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덖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기며니 Jul 27. 2019

가’족’같은 사람들이 삶을 뒤흔들 때

<누구나 아는 비밀> *극장가기 전까지 귀를 막고 눈을 감으세요!*

30년도 더 된 일로 오늘, 지금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가족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보며 가족 식사 자리에서 별안간 몇십 년 전의 일을 꺼내 말씀하시다 엉엉 울던 할머니. 그리고 빠르게 주고받던 눈빛과 양 미간 한가득 찡그린 표정만으로 소리 없이 대화하던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가 꺼낸 오랜 이야기는 그때까지도 시퍼런 날을 세우고 당사자들에게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리던 친척, 식탁에서 눈물 흘리며 엉엉 울던 나이 든 어른들의 모습은 제게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스페인 작은 시골마을에 뿌리를 공유하는 가족들이 모여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갑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들이 스페인의 시골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만듭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시작하고 5분~10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공식 안에 들어온다고 해요.

요즘 흥행하는 영화들이 대부분 이 법칙을 따르죠.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하고 30분이 다 될 때까지 주요 사건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 대신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밀고 당기기를 하며 긴장감을 유지하죠.

좁은 시골길을 따라 신나게 달리는 오토바이를 향해 달려오는 자동차를 마주 보게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나,

페넬로페 크루즈가 안고 있던 귀여운 여자아이를 광장에 내려준 걸 잊은 채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요.


곧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관객이 계속 긴장하고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어요.

이 영화는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이 가야 완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랍니다.


저도 영화 포스터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갔어요.

영화 제목부터 '비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잖아요?

과연 비밀이 무엇일지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신다면 엄청난 몰입감과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끈끈하지만 때로는 아니, 매우 빈번하게 너저분한 밑바닥을 서로에게 드러낼 일이 많은 대가족 문화는 이제 사라지고 있죠.


육 남매의 막내인 아버지, 다섯 자매의 넷째인 어머니 덕분에 저는 운 좋게도 대가족 문화를 체험할 수가 있었어요.


밥상에서 30년도 더 된 일을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숟가락을 던지며 일어나는 일도,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길거리에서 가방으로 머리를 때리며 서로에게 소리 지르며 싸우는 일도 일어나죠.


사회 또는 회사의 가'족'같은 분위기와는 비교를 할 수 없답니다.

나의 밑바닥보다 더 깊은 뿌리와 수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피붙이들은 아주 쉽게 나를 감정의 극한으로 몰고 가죠.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가족의 힘든 일을 함께 해결하는 게 의무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타인의 일과는 다르게 가족의 일은 곧 나의 일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대가족 문화를 겪어볼 수 있었던 것을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하지만 팍팍한 세상을 버텨낼 힘을 주는 신기한 존재들이죠.


이 영화의 감독 '아시가르 파르하디'는 분명 대가족 문화를 경험한 분 같습니다.

춤과 노래와 웃음이 가득한 결혼식 안에도 짜증을 일으키는 가족의 작은 말 한마디가 있음도 정확히 캐치하셨거든요.


또 놀라운 것은 감독님은 이란 출신이고 스페인에서 전부 촬영한 영화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는 감독님이 스페인 국적일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작은 스페인 마을,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 낡은 타일을 멋스럽게 담아내고,

손때 묻은 나무 창틀의 소리, 눈을 지그시 감게 만드는 동네 성당의 오래된 종소리 등

스페인 시골의 소박한 일상과 문화를 참 잘 담아내셨답니다.

파리가 윙하고 배우 앞을 지나가는 소리마저 자연스럽게 담아내서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유럽 작은 시골마을에 완전히 녹아들게 만들어줘요. 잠시 여행을 한 기분입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굉장했어요.


우리나라에는 박나래 닮은꼴로 알려졌고 주로 악역을 소화했던 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러 번 봤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정말 '민낯'으로 나옵니다. 두 배우 모두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죠.

이들이 동네 아저씨 아줌마처럼 완전히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친근한 모습으로 연기합니다.


너무 많이 울면 코 양쪽이 막히고, 볼 쪽까지 얼얼하게 아픈 데다가 목구멍까지 콧물이 들어차잖아요.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2박 3일을 운 것처럼 콧물이 들어차서 입속에서 울리고 말을 잇지 못하는 그 소리를 들려줍니다.


두 유명 배우 외에도 스페인 거리에서 데려온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주변 가족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연스럽게 있다가 큰 반전을 주는 배우들 모두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작은 정원에 옹기종기 모여 흥겨운 노래에 맞춰 방방 뛰며 노래하고 춤추는 대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결혼식날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나오잖아요.

안 그래도 극한 상황에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사소한 말 한마디에 폭발하고 서로에게 의심의 칼을 겨눕니다.

이게 가족 맞나 싶다가도, 가족이 아니면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있어요.


부모와 형제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좋은 결과물을 내일처럼 기뻐하죠. 반대로 가족이 아니라면 아무리 애타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엮이는 걸 꺼리게 되죠. 그렇다면 ‘가족’의 범위가 어디까지일까요? 꼭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점점 혈연의 범위가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대가족, 이제는 오랜 유산 같아져 버린 풍경이죠.

할머니, 할아버지 아래로 네다섯 명의 아들딸들과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복작거리며 엮이는 일이요.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와 더불어 내 일이 아닌 일에 말려들 가능성도 커져서 귀찮을 것 같죠? 그래도 외로운 세상에 내 편은 가족밖에 없는 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자, <누구나 아는 비밀>을 보기로 결정하셨나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영화 예고편도 보지 말고 잘 참으시길 바라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눈 가리고, 귀 막고 가신다면 감독님이 준비한 선물을 짠 하고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배우들과 감독님의 정보, 줄거리, 인터뷰, 영화 장면 해석 리뷰 등은 영화가 끝나고 보셔도 되니까요.

스포뿐만 아니라 간단한 줄거리 한 줄 모르고 갔을 때 제가 느꼈던 몰입감과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여러분도 맛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스포 없는 리뷰를 썼답니다.


*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좋은 영화 잘 봤습니다. 브런치팀께 감사드려요!


* 영화 상영 후, 천만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 감독님이자 <철원 기행>과 <초행>을 연출하신 김대환 감독님께서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셨어요. 관객과 대화하듯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관객들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답니다. <누구나 아는 비밀> 속 디테일을 짚으며 장면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스포가 포함된 내용이라 쓰지 못해 아쉽네요.

김대환 감독님께서 해주셨던 말 중 스포 없는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보통은 영화가 끝난 후 화면을 검게 바꾸고 흰 글씨로 제작진과 배우들의 명단 등 이 엔딩 크레디트로 올라가죠. 그런데 <누구나 아는 비밀>은 햇살이 눈부신 광장의 빛을 그대로 담아 하얀 화면에 검은 글씨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답니다. 각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영화의 장면들과 여운을 길게 남기려는 아시가르 파르하디 감독님의 디테일한 배려 같다고 말씀해주셨답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GV시간까지 작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답니다. 준비해주신 분들과 김대환 감독님께도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종원의 30년 후 프랑스 버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