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을 여승에게 장가보내 준 명관
옛날에 남의집살이 하는 가난한 총각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사십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가고 있어 동네 놀림거리가 되었다. 총각은 서러운 마음에 원님을 찾아가 소지를 올렸다. “제가 아직까지 장가를 못 가고 있습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원님은 총각의 말을 듣자 사령을 불러 총각을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은밀히 또 하나의 명을 내리기를, 저 위 절에 가서 여승 하나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사령들은 나이가 차도록 시집도 안 가고 산 속에서 혼자 지내는 죄가 크다며 여승을 잡아왔다. 원님은 여승을 총각이 갇혀 있는 옥에 집어넣고는, 밥도 한 그릇만 주고, 이불도 하나만 넣어 주었다. 그렇게 밥을 나눠 먹고, 어쩔 수 없이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자면서 몇 날 며칠을 보내다 보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을 통하게 되었다. 원님은 날을 받아 온 동네에 청첩장을 돌린 뒤 두 사람의 혼례식을 올려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축의금도 어찌나 많이들 주었는지, 총각은 장가 잘 가고 부자 되어 잘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8-7, 163-165면, 밀양읍 설화52, 고창녕의 노총각 장가보내기
<삼국사기> 기록에도 많이 나오더만요. 나라 살림이 흉흉해지면 지도자는 온 나라의 과부, 홀아비, 노총각, 노처녀들을 구제해 주던데요. 그게 나라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할 일을 못하고 서러움에 가득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라 살림에도 영향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런가요? 아님, 나라 살림이 엉망이어서 그런 서러운 사람이 생기는 것인지요. 노총각 장가보내려는데 하필 여승을 잡아 올리는 부분이 인상적이지요. 여염집 멀쩡한 처자를 잡아올 수는 없고, 잉여인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한 예라고 할까요? 저를 비롯해서 제 주변에도 이런 잉여들 상당히 많은데요, 불도를 닦기 위해 나이 차도록 시집도 안 가고 혼자 사는 여승이란 곧, 독야청청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 있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여승처럼 관심도 없지는 않은데, 나랏님이 이런 데 신경 쓰실 겨를이 없어 서러운 인생들이 자꾸 쌓여만 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