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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un 15. 2019

기생충의 경제학,나도?코를 겨드랑이로 향하게 한다

스포 있음.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2019)

영화 초반 생각 없이 웃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의 삶에 녹아들었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속이 메스껍고 불편해졌다. 영화 시작 전 먹은 햄버거가 얹히고 기분이 찝찝했다. 볼 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한참을 곱씹어보니 알겠더라. 스크린 한가득 자꾸만 내 모습이 비쳐서 그랬다. <기생충>은 2D로 봐도 4D인 영화다. 기억 속에 저장된 사람 누린내와 시큰하고 눅눅한 행주 냄새가 자꾸만 느껴지니 말이다. 이 영화, 넋 놓고 보며 생각 없이 웃다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인정하기 싫어 애써 외면한 나의 태생과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내 눈앞에 또렷하게 들이댔다. "여기서 기생충 아닌 사람 나와봐"라는데 칸의 심사위원들도 뜨끔했나 보다. 결국 나도 당신도 제도와 시스템(경제 구조와 정치)이 낳은 기생충으로 살아감을 뇌에 각인시킨다. 영화는 시스템이 돈이 아주 많은 부자마저 기생충으로 만들었음을 친절하고 세련되게 설득한다.


해가 들지 않는 반지하는 대표적인 비정상적 주거형태 중 하나다. 지하는 채광과 통풍이 좋지 않아 보통은 주차장, 창고 또는 상업시설로 쓰인다. <기생충>의 대사를 영어 자막으로 번역한 달시 파켓은 인터뷰에서 "영어에 '반지하'라는 단어가 없어 애를 먹었다"라고 했다. 적은 예산에 삶의 존엄과 기본권을 구겨 넣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도시살이의 슬픈 현실이 담긴 단어다. 돈이 없으면 대학생 하숙집보다 싼 월세에서 안락함을 포기당한 채 살아야 한다.


내려가고 내려가야 나오는 기택이네, 오르고 올라야 나오는 박사장네


봉준호 감독은 '집'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큰길에서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몇십 개 내려가야 나오는 골목길에서 또 나타난 좁은 계단 아래에 위치한 반지하에 산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가족과 대비되는 박사장(이선균)의 집은 고급 단독주택이 줄지어 있는 언덕배기에 있다. 집 대문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웬만한 집보다 큰 주차장에 압도당한다. 계단 몇 개를 올라가 대문 앞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고 또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그제야 집 앞에 넓게 깔린 푸른 잔디밭이 나온다. 높은 곳에서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호받는 으리으리한 개인 저택, 그리고 좁고 습기 찬 집에 그나마 나있는 창 앞으로 쉴 새 없이 행인들의 발과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창문 바로 앞 전봇대 아래 놓인 쓰레기와 함께 살아야 하는 반지하. 영화는 이 두 집을 번갈아 오간다.



낙수효과, 위에서 넘치는 부가 아래로 쏟아진다고?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박사장(이선균)의 가족이 캠핑에서 돌아오던 날. 막내아들 다송(정현준)은 대저택의 마당에 텐트를 펴고 놀이를 한다. 반면 기택(송강호)의 가족네 반지하 집은 빗물에 잠겨 집안에서 물이 목까지 차오른다. 기택네 뿐만이 아니다. 저지대에 있던 집과 가게에 물이 들이닥쳐 한밤중에 긴급 대피소로 만든 동네 체육관에 주민들이 가득 찬다.


<기생충>의 폭우 장면에서 위로부터 계단을 타고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는 일부 경제학자와 정치인이 주장하는 '낙수효과'를 통쾌하게 조롱한다. '낙수효과'는 재벌이 더 많은 돈을 벌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 사회적 자원을 집중해 도우면 우리 사회의 부가 넘쳐흘러 모두에게 분배된다는 이론이다. 재미있는 것은 '낙수효과'라는 용어조차도 미국 개그맨 윌 로저스가 처음으로 쓴 말이었다는 거다.

