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덖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며니 Jul 13. 2019

마약은 괜찮고 환경파괴는 안된다?롱샷의 불편한 이중잣대

2019 롱샷, 개봉 전 시사회 리뷰

열여섯.

우리나라에서는 중3~고1 정도의 나이입니다.


여러분의 열여섯 살은 어땠나요?

저는 말이 없는 아주 조용한 아이였답니다. 

반에서 키가 가장 작아서 거의 매번 맨 앞자리에 앉았고요.

그때의 저를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들어보고 싶네요.


여러분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나의 과거를 공유하고 나의 꿈을 기억해주는 누군가,

30여 년이 지난 세월 동안 과거의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있는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치는 일.

상상만 해도 정말 설레지 않나요?


영화 <롱샷>은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과거의 나를 만나며 시작합니다.



여자 주인공 샬럿 필드, 미국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 장관입니다.

샬럿은 출중한 외모에 뛰어난 일처리, 원만한 성격 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샬럿 필드 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 정말 아름답습니다. 우아함, 신뢰도 등 각종 대중 선호도 평가점수가 모두 90점을 넘습니다.

유머감각이 조금 부족해 82점 정도라는 것 말고는요.


우리가 흔히 봤던 드라마나 영화 속 강력한 힘을 가진 여성 캐릭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죠?

우리의 샬럿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의지가 없다고 밝혔을 때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추천합니다.

아름다움과 권력 그리고 주변인들의 신망까지 모두 잡은 그녀는 그렇게 대선 후보가 됩니다.



남자 주인공 프레드 플라스키, 마약 조직을 취재할 때 직접 조직 속에 잠입하는 겁 없는 기자랍니다.

세스 로건이 그냥 스크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능청스럽게 빵빵 터뜨리면서 웃깁니다.

푸근한 외모로 갱단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고 특종을 건져냅니다.

잃을 게 없는 그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어디든 목숨 걸고 들어갑니다.

거대 자본과 권력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부정한 돈과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느니 밥줄을 끊겠다고 소리칩니다. 퇴직금과 실업급여도 필요 없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와버립니다.



겁 없는 여자 샬롯과 잃을 게 없는 남자 플라스키는 우연히 보이즈투맨이 축하공연을 하는 환경 보호 파티에서 마주칩니다.

알고 보니 이 둘은 엄청난 유년시절을 공유하는 사이였습니다.

샬롯이 16살 때까지 어린 시절을 공유하다 30년이 흐르고 갑자기 마주치게 된 겁니다.


둘의 어마어마한 추억은 극장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웃었으니,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완벽한 대선 후보와 욕설이 난무하는 기사를 쓰는 인터넷 매체의 기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을 아주 강하게 이어주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 유년 시절을 공유한다는 것. 두 번째 같은 목표를 가졌다는 것.

둘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신념을 공유합니다.


세상의 비리와 악행에 분노하며 쏟아내던 기자의 거친 기사는 어쩌면 허공에 외치는 욕설과도 같았는지 모릅니다.


기자가 대선후보의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막 쏟아내는 것을 멈추고, 공감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샬롯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함께하는 팀을 만나면서 그의 막 나가는 다혈질 성향이 다듬어진 겁니다.

그가 쓴 연설문을 대선후보가 읽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합니다.


많은 나라들이 그녀가 내놓은 환경보호 규제에 동참하고, 미국 유권자들은 센스 있는 그녀의 말을 공유하는 것이죠.

잃을 게 없는 남자와 두려움이 없는 여자는 그렇게 전 세계 일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머릿속과 마음 그리고 철학을 공유합니다.

완벽한 그녀에게 조금 부족했던 유머감각은 글재주가 있는 기자 플라스키가 보완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 샤를리즈 테론과 세스 로건만 보입니다.

영화가 설정한 캐릭터의 삶에 완벽히 몰입이 안 된다는 뜻이죠. 둘의 연기에 감탄을 하게 되고 능청스러운 상황에 웃을 뿐입니다.

한국판 포스터는 '재미', '로맨스 코미디, 로코' 등에 초점을 맞추지만,

미국판 원작 포스터에는 로건 + 테론, 어울리진 않지만 불가능 한 건 아니다! 라며.  두 배우의 이름과 평소 이미지에 포커싱 한 마케팅을 하고 있네요.


대선후보가 클럽에서 마약에 취하는 장면에서는 이미 공감대를 상실해버립니다.

엄연히 불법인 약을 하고는 국무장관인 그녀는 미국의 병사가 타국에서 인질로 잡힌 국가위기 상황을 해결하러 미군 벙커로 갑니다.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선을 넘어버렸지 말입니다.

이 둘은 환경 보호와 불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지만 각종 마약은 괜찮다는 이중적인 도덕 잣대를 가지고 있답니다.

모든 규율과 벽을 넘어 본인의 진짜 모습을 찾아간다는 설정인 듯싶지만 거물 정치인이 약에 취해 헤롱 거리며 국가 중대사를 본다니, 개그 욕심에 너무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완벽한 논리와 도덕성으로 무장한 사람도 마약을 하는 것처럼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빅 픽쳐가 아닌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 선을 넘고는 이제 막 달립니다.

대선 후보가 "여기서 자위 안 하는 사람 있습니까?"를 외치며 말이죠.

자 이제 폭주 기관처럼 달리는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합니다.


누군가 사랑을 하게 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잃을 것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고요.

맨 땅에 헤딩하며 원칙만 따라 살던 남자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완벽한 삶을 만들어 온 여자는

서로의 깊은 내면이 10대 때와 달라진 것이 없음을 서로를 통해 비춰보게 됩니다.


하지만 거물 정치인이자 대선후보인 그녀는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계는 그녀가 작은 실수라도 하길 바라죠.

특히나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높은 도덕성으로 대중의 신뢰를 받는 그녀라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댑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아름다운 오로라와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일은 100% 옳은 일입니다.

옳은 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은 삶을 걸어야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이익만을 취하는 거대 권력과 자본을 향해 공익과 도덕을 외쳐야 하니까요.

때문에 나의 삶은 티끌 한 점 없이 청렴해야 하며,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희생해야만 하죠.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아주 중요한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환경 보호를 택하자니 대선 후보로서 입지가 흔들리고,

사랑을 택하자니 환경 보호는 물론이거니와 대선 후보로서의 이미지를 다 망쳐버리게 생겼습니다.

이런 딜레마 상황을 샬롯과 플라스키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요?


<롱샷>이 두 배우의 매력과 가끔 빵 터뜨리는 농담 때문에 기분이 유쾌해지는 영화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마블 영화의 슈퍼히어로나 왕좌의 게임처럼 100퍼센트 판타지라서 현실성을 따질 필요가 없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몰입감이 떨어집니다.

10대 때에 감정을 공유하던 두 남녀가 우연히 마주쳐 갑자기 불타오르는 설정에서부터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미국 여성 대통령이 배출되는 과정 또한 매우 허술합니다.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따라가기엔 끝으로 갈수록 지칩니다.

제가 16살 때 봤으면 더 순수하게 몰입했을 것 같은 영화 <롱샷>이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로 <롱샷> 시사회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기운을 빌려 아이가 되듯, 흐름에 취해 생각을 놓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