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뽑힌 동생
옛날에 가난한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조실부모하고 동냥을 해서 먹고살았는데, 어느 날 함께 동냥을 나서다가 삼거리에서 동생이 우리도 이제 이만큼 컸으니 부모님 제사라도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며 각자 살 방도를 마련해 보자고 하였다. 형도 그러자고 하여 부모님 제삿날 삼거리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그때까지 부지런히 돈을 벌어오기로 하였다.
일 년 뒤에 형제는 다시 만났는데 동생은 쌀과 돈을 제법 가지고 있었지만 형은 완전히 빈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이 준비해 온 것으로 제사를 지내고 함께 자는데, 형은 동생이 뭘 얼마나 벌어왔나 싶어 동생의 보따리를 꺼내 보았다. 보따리 안에는 제사상을 차리고도 남아 있는 쌀이 제법 되었고, 돈주머니도 묵직하니 두둑했다.
동생의 돈을 보고 그만 욕심에 눈이 뒤집혀버린 형은 자고 있는 동생의 두 눈을 쏙 빼버리고는 동생의 보따리를 들고 도망갔다. 동생이 더듬더듬 문 밖을 나서고 보니 웬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 눈이 어째 그렇게 되었냐고 물었다. 동생은 제삿밥 지으려고 불을 때다가 나뭇가지가 튀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노인은 마을 뒤 언덕에 있는 샘물로 눈을 씻으면 나을 것이라고 하고 사라졌다. 동생이 노인 말대로 하여 눈을 고치고 다시 동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한 마을 입구에서 머슴 대여섯 명이 물지게를 지고 지나가면서 “우리 마을엔 왜 물 나오는 샘 하나 없는 걸까?” 하며 투덜대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좀 있다 한 스님이 지나가면서 혀를 끌끌 차며 “저 마을은 정자나무 주위를 석 자 세 치만 파내면 물이 그냥 쏟아질 텐데 그걸 모르고 저 고생들을 하고 있으니, 원.” 하면서 지나갔다. 동생이 그 소리를 듣고 무슨 말인가 싶어 물어보려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동생은 얼른 머슴들 뒤를 따라가서는 마을사람들에게 좋은 샘 자리를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스님에게 들은 대로 정자나무 주위를 석 자 세 치 파라고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물이 나오게 해준다는 말에 괭이며 호미 등을 손에 하나씩 들고 모여 정자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 자 정도 파들어 갔을 때 벌써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이제 물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살게 되었다며 동생에게 쌀도 퍼다 주고 먹을 것을 갖다 주고 하더니, 내친 김에 동생 장가도 가게 해주자며 의논하였다. 온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서로 사위 삼으려고 하는 바람에 동생은 장가도 잘 가고, 마을사람들이 집도 지어 주어 금세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 잘살던 동생은 아무래도 형님이 잘 지내는지 걱정이 되어 거지잔치를 열었다. 부잣집에서 거지잔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온갖 거지들이 모여들어 옷도 한 벌씩 얻어가고 돈도 받아가고 하였는데,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내도 형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이제 거지잔치도 그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어느 날, 대문을 닫으려고 나가는데 비쩍 마른 거지 하나가 비척거리며 들어왔다. 동생이 보니 틀림없이 형이었다. 동생은 따뜻한 목욕물을 준비하여 목욕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형도 좋은 곳에 장가들게 해주고는 형과 함께 오래오래 잘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6-8, 161-168면, 북하면 설화17, 지성이면 감천
이 이야기에는 사실 뒤에 다른 이야기들이 덧붙어서 형성되는 복합서사를 살필 때 진짜 재미있어지는데요, 아쉽게도 지면관계상 그걸 일일이 다 쓰기는 좀 어렵네요. 다만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이야기 구조이지요? <흥부 놀부>와 거의 같아요. 형은 욕심 많고 동생은 그저 착하고, “너 눈은 왜 그러니?” 물었을 때 “우리 형이 내 눈을 뽑아갔어요.” 하고 대뜸 고자질하지 않잖아요.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하지요. 그렇게 형의 잘못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니 산신령도 도와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눈을 뽑아가고, 그걸 또 샘물로 금세 고치고, 산신령이 현신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동생은 거저 복을 받는 것처럼 보이니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이야기는 아주 엄정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다 그럴 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