'낙수효과'의 이론과 실제. 이미지 출처: 네이버 사전


미국과 우리나라 등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위기가 왔을 때 대기업 성장에 따른 이익이 하위 계층에게 흘러가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낙수 이론에 근거한 경제 정책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소득격차와 기업의 사내유보금, 부채는 동시에 증가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쓴 《피케티의 자본》에 따르면, 미국이 8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 낙수 효과를 채택한 이후 오히려 소득격차가 심화됐다. IMF에서는 상위 20%의 소득이 1% 포인트 늘면 경제성장률은 0.08% 하락하고, 하위 20%의 소득이 1% 포인트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0.38% 증가했다는 정례보고서가 나왔다. 또한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낙수 효과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허구의 이론이라고 비판받는다.


도시 곳곳에 일어난 침수 피해 현장. 지난 2017년에 인천 반지하집이 침수 살고있던 노인이 숨졌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기생충>의 물난리 장면은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돈이 아닌 사회적 위험과 오물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더 노력해서 돈을 벌어야지"라는 말은 "배고프면 빵 사 먹으면 되지"만큼이나 대책 없는 소리다. 영화는 성실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와 통제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너지는 삶을 보여준다.



텔레콤 계수, 와이파이가 밥 먹여준다.

예고편에 수없이 나온 장면. 두 남매가 핸드폰을 한껏 위로 치켜들고 와이파이를 찾아 집안 곳곳을 헤맨다. 몰래 끌어 쓰던 윗집 와이파이에 비밀번호가 걸려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집에서 와이파이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게임이나 하려고 그런 게 아니다. 밥값을 벌 수 있는 단기 일자리 정보를 얻고, 신청하고, 일거리를 받기 위해 절박하게 통신망을 찾아다닌 거다.

새로 생긴 카페의 와이파이에는 비밀번호가 없다!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두 남매의 엄마 충숙(장혜진)은 피자가게 박스 접는 일이 들어왔는지 카톡으로 확인해달라고 한다.
일가족의 밥줄이 와이파이에 달려있다.


과거에는 가계에서 쓰는 돈 중 밥값을 계산했다. 엥겔지수는 가계 소비 중 식료품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이제는 통신망에 연결되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됐다. 통신이 없으면 교육, 구직, 취직 등 기본 정보와 차단되고 이는 곧 경제적 고립상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엥겔지수보다 한 가구 총수입 중 통신비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척도로 삼아 빈부격차를 계산한다. 텔레콤 계수는 가계 지출에서 정보통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다. <기생충>은 의(옷), 식(밥), 주(집)보다 '통신'이 더 우리 삶의 필수요소가 되어가는 현실을 영화 시작부터 알려준다.



자영업자 폐업률 90%, 대만 카스테라에 녹아내린 삶

존재 자체가 스포가 되는 그 남자. 지하실에 4년을 넘게 숨어 산 근세(박명훈)는 아내 문광이 준 젖병을 쪽쪽거리다 말한다. "대만 단수이 카스테라를 열었다 망해서요.."

경기도 부천 대만 카스테라 폐업. 이미지 출처: 시사in ⓒ윤성희

국내에서 대만 카스테라를 안 먹어봤거나 모르는 사람 거의 없을 거다. 정확히 4년 정도 전에 서울 근교 지하철역 근처까지 생길 정도로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사업이 인기였다. 저렴한 가격에 꽤나 많은 양 그리고 폭신한 식감에 자극적이지 않은 맛까지. 대만판 백설기 정도로 만만하고 대중성 있는 먹거리였다. 그런데 한 종편채널의 방송에서 '대만 카스테라에 식용유가 가득 들어간다!'며 반죽에 식용유를 콸콸 넣는 장면이 방송된 후  대만 카스테라 가게는 줄줄이 문을 닫았다. 수십 개 분량의 카스테라를 만드는데 재료를 들이붓는 건 당연했고, 대만 현지 레시피에도 식용유가 들어가며 인체에 해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카스테라를 먹으면 전염병이라도 걸리는 양 소비자들은 "속았다"며 등을 돌렸다. 반죽에 설탕을 쏟아 넣는 것과 식용유를 들이붓는 것 중 뭐가 몸에 더 해로운지는 정확히 따져봐야 알겠지만 아무튼 대만 카스테라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발레파킹은 대만 카스테라집 열었다가 망하고 한 거지. 대리운전이 아니라." 오랜만에 기사식당에서 밥다운 밥 먹으며 사업 쫄딱 망한 얘기 하는데도 이 집 가장 참 해맑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 선정적인 보도에 급감한 매출로 가게문만 닫은 게 아니다. 가게를 여는 데 드는 돈, 폐업 처리를 하는 데 드는 돈 여기에 발품 팔아 찾은 몫 좋은 곳에 가게 내느라 지불한 권리금 등이 모두 빚으로 남아 인생 문도 닫은 자영업자들이 수두룩하다. 철저한 시장조사를 하지 않고 위험에 대비하지 않은 개인의 무능함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많은 성실한 개인들의 삶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보를 한 방송국도 가맹 본사도 그 누구도 그들의 짐을 함께 져주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재해처럼 불어닥친 줄도산 바람에 실패한 인생이 다시 일어서려면 최소한의 먹고사니즘은 국가가 책임질 몫이다. 하지만 당시 도산한 가맹점주가 빚을 갚고 살길을 찾을 때 잡을 단 하나의 손은 사채업자뿐이었다.




