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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Jan 13. 2016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이인 때문에 복수 실패한 구렁이

이인으로 유명한 허미수의 사촌 관산이 어느 날 경상도 쪽을 지나다 한 기와집 앞에서 쉬었다. 관산은 그 집 기운이 이상한 것을 느끼고 집 안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았다. 관산은 기와집 주인에게, 이 집에 멸문지화 기운이 보인다고 하였다. 주인은 그러면 예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고, 다음날 아침에 관산은 마당 한복판에 장작을 좀 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인의 일곱 살 먹은 아들을 장작더미 위에 묶어 놓은 뒤 불을 질러 버렸다.

다 타고 남은 잿더미를 헤쳐 보니 부러진 낫 끄트머리가 나왔다. 관산은 주인에게 낫 조각을 보여주며 뭐가 생각나는 일이 없느냐고 하였다. 주인은 가만 보더니 광에 가서 부러진 낫을 들고 나왔다. 잿더미에서 나온 낫 조각은 그 부러진 낫과 딱 들어맞았다. 그제야 모든 일이 생각난 주인이 말하기를, 오래 전에 산에서 풀을 베다가 큰 뱀이 나타나서 낫으로 찍어 죽였는데, 그때 낫이 부러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뱀이 이 집 아들로 태어나 적당한 때를 보아 온 집안을 해치려고 했던 것을 관산이 알아보고 방지해 준 것이었다. 관산은 이제 이 댁에 아들 둘이 생길 테니 그 아들들을 잘 키우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돌아갔다. [한국구비문학대계] 2-9, 780-784면, 주천면 설화12, 허미수 대감의 사촌형 관상의 지혜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신이한 재주를 지닌 사람을 이인(異人)이라고 불러요. 허미수 대감도 역시 원수 갚으려고 자식으로 태어난 구렁이를 알아보는 눈을 가져서 조카 둘을 불에 태워 죽인 이야기가 전해진답니다.

이런 식의 재생과 순환을 통한 복수 이야기는 보통 짐승의 몸을 빌려 이야기되지요. 특히 뱀이요. 수성(獸性)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수준의 성정을 나타내요. 이미 죽은 뒤에 복수를 하려니 그런 일에 어울리는 짐승은 허물을 벗는 뱀이 제격이지요. 욕망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어제도 돌고 도는 관계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도 돌고 돌고... 가해자 입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었지요. 풀 베다 갑자기 뱀이 나타났으니 손에 들고 있던 낫으로 찍을 수밖에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에 원한을 품으니 그 원수놈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일곱 살이 되도록 그놈 자식으로 귀여움 받으며 살아요. 그러고 나서 적당한 때에 복수를 하려는 것이지요.

요새 막장드라마들의 대를 이은 원한과 복수 이야기들을 보면서 ‘저런 걸 이야기라고 만들어 전파 낭비하고 시청자들을 바보로 만드나.’ 하며 한탄도 많이 했는데요, 인간 감정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고 강렬한 것이 분노이고 보면, 그것이 요새 세상의 세대갈등과 맞물려서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원한이 쌓이고 쌓여 자식 세대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그것 때문에 부모와 갈등하는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이 일견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가 되는 거예요.

새해 벽두부터 뱅뱅 도는 이야기들을 좀 했는데요, 이런 이야기들은 좀 더 자주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돌고 도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잘못된 순환은 방향을 돌려줘야 할 것이고, 막혀서 돌지 못한 부분은 적당히 터주기도 해야 할 것이니, 오래 전부터 인간의 문제와 해결에 관심을 갖고 만들어지고 전해져 온 이야기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질 만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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