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구비문학대계] 하의면 설화 37
요새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가 화젯거리죠.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 예고편은 봤는데 줄거리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우리 옛이야기엔 명당 관련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한참 설화 공부할 때 명당 얘기만 나오면 너무 지겹고 재미가 없었어요. 조상 섬기기에 목숨 건 사람들이 하는 것이 명당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명당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조상을 섬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겠다. 유교를 종교처럼 믿어서라기보다, 조상을 잘 섬겼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싶었지요. 그 결과란 '내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내 가족', '내 후손'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조상을 잘 섬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려고 '집안'을 그렇게도 내세우도 지키려고 했던 것이겠지요.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허튼 무속과 친한 이유는 결국 그것이지 않겠습니까. 제것 지키기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 들고 온 것은 그런 재미없는 명당 이야기는 아니고요, 도깨비 덕분에 얼떨결에 명당 얻은 이야기입니다. 거의 로또 수준의 행운을 얻은 사람의 이야기여요. 구연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고장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소싯적에 잠시 목포 염업 조합에 근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곽씨 성을 가진 부조합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깁니다. 부조합장의 증조부께서 대단히 마음씨 좋고 선량한 분이었으나 가세가 곤궁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어느 땐지도 모르고 조반 자시고 놀러 나가려고 그러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오늘이 추석날이요. 그런데 아이들 점심 줄 것이 없습니다." 하거든요. 그래서 이 분이 딱해서 그냥 뱉은 말이, "그래? 오늘 장에 가서 내가 양식도 팔고 고기도 많이 많이 사갖고 올 테니까 그렇게 알어." 그러고 장에 갔단 말입니다. 가서는 당신은 돈도 없으니까, 남의 심부름을 해주었는지 원 못된 친구를 만나서 공술을 먹었든지 거나하게 술을 먹고 밤에 느지막하게 달은 밝은데 혼자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다가 취중에도 집은 점점 가까워지고 손에 쥔 것은 없고, 집을 못 들어가겠더랍니다. 그래서는 그냥 길 가운데 반듯이 드러누워서는 '어째야 좋단 말이냐.'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 소리가 나요. 사람 오는 소리가 나니까 그저 죽은 듯이 가만 있으니까, 몇 사람들이 오다가 이분을 보고 흔들어 보더니, "아, 이 사람 죽었네. 죽은 사람 우리가 가서 매장해 주자." 하더니 떠메고 간단 말이여. 이분은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한 사람이 바구리 섬으로 가자고 하고 가서는 재보더니 다른 한 사람이, "에이, 이거 안 된다. 이런 상사람을 지사 날 이런 훌륭한 자리에다 묻어 주면 쓰나. 그러지 말고 저 쌍개머리에 묻어 주자. 이 사람 옹색하게 사니까 밥이나 먹고 살라고 하게."
하, 그때야 '이것이 사람이 아니구나. 귀신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단 말이오. 그래 가만히 있으니까 어느 참에 쌍개머리까지 가서는, 그 근방이 임자 없는 땅이었다 그래요. 그냥 황지였던 모양인데, 근방에 있는 바위 같은 것을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고 하고는 이 사람을 딱 눕혀 놓고 제를 올리고 참으로 매장을 하려고 달려든단 말이요. 이 사람이 그때 "어떤 놈들이냐!" 하고 딱 악을 써버리니까, 도깨비들이 어디로 간 곳 없이 조용해지거든요. 이분이 누워서 그대로 두 손으로 이리 저리 만져가지고 자기 누웠던 자리를 잘 표시해 두고는, 그 다음에 자기 부모 묘를 그 자리에 썼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지역 곽씨가 다 재정이 넉넉하고 사람들도 분명하고 그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산이 보통 속칭 쌍개머리라고 하는데 상당히 명당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내가 직접 들은 일이 있습니다. 도깨비가 명당을 정해 줬다 하는 이야깁니다.
여러분, 웬만하면 도깨비랑은 친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해코지하는 나쁜 도깨비도 있지만 어설프게라도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는 게 도깨비거든요. 그런데 가만 보니, 사실 이 사람은 한 게 아무것도 없네요. 대단히 마음씨 좋고 선량한 분이라고는 했는데 추석 땐데 아침 먹고 나서는 놀러 나갈 생각을 했고, 장터에 가서도 어디서 돈이 났는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는 길 한가운데 드러누워버리잖아요. 사람 좋기만 하면 이렇게 무책임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여유 가득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부인 입장에서는 엄청 속 터지는 유형의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도깨비들이 길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는 사람을 보고는 죽은 줄 알고 매장을 해주려고 합니다. 처음에 떠올렸던 바구리 섬이라는 데는 엄청난 명당인가 봐요. 이런 사람에게 그 정도 명당까지는 줄 수 없다고 도깨비들이 판단합니다. 그러고는 쌍개머리라고 하는 임자도 없는 땅에 자리를 잡았어요. 위 이야기에서는 '지사'라고 표현되었지만, 보통 '정승 날 자리'라는 게 명당의 표본이 되곤 합니다. 우리 주인공은 그 정도 복을 받을 만큼의 자질을 갖지는 못했나 봐요. 다만 너무 곤궁하게 사니까 밥이나 먹게 해준다고 한 것이 그래도 그 후손들이 대대손손 잘먹고 잘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도깨비 조화라고 하는 것이지요.
제 지갑 속에도 아직 확인하지 않은 로또와 연금복권이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그저 밥이라도 먹게 해 주십사 바라고는 있는데, 이렇게 대놓고 요행을 바라면 오히려 도깨비들이 골탕 먹이려 들지도 모르겠어요. 위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비워야 기회도 찾아오는 법인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