부자증세, 당신들의 치안을 위해!

부자에게 세금을 가장 많이 걷을 수 있는 정치 슬로건은 "가난한 사람이 많아지면 당신 집 근처의 치안이 위협받습니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세금을 늘려 보편적인 복지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위에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을 낼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거다.

성실하게 노력해 자수성가한 나름 '착한' 부자 박사장(이선균)도 이유도 모른 채 피해자가 돼버렸다. 경제 시스템과 조세정책 이래도 수정이 필요 없을까?

누군가 부를 축적할 때는 개인의 뛰어난 능력뿐만 아니라 전쟁이 없고 전기와 물이 들어오는 안정적인 환경, 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인도에서 혼자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도와 시스템이 누군가를 부자가 되도록 도왔다면, 성공한 사람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한국의 법과 경제정책은 오히려 부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을 돕고 오히려 세금도 감면해줬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수입에 비해 부자보다 더 많은 비율의 세금을 내는 기형적인 형태를 이어왔다.


<기생충>을 거칠게 요약하면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은 상류층에게도 위험한 사회를 만들어 당신들의 생명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다. 잘못된 경제제도는 보통 사람을 가난에서 못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성실히 노력해 부를 쌓은 이들의 삶마저도 위협한다.



쉬운 해고, 너 내 맘에 안 들어 그냥 나가

얼마나 유능하고 성실한가는 상관없다. 수년간 나를 위해 일 한 사람도 처음 보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 하나에 바로 해고해버린다. 내 직원을 둘러싼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전화한 통도 귀찮다. 밖에는 돈만 주면 일 한다는 사람이 한 트럭은 쌓여 있으니까.

사용주의 근거 없는 의심에 성실한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잘린다.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뿐만이 아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소리 없이 교체당했다.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다.

<기생충>은 한국의 사용자와 노동자, 갑과 을의 관계도 비춘다.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는 모두 엄마 뱃속에 두고 나왔다. 태어나면서부터 갑의 입장인 사람뿐만 아니라 자수성가한 박사장(이선균)도 매한가지다. 한진 일가 등 대기업 오너와 가족들이 종업원에게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가하는 것만이 갑질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갑질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밥줄을 손에 쥐고 한순간에 조용히 끊어버리는 것 역시도 갑질이다. 집안일을 수년간 성실하게 문제없이 해온 문광(이정은)이 정말 결핵에 걸렸는지 간단하게 확인하는 것보다는 귀찮다는 듯 하루아침에 내보내고 바로 다른 가사도우미를 고용해버린다.


