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재미난 클래식 .


몇 백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명곡들을 남긴 작곡가들은 웬지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 특별하면서 고상해보이기도 하고 우아해보이지요.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번 편에는 클래식 작곡가들의 숨겨진 재미난  뒷이야기를 알아볼까요? 아마도  더욱 클래식 작곡가들이 이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실거에요.


#취미가 직업이 된 로시니 #


이탈리아 유명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자신이 작곡한 모든 오페라를 성공시킵니다. 그로 인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졌죠.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 베토벤은 이탈리아 출신인  로시니의 명성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불멸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베토벤 또한 로시니를 견제했다니 로시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네요.


로시니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노래, 하프시코드,첼로 등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 덕분에 20세도 안되었을 때 작곡한 그의  작품이 경연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심지어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오텔로“”윌리엄 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이탈리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 파리, 영국까지 진출하여 유럽 곳곳의 오페라 극장에 로시니의 작품이 울려 퍼지기도 했답니다.


그의 오페라들은 주로 재미와 웃음을 주는 멜로디의 희극 오페라였는데요. 이렇게 개성있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대성공을 거둔 로시니는 돌연 작곡을 그만둡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취미생활 때문이었죠.  


로시니는 작품을 작곡하지 않을 때는 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로시니의 요리를 극찬했다고 해요. 로시니는 음식을 만드는것도 좋아했지만 음식을 만드는 재료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특히 송로버섯 (트러플)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돼지가 땅속에 있는 송로버섯을 잘 찾는다고 해서 직접 돼지를 키우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전통음식점에 송로버섯요리는 ‘로시니’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져있습니다.  


자신의 좋아하는 취미를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작곡가의 삶을 그만둔 로시니.


 그는 남은 인생을 자신이 사랑했던 요리와 함께 아주 맛있게 보냈습니다. 게다가 직접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여  만들기도 했지요.  


덕분에 이탈리아에는 로시니라는 이름이 붙여진 요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시니의 이름을 붙인 요리대회도 있다고 해요. 로시니의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합니다. 또한 로시니가 만든 음식도 입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며 음악에서 얻는 즐거움처럼  행복한 식사시간이 되었을 것 같아요.^^


#기차홀릭 드보르작 #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안토닌 레오폴드 드보르작(Antonio Leopold Dvorak 1792-1868 )이 있습니다. 아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많이 아시는 작품 중 하나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 일 듯한데요. 이 작품의 4악장의 첫 도입부는 oo아이스바 광고 음악으로 나와 아주 친근감 있는 선율입니다.


작곡가 드보르작에게는 아주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드보르작은 체코 프라하 음악원에 입학해서 작곡 공부는  물론 오르간과 비올라 연주까지 배우게 됩니다. 그는 체코에서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했고 영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며 연주여행 또한 왕성히 했는데요. 특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까지 받은 프로필도 가지고 있답니다.


체코의 프라하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고 후학양성을 하던 그는 미국의 뉴욕내셔널 음악원의 원장으로 부임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고 덕분에 3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음악활동을 이어 갑니다. 미국으로 온 그는 미국 원주민의 노래와 흑인 영가 등 고유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자신의 모국인  체코를 생각하는 애뜻한 마음으로 현악 4중주 “아메리카”,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하게 됩니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드보르작은 체코음악 발전에 열정을 다했고 체코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으로 일하면서  체코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되었답니다.


이러한 드보르작은 증기기관차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린나이인 여덟살 부터  동네를 지나가는  기차를 보기위해 철도 옆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기차 사랑은 멈추질 않습니다.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기차를 보러 갈 수가 없을 때는 제자를 보내서 기차가 정시에 잘 도착하였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기차를 보러 갔던 드보르작. 하루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이상해서 철도청에 연락을 했다고 하죠. 그런데 정말로 그 기차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음악가의 예민한 귀와 그의 기차 사랑이 기차의 결함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빈과 체코 프라하에는 ‘안토닌 드보르작 호‘라고 불리는 특별 열차가 운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시대가 끝나면 해외여행을 다시 갈 수 있겠지요? 그날이 오면 저는 드보르작이 작곡한 음악을 들으며 드보르작호의 열차를 타는 저의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야 겠어요.


#억울한 작곡가


클래식음악사에 대표적인 천재 작곡가가 누구? 아마도 많은 분들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 하실 겁니다. 1984년 미국에서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을 줄거리로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가 개봉되어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이 영화를 보면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하며 죽음까지 내몰은 질투의 화신이 있습니다. 바로 안토니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 ,1750-1825)입니다.  이 영화 이후로 ‘살리에리 증후군‘ 이라는 심리학적 용어가 생기기도 했는데요.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열등감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대상을 시기하며 질투하는 심리를 가르키는데요.


그렇다면 정말로 작곡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음에 내몰만큼 그의 재능을 시기한걸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살리에리는 후대에 왜곡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억울하진 않을까요?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음악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서 16세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빈에 머무는 동안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을 황제가 그를 궁정음악가로 초청을 하고 살리에리의 음악에 반한 황제는 그를 빈의 궁정음악을 책임지는 작곡가로 채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황제의 최측근에 있는 음악가로 높은 자리에서 일하면서 무려 36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며 아주 명예롭게 일생을 보낸 작곡가입니다.


살리에리는 또한 빈 궁정의 음악을 책임지는 음악가로 최고 위치에 있으면서 황실의 가족들,귀족들과도 친밀감을 유지하며 그 시대에 상당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음악가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곡가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등이 그들의  어린시절  살리에리에게 음악수업을 통해 기본기를 배웠다고 하는데요.게다가 명성만큼 인품도 휼륭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수업료도 받지 않고 음악수업을 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던 음악가들이나 그들의 가족을 위해 자선 기부 콘서트 또한 개최했다고 하는데요.  여러모로  살리에리는 부족함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그 누구도 그의 특별한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음악적으로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그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조금 달랐죠. 어린아이처럼 자기 멋대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의 없는 행동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집과 가족을 떠나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연주여행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가족의 품에서 배우고 길러야하는 인성교육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모차르트가 당시 최고자리에 있던 살리에리를 만나 예의 없는 행동을 했다면 분명 살리에리도 모차르트를 좋은 마음으로만 보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기도 하고 음악적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음악적 유대관계를 이어갔는데요.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특출한 음악적 천재성을 존중하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고의 자리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던 살리에리. 과연 그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작곡가를 향한 질투심으로 영화속의 줄거리처럼 모차르트를 죽음까지 내몰 이유가 있었을 까요?


아마도 영화는 극적인 내용을 만들어 재미와 흥미를 유발해야 하니 사실과는 다르게 만들어 졌습니다. 더불어 살리에리가 작곡한 작품들은 모차르트의 작품처럼 오늘날까지 기억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영화의 탄생에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속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음악으로 찬미하길 원치 않으신다면 왜 그런 갈망을 심어주셨습니까? 갈망을 심어주시고 왜 재능을 주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각자의 삶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원하는 일에 노력과 시간을 쏟지만 그 결과가 노력에 미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연주자로서 수많은 시간동안 연습을 했지만 무대위에서 실수 하거나 원하는 대로 연주를 마치지 못할때도 있는데요. 그때마다 포기하고 싶거나 좌절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비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기도 하지요.


하지만 진정한 만족과 행복, 그리고 자신감은 나만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지녔지만 나에게 없는 것을 생각 할 것이 아니라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소중히 가꾸어 갈 수 있을 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음악이 우리 곁에 있다면  조금 더  기쁘고 따뜻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쁘게...

오늘도...


작가의 이전글 꿈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