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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Feb 11. 2016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남백월 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은 둘 다 풍골이 비범하였고 세속을 초월하려는 뜻이 있어서 서로 잘 지냈다. 나이 스물에 승려가 되고 둘 다 처자를 거느리고 살면서 생계를 꾸리는 일도 하였으나, 육체와 세상의 무상함을 보고는 마침내 인간 세상을 버리고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가 박박사(朴朴師)는 북쪽 고개에 있는 사자암에, 부득사(夫得師)는 동쪽 고개의 돌무더기 아래 물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이들은 각각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미륵불을 부지런히 구하였고 박박은 아미타불을 경건히 염불하였다. 정진한 지 삼 년이 채 못 된 어느 날, 저물 무렵에 박박이 기거하는 곳에 스무 살 가량의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나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청하였다. 박박은, 절은 깨끗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곳이니 지체 말고 떠나라 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낭자는 부득이 머무는 곳에 가서 또 전과 같이 부탁하였다. 부득이 어디서 이 밤중에 왔느냐고 하니 낭자는 고요함이 태허와 한 몸이 되었으니 어찌 오고 감이 있겠느냐며 다만 어지신 분이 바라는 뜻이 깊고 무거우며 덕행이 높고 굳다 하기에, 보리를 이루도록 돕고자 할 뿐이라 하였다. 부득은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요, 하물며 깊은 산골에서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느냐고 하고 곧 암자로 맞아들여 머물도록 하였다. 부득은 조용히 염불을 하며 밤을 보냈는데, 날이 새려 하자 낭자가 부득을 부르며, 불행하게도 마침 해산할 기미가 있으니 짚자리를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부득이 부탁을 들어주자 낭자는 해산을 한 후에, 이번엔 목욕을 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지만,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더 커져서 목욕통을 준비해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다. 그런데 잠시 후 목욕물에서 향기가 진하게 풍기더니 물이 금빛으로 변하였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자 낭자가 스님도 이 물로 목욕하라고 하여 부득이 억지로 그 말대로 하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피부가 금빛으로 변하였다. 그 옆을 보니 홀연히 연화대좌가 있었다. 낭자는 부득에게 앉으라고 권하고는, “나는 관음보살인데 대사를 도와 큰 깨달음을 이루어주려고 왔소.” 하더니 사라졌다. 한편 박박은 부득이 지난밤에 반드시 계를 더럽혔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부득에게 가서 비웃어 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밝은 빛을 발하며 몸이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박박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부득이 지난밤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주자 박박은 탄식하며, “내 장애가 많아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나고도 도리어 만나지 못한 셈이 되었습니다.” 하고 옛 인연을 잊지 말고 자신도 도와 달라고 하였다. 부득은 통 속에 금물이 남았으니 목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박박도 목욕을 하자, 부득처럼 무량수불이 되어 두 부처가 엄연히 서로 마주 대하였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앞 다투어 달려와 우러러보며 감탄하였다. 두 부처는 불법의 요체를 설명한 뒤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三國遺事 卷第三 塔像 第四)


부득과 박박은 둘 다 높은 도를 깨치고자 정진하였는데, 어느 날 저물녘 깊은 산중에 찾아온 젊은 여성 때문에 흔들리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때 두 사람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확연하게 다르지요. 박박은 불도에 정진하고자 하는 자신의 소망에 따라 여인을 밀쳐냈고, 부득은 불도에 정진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으나, 깊은 산중에서 여인을 돕는 일 또한 불도를 이루는 일이라 생각하여 여인을 받아들였지요. 게다가 여인의 해산을 돕고 알몸으로 함께 통 안에서 목욕도 하였어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그 순간 부득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행동 기준을 마련한 것이지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준만을 붙들고 있는 것은 자신의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박박의 서사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다만, 박박은 나중에라도 부득의 서사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깨달음을 얻었어요. 불도를 이룬 두 승려의 이야기 이전에, 자신의 소망과 법칙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과 상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인간관계에서 큰 차이가 발생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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