가사도우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는 교체하기 쉬운 부품 신세다. 사용자의 이런 태도에 노동자들이 서로 돕고 부당함에 맞서는 편 보다는, 오너 일가에 순종하며 다른 노동자를 해고하는 데 적극적으로 일조해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월급을 받으며 생활을 유지하는 게 우리 사회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조선시대 유물 아니었소?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4 수생이다.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박서준)와 그가 영화 속에서 보이는 성향에 비춰볼 때, 대충 점수에 맞춰 가면 중위권 대학은 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오로지 최상위권 대학교를 목표로 계속 도전을 해왔다. 자신이 가고 싶었던 연세대학교의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면서도 "나는 이거 범죄라고 생각 안 해요. 여기 꼭 갈 거예요"리고 태연하게 말한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명문대학교 졸업장은 고소득 직종을 얻는 보장된 길이며, 상류층과 인맥을 쌓아 계층을 높이는 기회다. 몇 문제만 더 맞히면 명문대에 가는 건데 손에 잡힐 듯 자꾸만 멀어지는 기우의 꿈이다. 집에 앉아서 부모님이 시켜주는 과외를 받으며 편히 공부하는 이들과는 달리 기우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을 늘 학업과 병행해야 했다. 기우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기엔 안정된 직장의 문은 좁고, 학업의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다.

이 집 말썽꾸러기 막내아들을 가르치려고 유명 선생님들이 여럿 왔으나 얼마 못 버티고 나갔단다. 모두가 포기한 아이를 가르치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학위가 없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힘들 뿐만 아니라 학위 없이 성실히 노력한 개인이 상류층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의, 식, 주를 갖추기도 힘들다. <기생충>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경쟁을 강요받는 타락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비단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이웃의 행복을 짓밟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우리 사회에 대한 자성과 성찰의 계기가 된 영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지'라며 내가 태어난 그 위치에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가난한 이들은 더 번듯한 곳에서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을 수도 없는 구조가 돼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계급 상승을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진 자에 기생하며 경쟁자를 물어뜯어 제거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일까.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우리 사회의 무너진 계층이동의 사다리와 최상류 층이 커뮤니티를 공고하게 만들어 진입장벽을 더 높이 쌓아 올리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



신뢰, 부자의 금고를 채우는 가장 단단한 자물쇠

클라스가 다른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자신과 동급인 누군가의 보증 또는 혈연관계다. 세상의 수많은 위협과 변수들로부터 나와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장치라고 생각해서다. 대기업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신입사원 공채를 제외한 경력직 또는 특수직 선발의 경우 대부분 '추천제'를 활용한다.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 역시 졸업생의 혈연과 추천을 가장 신뢰도 높은 평가지표로 삼는다. 사람을 뽑을 때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는 방법이지만, 반대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좁은 자리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같은 레벨의 사람이 추천한 누군가가 들어가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실력보다는 돈으로 산 종이 한 장 짜리 학위만 있으면 인생이 쉽게 풀린다.

기우(최우식)는 사회 상류층의 이 같은 특성을 파고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꿀 일자리를 여는 유일한 열쇠가 이들과 같은 계층인 척 사기를 치는 것뿐인 현실이 아프다. 매번 사업이 망하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느라 하루 종일 소일거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번이 대입 시험에도 낙방이다. 아무리 성실히 노력해도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천재성이 없으면 노력을 해도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삶을 지속하는 개인은 감히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금물이다. 하지만 기우 친구 민혁(박서준)이 들고 온 수석과 함께 부자가 돼서 안락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기우의 가슴을 가득 채운다. 냄새와 어두운 계단으로 상징되는 계층 차이는 뜬금없이 선물 받은 수석(욕망)때문에 차이가 좁혀지는 듯 보이지만 수석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가사노동, 엄연한 경제활동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우리 15세 자녀들 생각보다 많이 알 고 있습...

'자녀들과 보기 민망하다'는 일부 불편한 여론이 일었던 장면이다. 박사장 부부는 소파에 누워 손으로 서로의 성욕을 채워준다. 이 장면에서 결국 가진 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상대방의 성욕을 채우는 것일 뿐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5분도 안 걸리는 라면 하나, 설거지 하나 제 손으로 할 수 없는 이들은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지만 살 수 있다. 물론 돈을 주고 고용한 가정부가 집안일을 대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안일과 청소를 하는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아랫사람이고 내 자존심의 선을 절대 넘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매일 성실하게 건물과 지하철 그리고 거리를 닦는 청소 노동자나 가사 노동자가가 나와 완전히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은연중에 '힘들고 더러운 일 안 하려고 노력하고 돈 버는 거지'라는 생각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 역시도 우리의 경제와 교육 시스템이 만든 의식이다.



