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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한클래식이야기

별난취미


#취미가 직업이 된 로시니 


이탈리아 유명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자신이 작곡한 모든 오페라를 성공시킵니다.

그로 인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졌죠.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 베토벤은 이탈리아 출신인  로시니의 명성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불멸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베토벤 또한 로시니를 견제했다니 로시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네요. 

로시니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노래, 하프시코드,첼로 등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 덕분에 나이  20세도  채 안되었을 때 작곡했던  작품이 경연대회에 수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심지어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오텔로“”윌리엄 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이탈리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 파리, 영국까지 진출하여 유럽 곳곳의 오페라 극장에 로시니의 작품이 울려 퍼지기도 했는데요.

그의 오페라들은 주로 재미와 웃음을 주는 멜로디의 희극 오페라였습니다.

 이렇게 개성있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대성공을 거둔 로시니는 돌연 ,

작곡을 그만둡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취미생활 때문이었죠.  

로시니는 작품을 작곡하지 않을 때는 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로시니의 요리를 극찬했다고 해요.

로시니는 음식을 만드는것도 좋아했지만 음식을 만드는 재료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특히 송로버섯 (트러플)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돼지가 땅속에 있는 송로버섯을 잘 찾는다고 해서 직접 돼지를 키우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전통음식점에 송로버섯요리는 ‘로시니’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져있습니다.  


자신의 좋아하는 취미를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작곡가의 삶을 그만둔 로시니. 


 그는 남은 인생을 자신이 사랑했던 요리와 함께 아주 맛있게 보냈습니다.

게다가 직접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여  만들기도 했지요.  

덕분에 이탈리아에는 로시니라는 이름이 붙여진 요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시니의 이름을 붙인 요리대회도 있다고 해요. 로시니의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합니다.

또한 로시니가 만든 음식도 입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며 음악에서 얻는 즐거움처럼  행복한 식사시간이 되었을 것 같아요.^^ 


#기차홀릭 드보르작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안토닌 레오폴드 드보르작(Antonio Leopold Dvorak 1792-1868 )이 있습니다.

아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많이 아시는 작품 중 하나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 일 듯한데요. 이 작품의 4악장의 첫 도입부는 oo아이스바 광고 음악으로 나와 아주 친근감 있는 선율입니다. 

작곡가 드보르작에게는 아주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드보르작은 체코 프라하 음악원에 입학해서 작곡 공부는  물론 오르간과 비올라 연주까지 배우게 됩니다. 그는 체코에서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했고 영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며 연주여행 또한 왕성히 했는데요.

특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까지 받은 프로필도 가지고 있답니다. 

체코의 프라하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고 후학양성을 하던 그는 미국의 뉴욕내셔널 음악원의 원장으로 부임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고 덕분에 3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음악활동을 이어 갑니다. 미국으로 온 그는 미국 원주민의 노래와 흑인 영가 등 고유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자신의 모국인  체코를 생각하는 애뜻한 마음으로 현악 4중주 “아메리카”,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하게 됩니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드보르작은 체코음악 발전에 열정을 다했고 체코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으로 일하면서  체코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되었답니다. 


이러한 드보르작은 증기기관차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린나이인 여덟살 부터  동네를 지나가는  기차를 보기위해 철도 옆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기차 사랑은 멈추질 않습니다.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기차를 보러 갈 수가 없을 때는 제자를 보내서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였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기차를 보러 갔던 드보르작.

 하루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이상해서 철도청에 연락을 했다고 하죠.

그런데 정말로 그 기차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음악가의 예민한 귀와 그의 기차 사랑이 기차의 결함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빈과 체코 프라하에는 ‘안토닌 드보르작 호‘라고 불리는 특별 열차가 운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시대가 끝나면 해외여행을 다시 갈 수 있겠지요?

그날이 오면 저는 드보르작이 작곡한 음악을 들으며 드보르작호의 열차를 타는 저의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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