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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Apr 08. 2024

처녀 혼에 장가든 남자

[한국구비문학대계] 7-5, 월항면 설화29

브런치에 먼지 털고 새로 문 연 뒤 꼭 한 달 만에야 찾아왔습니다. 오늘부터는 매일 한 편씩 써보려고요.

제 브런치 스토리는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로 채워질 것입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되어 있는 자료들을 소개할 텐데요, 우리 옛이야기이지만 정말 완전 생소하고 낯선, 하지만 매우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구연된 그대로 채록되어 있는 자료를 읽기 편한 정도로만 살짝 각색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제 식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제 생각을 풀어볼 것입니다.


이야기 한 편 한 편 열심히 보다 보면,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옛이야기라고 해서 시대적 배경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읽으면 오히려 이야기가 아주 재미없어진답니다. 사람 사는 건 동서고금 어디든 비슷하잖아요? 왜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을지, 현대의 비판적 시선이 아닌, 열린 마음과 눈으로 보아 주세요. (오늘 이야기는 조금 비판적으로 보긴 했지만요^^)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노닐며 사유의 자유를 즐겨 보세요. 

오늘부터 1일, 시작합니다.^^




한 집에서 스물세 살 된 딸을 시집보내려고 날을 받아놨는데 딸이 귀신에 홀려서 죽어 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죽은 딸의 원귀가 식구들의 꿈에 차례로 나타나서 자기를 시집보내 주지 않으면 남동생을 잡아가겠다고 하였다. 사흘밤을 꿈에 시달리니, 남동생은 곧 죽을 텐데 공부하면 뭐 할 거냐고 하면서 밥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옛날에 어디 물어보면 귀신을 짝지워주는 데가 있다고 하였으니 알아보자고 하였다. 아버지는 그말을 듣고 꾀를 내어 서울에 광고를 냈다. 딸의 이름과 나이, 생일을 모두 적고 장가올 사람에겐 논 스무 마지기와 집 한 채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짜 결혼시키는 것처럼 지푸라기를 엮어 형상을 만들고 옷도 새 옷으로 골라 입히고 쪽두리 씌워 신부 모습을 갖추고, 집을 지어 딸이 거처하는 방을 반들반들하게 잘 꾸며 놓았다. 

산골짝에서 화전을 하던 가난한 남자 하나가 부인에게 그 광고 이야기를 듣고는 귀신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부인이 말리는데도 한번 가본다고 하였다. 그리고 논과 집을 준다는 문서에 도장을 받고 정식으로 혼례를 올렸다. 지푸라기 엮은 것을 갖다 놓고 절을 시켜달라고 하니 모두 꺼렸지만 돈을 많이 주어 겨우 혼인식을 한 뒤 신방에 술상을 차려 주니, 신랑은 술을 한 잔 먹고 혼자 “자, 오늘 저녁에 좋은 날 아니오. 술 한 잔 묵고 잡시다.” 하면서 자기 베개 옆에 지푸라기 엮은 것을 눕혀 놓고 누웠다. 그런데 그 지푸라기가 들썩들썩거리더니 신랑의 가슴팍에 딱 붙었다. 신랑은 놀라 벌떡 일어나서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도망갔다.

그 다음에 또 한 사람이 찾아와 혼례를 올렸는데, 이 신랑은 술에 취해 잠이 들었고, 지푸라기가 또 구불텅 왼쪽으로 가서 딱 붙었다. 부모가 그걸 보고 이제 딸 시집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가 보니 신랑이 죽어 있었다. 부모는 상여를 두 개 해서 신랑과 딸의 장사를 치르고 죽은 신랑의 남은 식구들을 잘 보살펴주었다.



아이고, 이런.

처녀 혼에 장가들었다는 제목 보고 그저 영혼 결혼식이라도 했나 보다, 했는데, 그것보다 좀 잔인?하네요?^^

제가 원귀, 복수, 마녀, 이런 쪽 전문이긴 한데요, 이런 귀신 이야기도 있었네요.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있으니 깔끔하게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면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있는 것이 원귀죠. 죽긴 하였으나 이승에서 아직 힘을 쓸 수 있으므로 어정쩡한 상태랍니다. 그런데 이 처녀 원귀는 시집가려다 못 갔던 것이 한이 되었네요. 

아니, 그런데 논 스무 마지기, 집 한 채를 걸었으니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던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처녀의 혼이 들러붙으니 한 사람은 도망가 버렸고, 또 한 사람은 술에 취해 있던 바람에 안타깝게도 처녀의 혼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네요. 

예전엔 처녀, 총각인 채 세상을 떠나면 저승에서라도 짝을 지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괴담으로 떠도는 이야기 중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부로 영혼결혼식을 하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데려 간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기도 하네요.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전승 자료가 한 편밖에 없는 것이지만 꽤 강력한 자극을 주는 이야기이니 아마도 다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척 사랑하던 두 사람이 미처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거나 하는 경우 가족 친지들이 이들이 저승에서라도 맺어지라고 기원해 줄 수는 있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의 짝으로, 그것도 돈으로 매수?하여 맺어주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자살한 여성 연예인에게 영혼결혼식을 올려주었던 일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네요. 2007년의 사건입니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영혼결혼식 상대는 전혀 아무 연관 없던, 역시 결혼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어떤 남성일 뿐이었어요.  

요새처럼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이런 이야기, 특히 결혼은커녕 취업도 연애도 힘들다고 하는 청년 세대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결혼에 목을 매는 이야기는 가족을 이루는 것을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도록 세뇌시키지요. 그런 가치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한 부모 세대는 청년 세대에게 여전히 결혼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 접하고 보니 역시 가족을 이루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런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릅니다. 


*마침 영혼결혼식을 자세하게 취재한 자료가 눈에 띄어 공유합니다. 

사실, 이 의례 자체는 매우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올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라도 이승에 한을 남겨두지 말고 저세상으로 잘 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본래, '잘 보내주기' 위한 애절한 마음에서 행해지던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생판 모르는 남녀를 굳이 이렇게까지 맺어주려 애쓰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혼 같은 거 안 했어도 이승에 남은 한이 없다고 한다면 굳이 일부러 해줄 필요는 없겠고요.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96293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굿당에 영가를 위해 신랑신부 역할을 하는 인형과 신방을 꾸밀 이부자리, 예단이 놓였다.> 위 이야기의 신방이 바로 이렇게 꾸며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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