나바호족, 영혼까지 빼앗긴 그들

박사장(이선균)의 막내아들 다송(정현준)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인디언 원주민 복장을 하고 인디언 화살을 집안 곳곳에 쏘며 돌아다닌다. 사실 다송이 하고 다니는 인디언 복장은 '나바호족'의 전통 복식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선량한 주인들이었던 그들은 침략자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대표적인 종족이다. <기생충>은 나바호족 복장을 한 아들 다송 역시 사회 시스템이 만든 침략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게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ㅂㄱㅎ, 당신을 향한 오마주


영화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 여럿있었다. 먼저 연교(조여정)는 집안의 모든 예산에 대한 사용과 통제권이 있다. 집안 살림과 아이들의 교육을 맡은 연교는 주변 사람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꼭두각시 같은 모습을 보인다. 박근혜 씨를 대통령 만들고 빨대 꽂아 살았던 기생충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재판장에서 계속 밝혀져 우리의 아픈 역사로 기록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자주 강아지들을 안고 다녔다. 연교도 늘 강아지를 안고 다니며 저택 안에서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운다. 물론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모두 가사도우미의 몫.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의 올림머리와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출처: 한겨레, <박근혜의 '올림머리 집착' 그 기원을 알아봤다>


근세(박명훈)의 지하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전직 대통령들의 흑백사진. 자신을 거둬 먹이는 건 아내인 문광(이정은) 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박사장(이선균)을 찬양한다. 국민연금처럼 당신의 손바닥에 실제로 떨어지는 몇 푼의 돈도 필요 없다.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박사장의 사진을 놓고 찬양하며 그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매일 전등을 깜박이며 경외와 존경의 신호를 보낸다. 근세의 행동에서 일부 맹목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태극기 부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신자유주의 미국을 찬양하며 북한은 없애야 할 빨갱이라고 외치는 태극기부대 위에 올라선 문광(이정은)이 북한 아나운서 목소리를 흉내 내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 죽어가면서 까지 "박 사장님 리스펙트!"를 외치던 근세의 충성은 종교에 가깝다.

태극기 부대의 박정희와 박근혜를 향한 맹목적인 찬양


박사장(이선균) 가족이 이 집에 오기 전부터 가사도우미를 하며 집안의 모든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문광(이정은)의 모습에서는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의 모습이 여러 번 보인다. 안절부절못하며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연교(조여정)에게 "매실청 좀 드실래요? 긴장 확 풀리게"라고 하는 문광. 꽤나 능숙하게 먹을 것으로 상황과 연교를 통제한다. 이 모습은 올해 3월 <시사저널>에서 공개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녹취록과 매우 흡사하다.


박 전 대통령: "그게 낫지. 품위가 있어야지, 이게. 기와 한 장만 딱."
최순실: "과일 갖다 드릴까요?"
박 전 대통령: "네?"
최순실: "과일. 더 드세요."
박 전 대통령: "근데 하여튼 기와 하나만 갖고, 이렇게 좀 청와대(라고) 하면 안 될까요? 이거는 좀 이상하지만. 이건 기완가 뭔가, 이게. 그러면 안 될까요?"
최순실: "그거는, 그거는 안 될 거 같아. 왜냐하면 사시는 데를."
박 전 대통령: "좀 촌스럽죠. 상징적으로 만들어야지. 너무 똑같이 하려고 하니까 이상해졌잖아요."
최순실: "낫토 드세요.
박 전 대통령: "네?"
최순실: "낫토"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일이나 먹고 낫토나 드시란다. 무능한 정부의 정치와 경제 정책 그리고 사법 시스템까지 기우(최우식)는 뇌사상태에서 깨어나 배꼽을 잡고 웃으며 비웃는다. 하지만 그도 단 한 가지 '진실'앞에서는 웃음을 멈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시발점이 된 Jtbc 뉴스룸 보도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봉 감독은 서복현 기자와 심수미 기자를 영화 속에 깜짝 선물로 등장시켰다.

<기생충>에 깜짝 출연한 jtbc서복현, 심수미 기자. 영화 속 기택(송강호)가 증발했다는 밀착카메라 보도는 뉴스룸 형식과 똑같다. 봉 감독님 뉴스 덕후였어..

