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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Feb 10. 2016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호랑이 눈썹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나무를 해다 팔고 부인은 디딜방아 품을 팔아 죽을 얻어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과 겨우 연명하였다. 남자는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남자가 어느 날 장에 갔다가 백인재라는 고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고개를 죽지 않고 잘 넘어가면 팔자를 고친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부인에게 백인재 얘기는 안 하고, 암만 살아도 희망이 없으니 세상에 나가 방도를 한번 찾아보겠다고 하고 옷 한 벌 보따리에 싸서 백인재를 찾아갔다. 백인재는 강원도 어느 깊은 골짜기에 있었는데, 그 고개는 사람이 한 백 명이 모여야 함께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넘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죽을 마음도 먹고 간 터라 겁도 없이 혼자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가 고개 꼭대기에 올라서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우뚝 서 있는 게 보였는데, 그 위에 허연 노인이 도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남자가 노인 앞에 가자 노인은 가던 길이나 가지 바위 위에는 뭐 하러 올라오느냐고 하였다. 남자가 노인에게 “이 재를 혼자 넘으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데 왜 나를 잡아먹지 않소? 난 이제 당신 밥이 될라요.” 하자 노인은, “나는 이 산 산신령인데, 당신은 사람이어서 내가 못 잡아먹는다.”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하였다. 잠시 후에 저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백 명이 모여서 고개를 넘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노인은 자기 눈썹을 하나 뽑더니 그걸 눈에 대고 사람들을 한번 보라고 하였다. 남자가 그 눈썹을 대고 보니 백 명 오는 중에 사람은 한둘밖에 없고 전부 말, 소, 닭 등 짐승들뿐이었다. 남자는 산신령에게 눈썹을 하나 얻어서 내려왔다.

남자는 집으로 가던 길에 옹기장수 부부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 행색이 무척 초라한 것을 보고 남자는 저 부부도 우리처럼 형편이 좋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다가 담배 피우는 척하면서 산신령 눈썹을 대고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여자는 사람인데 남자는 장닭이었다. 서로 배필을 못 만나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는 것이었다. 남자는 옹기장수 부부와 동행을 하여 와서는, 장터까지 가려면 길이 먼데 날이 저물었으니 자기 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며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부인은 집을 오래 비울 줄 알았던 남편이 이틀 만에 돌아오면서 손님까지 데리고 오니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서 손님 대접한다고 저녁밥을 하러 부엌에 갔는데, 남자가 몰래 눈썹을 대고 부인을 보니 암탉이었다.

옹기장수 부부와 이 남자 내외는 단칸방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되었는데, 모두 잠이 들자 남자는 자신의 부인을 옹기장수 부인이 자던 곳으로 옮겨 놓고 옹기장수를 깨웠다. 남자는 옹기장수의 뺨을 때리면서 “이놈의 영감탱이, 사정을 봐서 단칸방이라도 재워주었더니 내 부인을 탐을 내서 이런 짓을 해? 그렇게 탐이 나면 내 부인은 네가 데리고 가.” 하고, 자기 부인에게는 “옹기장수 영감이 나보다 더 낫더냐? 그래서 그쪽에 붙어 자는 건가?” 하면서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옹기장수 영감과 자기 부인에게 안 나가면 죽여 버린다며 소리쳐 내쫓아버렸다.

남자는 옹기장수 부인에게, 당신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라 사람끼리 서로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라며 달래고는 옹기장수가 두고 간 옹기들을 다음날 장에 가서 함께 팔았다. 전에는 옹기장수 부부가 하루에 한 짐도 못 팔았는데 이제는 내다 놓으면 순식간에 다 팔려버렸다. 그렇게 부지런히 장사를 해서 한 삼 년 지나고 나니 논밭도 사고 집도 하나 새로 짓고 아이도 낳고 잘살게 되었다. 한 사오 년 지나고 나서 비가 촐촐 오는 날이었는데 남자가 사랑방에 앉아 가만 생각하니, 옹기장수가 두고 간 짐이 밑천이 되어 이렇게 잘살게 되었는데 옹기장수와 자기 부인은 맨몸으로 나갔으니 잘살고나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남자는 부인과 의논하며, 그들이 분명 맨손으로 갔으니 어디선가 죽었을지도 모르고 만약 그렇다면 시체를 찾아 안장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부인은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며 한번 찾아보라고 하고 옷 보따리와 노자를 준비해 주었다. 남자는 그들이 분명 어디 산속에나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한편, 옹기장수는 여자와 함께 밤중에 쫓겨나서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하여 산속에서 밭이나 일구고 살 요량으로 산으로 갔다. 그런데 밭 할 자리를 찾느라 다니다가 이상하게 생긴 큰 덩어리를 하나 주웠다. 옹기장수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금덩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옹기장수와 여자는 금덩이를 팔아 논밭을 사고 기와집도 새로 지었다. 남자가 어느 골짜기를 가다 보니 기와집 두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남자가 혹시나 싶어 지나가던 나무꾼에게 그 집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나무꾼은 그 집엔 엄청난 부자 부부가 사는데 지나가는 과객들도 노자까지 챙겨주며 대접을 잘 해준다고 하였다. 남자가 그들이 원래 이 골짜기 살던 사람이냐고 물으니 몇 해 전에 여기서 밭을 일구다가 금을 발견해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남자는 틀림없이 자신이 내쫓았던 옹기장수라고 생각하고 그 집에 찾아들어갔다. 기와집에서는 예전 부인이 저녁밥을 하고 있다가 전 남편을 알아보고는 놀라서 뛰쳐나왔다. 남자는 옹기장수 부부와 마주앉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옹기장수와 의형제를 맺고 그 후로도 함께 잘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7-2, 184-197면, 외동면 설화37, 백인(百人)재의 범눈썹


서로 잘 맞지 않는 이들끼리 배필을 이루고 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고, 그래서 짝이 서로 맞게 바꾸었더니 한쪽은 안 되던 장사가 잘되고, 한쪽은 우연히 금덩이를 발견해서 벼락부자가 되어요. 막혔던 기가 뚫리는 현상인 거지요. 민담에서 금덩이는 흔히 엄청난 복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그럴 만한 사람에게 그럴 만한 때에 나타나요. 아무런 개연성 없이 그저 우연히 황당무계하게 제공되는 복이 아니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죽겠다고 백인재 혼자 올라갔다가 행운스럽게도 호랑이 눈썹을 얻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겠지요. 다만, 현실의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혼자 열심히 절실하게 노력하기보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살피는 것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가까운 사람에게 고민을 터놓고 의논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이것은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인물을 오히려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해요. 혹은, 관계 유지를 위해 들이는 노력이 지나치게 소모적인 경우는 없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그런 경우는 대부분 자신의 소망과 법칙에만 집착해서 자신의 방식대로 상대방이 따라오기를 바라는 상황이잖아요. 정말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인정하고, 맞춰나갈 수 있는 부분은 서로 힘을 합쳐 맞추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호랑이 눈썹 이야기를 보면서, ‘내 배우자가 나와 맞지 않아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 같으니 일단 배우자를 바꿔야겠다.’라고 결심한다면 그야말로 호랑이 눈썹에게 미안한 오독의 대표 사례가 되는 것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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