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첩 차지한 배포 큰 거지
옛날에 한 가난한 남자가 있었다. 섣달그믐날에도 일하러 나갔지만 빈 지게만 지고 돌아오자, 부인은 다른 집은 떡도 하고 아이들 옷도 사주고 하는데 그냥 들어온다며 타박하였다. 남자는 에이, 빌어먹을 거, 어디서 새끼줄이나 한 도막 끊어다 목 매달아 죽어버려야겠다며 집 밖으로 나섰다. 한 산길을 가다 보니 덩그러니 집 한 채가 있는데 아무도 없이 고요하였다. 들어가 보니 꽃상여와 여자 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방문을 열어 보니 술상이 잘 차려져 있었다. 남자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 싶어 술이며 고기며 있는 대로 다 먹어치우고 나서 명주비단 깔린 이부자리 위에 발가벗고 드러누워 잠을 잤다. 한참 후에 여자가 들어오더니 “어머, 벌써 오셨나봐.” 하더니 대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와 남자 옆에 옷을 벗고 누웠다. 그러고 또 좀 있다가 영감이 와서 대문 밖에서 문 열어달라고 소리를 쳤다. 여자가 깜짝 놀라 “아이고 내 남편인 줄 알았더니 이게 어쩐 일이냐. 이게, 어떤 남자여 이게.” 하고 남자를 깨워서는 골방 속에 숨어 있으라고 들여보냈다. 여자가 대문을 열어주자 영감은 거나하게 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영감이 술상에 남은 음식을 먹으면서 노래를 했는데, 골방 속에 숨어 있던 남자가 듣기에 노래가 형편없어서 제대로 다시 불러 주었다. 영감은 골방에 누가 있느냐며 나오라고 호통을 쳤다. 영감은 여자에게 술상을 새로 차리라고 하고는 남자를 앞에 앉혀 놓고 술상 위에 칼을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남자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한 잔, 두 잔 따라준 다음에 칼끝으로 고기를 찍어 남자에게 주었다. 남자는 눈도 깜짝 하지 않고 고기를 받아먹었다. 그러자 영감은 대장부 남자라고 하더니 사연이나 얘기해 보라고 하였다. 남자가 영감의 아내에게 흑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여차저차 하여 목매달아 죽으려고 온 사람이라고 하자 영감은 이 집이 셋째 첩의 집이라며, 자신은 작은마누라, 큰마누라 다 있으니 여기서 여자와 살라고 하고는 떠났다. 남자가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한 십 년쯤 지났을 때 그 영감이 귀양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영감이 나랏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벌을 받게 된 것인데, 남자는 자기 말을 처분해서 돈을 마련하여 영감을 도와주었다. 영감은 풀려났고, 남자는 그렇게 은혜를 갚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1, 353-356면, 석문면 설화10, 예전 잘 된 얘기(2), 손양분(여, 82)
**
배포가 크다는 것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그 정신과 통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여기 이 남자는 가난을 면치 못하며 부인 타박이나 듣는 한심한 삶을 버리려고 했던 건데요, 그러다 보니 남의 집 들어가서 잘 차려진 술상을 보고는 어차피 죽을 거, 실컷 먹고나 죽자, 그런 거였죠. 그러니 고기를 칼끝에 찍어 주는데도 그걸 입으로 받아먹었고, 영감은 또 그런 배포를 인정해서 자기 여자를 내주어요. 영감 배포도 만만치 않죠. 놓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자잘한 것들은 좀 놓아버려야 그 빈자리에 행운이 깃들어오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