봉준호 감독은 전작에서도 수많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재앙과 무력한 정부의 모습을 그렸다. 늘 끔찍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개인과 가족이 자구책을 찾는 수밖에 없다. 영화가 아닌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책이 변하고 있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의 삶은 늘 투쟁 상태다.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점점 더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가는 현실이다.



그래서 다 함께 잘 살 수는 없나요?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 우리 집은 언덕 끝 옥탑방에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데 가스비를 아끼려고 1층 주인집에 내려가 눈치 보며 따뜻한 물을 길어와 싱크대에서 나를 씻겼다고 한다. 우리 이모는 반지하에서 살았다. 아직 뒤집기에 서툴었던 친척 언니의 등 위로 기어가는 지네와 갓난쟁이 주변을 소리 없이 튀어 다니는 꼽등이를 보는 것이 일상인 그곳. 반지하나 옥탑방이나 대학생 하숙집보다 싼 월세의 작은 공간에 네 식구가 몸을 욱여넣고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공간이다. 엄마와 이모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자며 얼굴에 바를 로션 살 돈을 아껴 서울 외곽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엄마와 이모는 요즘도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을 회상한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도 운이 억수로 좋았던 것이다. 10년 동안 누구 하나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비가 필요했다면, 잘못된 보도로 사업이 속절없이 망해서 빚더미에 앉았거나, 자식들이 과외를 시켜달라고 조르거나 돈 많이 드는 예술 분야에 꿈을 품었다면 작은 아파트 한 칸은 손에 넣지 못했을 거다.

모든 도전에서 실패한 아버지는 더 이상 계획이란 걸 하지 않게 된다. 반면 아들은 늘 계획을 하고, 계획에 없던 일이 일어나면 어찌할 줄 모른다. 이들은 성실한데 운이 나쁘다.

봉준호 감독은 묻는다. 평범한 집 한 칸 가지려면 평범한 개인은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하고, 돈을 모으는 중간에 본인이나 가족이 큰 병에 걸리면 안 되고 사업에 망하지 않으며 직장도 안정적으로 다녀야만 하는 사회. 보통 사람이 기본권을 침해당하지 않는 집 한 칸을 가지려면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정상인지. 혹자는 "무엇이든지 개인이 노력하면 되는 자유주의 국가에서 무슨 말을 하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살이 되면 국가에서 아파트를 주고, 평생 의료비와 대학원까지 학비가 거의 무료인 나라가 같은 지구 상에 여럿 존재한다. 이런 나라에서 개인은 다른 사람의 살을 깎아먹는 전쟁을 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일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일생을 누린다.


나도 부모의 눈물 나는 노력으로 반지하와 옥탑방의 삶은 기억에서 지운채 작은 아파트에서 물난리와 극한의 추위 등은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상위 1퍼센트의 부자가 아닌 우리 집안의 어른들도 지나가다 청소 노동자들을 보면 어린 내 귀에 속삭였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 또한 바닥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는 노숙자 곁을 지나며 한참을 씻지 않은 누린내를 조롱하듯 코를 막고 달려간 적도 있다. <기생충>을 보며 타인이 풍기는 고단함과 슬픔의 냄새에 오만하게 반응했던 내 모습, 그리고 누군가에게 풍겼을 내 냄새가 떠올라 부끄러웠다.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냄새난다고 코를 막는 이선균의 모습에서 얼음보다 더 차가운 악마를 보았다. 하지만 과연 내가 박 사장이었다면 같은 상황에서 과연 코를 막지 않았을까.

내일에 대한 계획 없이 그저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을 기생충 취급하고싶은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보통사람도 모두 <기생충>이 불편하다.

<기생충>은 자본가 개인, 실패한 개인이 악한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올라올 수 없는 시스템이 악한 것이라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이 삶을 꺾은 재앙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를 만들고 수많은 법과 제도를 세운 것 아닌가. 부디 봉 감독을 비롯한 '다 함께 잘 살자'는 꿈을 꾸는 이들이 포기하고 이미 다 함께 잘 사는 북유럽으로 가버리지 않길 소망한다.  모두가 '천국'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그들도 80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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