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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Apr 10. 2024

양반 삶기

옛날에 한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아무리 부잣집이어도 양반 아니면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찾다가 결국 양반 집에 딸을 시집보냈는데 하루는 딸네 집에 다니러 갔더니 딸이 장작을 한아름 안고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야야, 니 뭐하노?”

하니, 딸은 솥에 물을 한 가득 부으며,

“아부지, 양반 삶습니더.”

하였다. 

딸이 양반 집에 시집가긴 했는데 너무 가난해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친정아버지가 다니러 오니 대접할 것도 없어 찬물 한 솥을 끓이면서 양반 삶는다고 한 것이었다. 옛날에 양반을 너무 찾다가 그렇게 망했다고 한다.

                                                                                                          (언양면 설화31, 양반 삶기)




옛날에 한 사람이 양반 한번 되어 보고 싶어서 서울의 한 정승 집을 찾아갔다. 그집에서 사십 년을 살았지만 양반 이름을 얻지는 못하여 대감에게 따졌더니, 대감은 꼭 양반 한번 만들어 줄 테니 두 집만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좋은 갓과 도포 등으로 잘 차려 입힌 뒤 다급한 일이 생기면 한 장씩 내놓으라고 하면서 편지 두 장을 써 주었다. 

이 사람이 한 집을 갔더니 근사한 양반이 오셨다고 주인이 대접을 잘 하였다. 주인과 집안 조상 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점심상이 들어왔다. 이 사람은 정승 집에서 심부름하고 일하던 습관이 있으니 얼른 일어나 상을 받아들려고 하였다. 그것은 양반 태도가 아니었기에 주인이 놀라서 "여봐라 이놈 잡아 묶어라." 하고 소리쳤다. 그때 선비가 얼른 편지 한 장을 꺼내주었다. 주인이 편지를 쓱 보더니, 고약한 놈이라며 밥도 안 주고 쫓아버렸다.

점심밥도 못 먹고 쫓겨난 선비가 "참, 그놈의 양반 되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하고는 또 한 집을 찾아갔다. 그 집에서도 대접을 잘 받았는데 술상을 내주어 술 한 잔 두 잔 권커니 작커니 서로 얘기해 가면서 먹다 보니 취기가 올라왔다. 주인과 작별을 하고 나오는데 머리에 쓴 갓이 방문에 걸려 넘어갔다. 양반이었으면 두 손으로 갓을 잘 잡고 방에서 나왔을 것인데 그런 상식이 없었던데다가 취해서 머리를 끄덕끄덕 하고 나오다 보니 갓이 걸린 것이었다. 주인이 그걸 보고 저놈 잡아 묶으라고 소리치니 이 사람이 얼른 편지를 내주었다. 주인은 고얀 놈이라고 하면서 내쫓았다. 대감이 써주었던 편지엔 "그놈 부족한 점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오." 하고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은 대감집에 다시 와서, "대감님! 세상에 양반 되기 같이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절대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랍니다." 하고는 그 대감집에서 일생을 늙어 죽었다. 

                                                                                       (황룡면 설화51, 양반 되기를 포기한 사람)




양반 되기 참 고달프네요.^^

한 사람은 딸을 시집보내면서 부잣집이어도 양반 아니면 안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양반 한번 되어 보겠다고 대감집에서 평생을 심부름만 하면서 보내기도 했네요. 옛이야기에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조선 후기쯤 되면 양반을 돈 주고 사고팔기도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 있어서인지, 지방의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 특히 몰락양반이 서울의 정승집을 찾아가 어떻게든 한 자리라도, 아주 한미한 벼슬자리라도 얻어 보려고 그렇게 빌붙어 사는 이야기들이 있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결국 정승집에서 청지기나 하면서 지내게 되지요. 청지기는 집안 일을 봐주는 관리인을 말합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집사쯤 되려나요?

첫 번째 이야기의 '양반 삶기'라는 제목이 재미있지요? 굳이굳이 양반을 찾아 결혼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밥 먹을 것도 없었던 딸은 아버지가 찾아오자 대접할 것도 없어 맹물을 끓여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양반 삶는다고 하지요. 양반 따위 삶아 버리겠다는 분노의 표현인가요.ㅎ 밥도 못 먹는데 양반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싶지요. 그런데 또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행색만 적당히 갖추어도 양반이라고 대접해 줍니다. 결국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이지 못했을 때 곧바로 쫓겨나긴 하지만요. 양반이라는 이름이 대체 뭔가 싶지요. 드라마 같은 데서 흔히 보이는, 명품 휘감은 졸부가 천박하게 구는 모습을 떠올려 보아도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재벌녀와 평범남의 이야기가 주목을 끄는 모양인데요, 기존의 뻔하던 남녀 구도를 바꾸면서도 모래성 같은 재벌의 모습을 재미나게 보여주어 많이들 좋아하시는 같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긴 한가 봅니다. 권력 구도에 대한 새로운 시선들이 나타나고 있지요. 위 이야기들이 보여주듯 양반이라는 이름은 허울뿐이고, 우리 인생은 먹고사는 문제만 그럭저럭 해결되면 또 그럭저럭 살게 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그 '그럭저럭'도 너무 힘든 세상이라는 것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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