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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Aug 13. 2019

방탄소년단 마주쳐도 모른 체 하라는데요?

<브링 더 소울:더 무비> 리뷰.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절망이 있네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한국어 노래를 랭크시킨 아이돌. 전 세계를 돌며 투어를 하는 대단한 아이돌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엑시트>가 예매율 20% 내외로 개봉 일주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데, 8월 1주 초 롯데시네마 앱 기준으로 <브링 더 소울: 더 무비>라는 영화가 예매율 30%였어요. <엑시트>의 예매율보다도 높더라고요. 대체 뭔 영화인지 궁금했던 찰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가 BTS(Bangtan Boys, Bulletproof Boys Scouts, Beyond The Scene 등의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 CGV의 약 150석 내외 크지 않은 규모 상영관이었으나 주말 조조 시간임에도 좌석이 반 정도 들어찼더라고요. 관객층도 다양했어요. 50~60대 여성, 10대 남성, 20~30대 커플 등등. 관객들을 관찰하며 광고 몇 개를 보니 영화가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창밖으로 오래된 건물들 지붕 사이 너머 에펠탑이 보이는 옥상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의 모습은 상상보다 소박했습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투명한 유리 와인잔을 집어 들고 건배하는 척 낄낄 웃으며 장난을 치는 모습은 보통의 20대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프로였어요. 공연을 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실수를 했다며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고 엉엉 우는 멤버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카메라가 아주 가까이 그들의 얼굴을 촬영해 잔주름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내심 '카메라 있으니 연기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세세하게 표정을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속상함과 분에 찬 모습은 진짜였어요. 수백 번 넘게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했던 그들 곁의 멤버들과 스텝들조차 눈치채지 못한 작은 실수를 본인이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왜 저들이 아티스트로 불리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장 3분의 2 정도 크기의 광활한 무대에서 아직은 비어있는 수만석 규모의 관중석 의자를 보며 진행하는 리허설 현장. 그들은 거대한 무대와 객석을 향해 "피가 끓는다"라고 소리치며 방방 뜁니다. 그리고는 수많은 팬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몇 시간의 공연 후에도 스스로의 모습을 다 함께 지켜보며 모니터링하고 다음 공연에 반영할 개선점을 찾더라고요.



사실 아이돌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성공한 아이돌들은 대부분 이들과 비슷한 패턴의 생활을 하겠죠. 그래서 BTS는 선택받은 존재들입니다. 아이돌 선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만 봐도 조각같이 잘 생기고 재능 있는 청년들 수백 명이 아이돌을 꿈꾸죠. 현재 데뷔한 아이돌 남자그룹들만 해도 수를 셀 수 없이 많잖아요. 그런 아이돌들 가운데서도, 전 세계의 가수들 중에도 방탄소년단은 최상위권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기획사의 기획과 안무 등이 훌륭한 탓도 있었겠으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이들의 단단한 내면이 성공에 한몫을 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고작 2시간짜리 다큐영화를 보고서도 느껴지는 이들의 에너지를 전 세계 팬들은 수년 전부터 알고 느끼며 공유하고 있었던 거겠죠.


이들에게서 '살아있음'의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24시간을 소중하게 쓰며 세상을 향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성직자의 모습까지 보였어요. 콘서트 중간에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그리고 저희를 이용하세요!"라고 소리치는 모습에서는 지금까지 종교가 해왔던 역할을 대신하는 이들을 봤습니다. 전 세계 팬들은 인터뷰를 할 때 "BTS덕분에 어두움을 극복하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BTS!"등의 방탄소년단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삶을 간증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으로 전 세계의 팬들이 하나가 되고, 평화와 사랑이라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이 전 세계인의 마음에 울림을 주듯 한국어로 된 이들의 음악이 종교와 인종을 넘어 수많은 이에게 '삶의 이유'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종교뿐만 아니라 UN연설 등을 통해 정치의 영역도 어우러져 더 큰 반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 영국, 프랑스, 바르셀로나 등 유럽 전역 순회 콘서트를 하며 중간중간 인터뷰와 촬영 일정을 소화하고 새로운 앨범을 위한 작사, 작곡 등 창작활동까지 하는 이들. 방탄소년단에겐 연애 등 평범한 젊은이의 일상을 즐길 시간은 없어 보였습니다. BTS의 멤버 RM은 "우리는 선택받은 삶을 살고 있어요. 7명만 하는 경험이 있지만 밖의 수천 명이 하는 경험은 못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어두운 현실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동시대의 청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합니다.


