다. 그리고 전 선생님이 가장 최근에 보낸 메시지는, 햇살이가 *레벨로 레벨업한 걸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는 메시지였다.
집으로 가면서 햇살이를 생각했다. 원래 있던 교실을 떠나 내 교실로 새로 들어와야 했던 햇살이의 마음을. 자신이 정말 사랑했던 선생님이 떠난 것도 서러운데, 1년 이상을 익숙하게 지낸 교실을 떠나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과 갑자기 만나야 했다.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도착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우리 교실 의자에 앉았을 때 그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서럽고, 당혹스럽고, 화가 났을까? 그런데 새로운 선생님은 바빠서 자신한테 관심도 없어 보이니(*물론 그건 아니었지만) 더욱 서러웠을 것이다.
햇살이를 만났을 때 나의 감정은 어땠는지도 돌아보았다. 사실 햇살이가 처음 보여준 태도에 나는 무안했던 것 같다. 수업을 진행하려는 내 앞에서 계속 전 선생님을 찾고 전 선생님이 더 좋았다는 말을 하자 ‘음, 약간 다가가기 어려운 아이네’라고 판단해버렸다. 그 아이는 나에게 무안을 주려 한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저 전 선생님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프고, 당황스럽고, 서러운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표현한 것뿐이었다. 그러면 나도 그 마음에 흠뻑 공감해 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햇살이가 많이 놀랐을 것 같다고.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어 마음이 힘들 것 같다고.
햇살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우리의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전 선생님은 건강 문제 때문에 그만두실 수밖에 없었어, 너는 원래 저학년이었으니 저학년 반으로 가야 해, 여기는 일대일 맞춤 수업으로 진행되니까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봐주고 있을 때는 조금은 기다려 주어야 해. 이런 정당성 있는 상황이 있을지라도, 그 속에서 아이가 슬프면 슬픈 거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이성적 사고로 접근할 때가 있다. 정당성 있는 상황을 말하며 아이가 이해해 주길 바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이성적 사고로 아이의 마음을 재단해버리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행위를 어른이 된 우리도 우리에게 스스로 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의 상황이 이러니까’ ‘여기서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 ‘내가 참아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 이런 이성적 사고와 정당성 있는 상황 때문에 내 마음은 꼭꼭 숨어버리고 틈에 갇혀 있을 때가 있다.
‘그래도’ 슬프지? ‘그래도’ 화가 나지? ‘그래도’ 힘들지? 내가 내 마음에게 끊임없이 물어봐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사실 슬펐다고, 화가 났다고, 힘들었다고. 그러면 우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그 감정을 오롯이 안아주면 된다.
왜냐하면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Q.
내가 그동안 했던 마음의 거짓말은 무엇인가요?
+) 해윤의 해피레터 비하인드 02
부제 : 메일링 서비스 하길 잘했다......
첫번째 편에서 피드백 링크를 첨부하지 않았던 나...... 두번째 레터에서는 피드백 페이지를 열심히 만들어서 드디어! 첨부했다. 깜짝 놀랄만큼 좋은 피드백들을 읽고감동 받았다. 피드백들을 출퇴근길에서 읽으며, '해피레터를 연재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나다..!!' 라고 생각했다.
두번째 레터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피드백들 두 개를 받게 되었다. 일단 첫번째 피드백은 이것.
이 피드백을 보고 첫째로는 햇살이랑 같은 경험을 한 구독자님이 계시다는 거에 놀랐다. 두번째로는 이 피드백은 알고 보니 내 동생이 보낸 거였다..! 정말 놀란 게 처음에 읽을 때는 전혀 동생을 떠올리지 못하고 읽었는데, 피드백의 마지막 부분에서 동생이 스스로 밝혀서 알게 된 거였다. 우리 동생이 이런 일이 있었던 말이야? 하고 가슴이 덜그덕거렸다. '내 동생도 겪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내가 햇살이에게 모질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익명으로 온 피드백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너무 신기했다. 내 구독자님들은 다 내 지인분들인데도 남겨주신 익명의 피드백들은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려 내 동생 피드백을 몰라봤던 것처럼. 그리고 그 익명의 피드백들이 앞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내가 가진 어떠한 편견도 걷어낸 채, 그저 따스한 목소리만을 읽어낼 수 있겠지.
그리고 날 감동시켰던 두번째 피드백.
피드백 받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와닿게 해 준 두번째 피드백. 나는 햇살이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썼을 뿐인데, 내 글을 읽고 햇살이를 '마음 속 자기 자신'으로 의미를 확장해준 부분에서 정말 놀랐다. 역시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건 타인인 것 같다... 그리고 지인에게 괜찮냐고 묻고 싶다가도 속으로 삼킨다는 부분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햇살이가 부럽다는 말에 나 또한 정말 공감을 했다. 피드백을 통해 누군가의 또다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공감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두번째 레터를 발송하고 피드백들을 받으면서 그저 에세이 업로드가 아닌, 이메일링 서비스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가 찾아갈 수 있다는 점. 독자들이 내 글을 읽으러 와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내가 애정하는 지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그리고 구독자님들이 그저 나에게 말을 걸듯이, 편지의 답장을 써주듯이 편하게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피드백은 열린 공간에서의 댓글과는 달리 나와의 일대일의 소통이라 정말 대화하듯이 피드백을 남겨준 게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해피레터를 오래오래 쓰고 싶다. 내 이야기를 써서 나누면 행복해지니까.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또다른 수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다면, 나는 그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니까. 나는 이미 해피레터를 쓰면서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구독자님과 피드백들 덕분에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