지난 앨범에서 국내 입시전쟁, n포 세대 등 현실을 반영한 노래를 만들었던 BTS는 인기가 높아지며 '영감을 얻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합니다. 전용기에 실려 쉴 새 없이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하며 세계 어디든 그들을 따르는 팬들 때문에 호텔 밖으로 나가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워져서 그렇습니다. 거리의 공기를 호흡하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월드스타의 고충이 보였습니다. 한적한 공원의 나무숲길을 걸으려면 매니저와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야 해서 죄송스럽다고 말합니다. 갇힌 일상 속에서도 나름의 창문을 만들어 일곱 명의 멤버가 의지하기도 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버텨내고 있더라고요.



영어가 유창한 멤버는 몇 안되지만,  바쁜 스케줄을 쪼개 영어와 프랑스어 문장들을 외우며 노력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래미상(Grammy Awards) 박물관에서는 깨알같이 쓰인 영어 안내문을 더듬더듬 읽으며 장난치는 모습도 보여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기보다는 확실히 모른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이더라고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기록들을 만드는 세계 최정상의 아티스트지만 이들은 여전히 겸손하고 배고파 보였습니다.


영화 끝무렵, 한 멤버가 "내 이름을 불러볼 때면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도 낯설어지는 때가 있다. 'Love your self'가 무슨 뜻일까 우리가 말할 자격이 있나 고민한다"라고 말합니다. 내 이름과 내 존재의 의미조차 알기가 힘든데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향해 자신들이 외치는 메시지가 과연 무엇인지 계속해서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거겠죠. 이런 깊은 생각을 가진 멤버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여러 빛깔의 음악 세계가 더 기대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몸의 관절과 근육 곳곳이 고장 나고 목소리가 안 나올 만큼. 그리고 작은 실수에도 후회스럽고 아쉬워서 눈물이 날 만큼 최선을 다 했던 콘서트가 끝나고 이들은 지글거리는 삼겹살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얼굴이 벌게져 회포를 풉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분무기로 간장을 뿌려먹는 오뎅과 김치찌개를 제일 먼저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전 세계를 다니며 수십억의 돈을 버는 이들을 바라보는 질투 어린 시선들이 의미 없어질 만큼, 이들은 매 순간 열심히 살고 고민합니다. <브링 더 소울: 더 무비>에서 삶의 강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더 소중히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이 들더군요.


이들은 7년 전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고 해요. BTS가 7년 만의 첫 휴가를 맞았으니 혹여나 길에서 멤버들을 마주치더라도 그냥 동네 젊은이가 옆에 지나가듯 배려해달라는 소속사의 공지가 있었어요. 몇 멤버를 제외하고는 BTS의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저 같은 사람도 있겠으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시겠죠? 분단위로 쪼개 쓰는 일정 중에 비행기에서 7명이 옹기종기 뭉쳐 불도 못 끄고 쪽잠을 청하더라고요. 1년에 한 번도 아니고 7년 만의 휴가라니 제대로 충전해서 다시 수많은 이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주길 바랍니다.


한 멤버가 '어제보다는 더, 내일보다는 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프랑스어로 열심히 외워 콘서트 마지막 인사로 팬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들으며 저게 무슨 뜻일까 여러 번 곱씹다 무릎을 탁 치게 됐습니다. BTS 일곱 멤버의 무대 뒤 일상을 담아 팬들에게는 선물 같은 영화고, 팬이 아닌 이들에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하며 나를 비춰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찾아 듣던 중 제 마음을 울린 가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시련이 있네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절망이 있네

우린 절망해야 해 그 모든 시련을 위해

- The Sea,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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