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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Nov 16. 2019

까만 젖꼭지 사건

사내아이들은 짓궂었다.


시골마을의 꼬마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물놀이를 할 때면 봉다리에 실뱀을 매달아 물에 띄워 여자 아이들을 놀래키며 킬킬댔다.


한참을 물에서 놀다 지칠 때쯤 되면 아이들은 물가로 나와 납작한 돌을 모았다. 고사리손에 납작하고 반반한 돌 서너 개를 쥐고 물제비질을 시작했다. 통통통 수면을 발판 삼아 서너 번을 튕겨올라 뻗어가는 돌들.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누구 돌이 멀리 가나 시합을 했다. 물 수제비에 열중해 옷가지와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이 마르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쯤.


아이들이 던진 돌 중 가장 멀리 날아간 하나가 퐁당 물속으로 빠지는 그곳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수면 위로 돌이 아홉 번은 다시 튕겨 올라야 닿는 물길 저 끝 즈음에 무언가 둥실 떠올랐다. 이내 아이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 채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 수제비 놀이도 슬슬 재미 없어지려는 찰나 새로운 놀잇감이 등장한 거다.


저 멀리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것을 누가누가 맞추나. 아이들은 조약돌에서 시작해 손바닥 만한 돌멩이를 그리고 양 손으로 들어야 될 만큼 더 큰 돌을 던져댔다. 물장구 소리와 까르르 웃는 아이들 목소리로 가득하던 마을 어귀 저수지는 전쟁터마냥 돌이 물살을 때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퐁당퐁당', '풍덩', '퍽'


물속으로 대포가 펑펑 떨어지듯 커다란 돌들을 그것을 향해 힘껏 던지며 맞추기에 열중하던 그때. 두둥실 그것이 별안간 뒤집혔다. 어린아이들의 맑은 눈에 왜 그리 또렷이 흐물하게 불은 코와 입이 보이던지. 아기 시신이었다. 50년 전, 버스도 안 다니던 전라남도 산골에는 수십 년 간 의문의 죽음은 없었는데 말이다. 옆집 곳간 쌀알 개수까지 안다는 시골 마을 아닌가. 열 살배기 아이들은 "누가 인형을 잃어버렸나…" 괜히 혼잣말을 하며 풍덩거리며 다시 돌을 던져 그것을 맞추기 시작했다. 둥실 그것은 다시 뒤집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직감은 있었는지 더 이상은 무시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아이들은 미동 없이 떠있던 허연 그것을 향해 서로의 어깻죽지와 팔뚝을 손가락 자국이 나도록 꽉 부여잡고 무거워진 물을 헤치며 다가갔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 보려 사내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머리채를 슬쩍 잡아당겼다. 계집아이들은 머리를 당기는지도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차마 그것을 쳐다보지 못하고 주변을 슬슬 곁눈질했다. 햇빛을 받아 투명한 물길 아래로 그것을 묶은 밧줄과 돌도 보였다


한 사내아이가 막대기를 가져와 밧줄에 묶인 채 수면 위에 떠 등을 보이고 있는 그것을 호기롭게 다시 뒤집었다. 가까이서 보니 분명 갓난아기의 시체였다.


그것을 뒤집은 막대기를 던지며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쫓기듯 물에서 뛰어나갔다. 아이들은 시내까지 가는 그 먼길을 뒤도 안 돌아보고 울며 달렸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과 머리칼은 신경 쓸 새도 없이 숨이 끊어질 듯 뛰고 또 뛰었다. 그때가 하루 두 번 있는 버스가 다닐 시간인지 아닌지는 따질 겨를도 없었다.


작은 경찰서 문을 힘껏 열어젖히고 아이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흥분한 아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횡설수설 물속에 애기 시체가 떠올랐다고 했다. 하루를 대부분 낮잠으로 보낼 정도로 평화로웠던 1960년대 산골마을 파출소에 살인사건 신고가 들어왔다니. 아이들 만큼이나 경찰들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으리라.


순찰차도 없을 만큼 하릴없던 시골길 위를 겁에 질려 눈물 콧물 훔치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린 경찰 두 명이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뛰어도 30여분은 족히 걸릴 만큼 한적한 마을 입구 저수지에 도착했다.


여느 때 와 같이 잔잔한 물결은 산과 구름만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다. 투명한 그 물 위에 떠있어야 할 물에 불은 아기가 사라진 것이다. 경찰들은 재차 진짜 본 게 맞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아이들은 침을 튀기며 저마다 본 그것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뱀을 봉지에 묶어 물속에서 놀기 시작한 그때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십 분 동안 남의 돌이 얼마나 멀리 튀기나, 내 돌이 몇 등을 했으려나 노려보던 물 위로 두둥실 떠오른 허연 무언가. 그것이 분명히 물속에서 나타났고, 다섯 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가 확인까지 하지 않았나.


꼬마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면서도 경찰들은 왠지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져 안도하는 눈치였다. 마을에 경찰서가 생긴 이래 가장 큰 사건이 될 뻔했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반면 아이들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허옇다 못해 보랏빛으로 불은 물컹한 그것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작은 마을은 아기 시신이 저수지 어귀를 걸어 다닌다는 소문과 함께 공포에 휩싸였다. 부모들은 자녀가 하는 말이 진실임을 직감했다. 아이들이 경찰을 데리러 간 한 시간 좀 안 되는 동안 시신을 버린 장본인이 거둬간 거 아니겠냐, 물살에 떠밀려 어디론가 다시 가라앉은 거 아니겠냐는 등. 마을 어른들은 실체 없는 공포를 잠재울 현실적인 추론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집어삼킨 소문의 힘이 나태한 경찰들의 등을 떠밀었다. 며칠 후 경찰은 다시 경찰서에 들이닥쳤던 아이들을 모았다. 그제야 시체가 나타난 물속 그 위치까지 경찰이 아이들과 함께 함께 들어가 보기로 한 거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다시 물에 들어가길 꺼려했고, 마을에서 담이 센 어른 몇 명과 경찰들이 긴 막대기를 들고 물아래를 휘휘 저으며 걸어 다녔다. 아이들이 정확히 기억하는 시신이 떠오른 그 자리를 중심으로 꽤나 먼 곳까지 반나절을 수색해도 돌까지 묶여있던 갓난아이 시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의문만 커져가던 며칠이 지나고. 그 아기 시신이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마을을 휘감던 공포는 광기가 되었다. 물에 떠올랐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던 죽은 아가 이야기는 작은 마을을 넘어 옆 마을과 건너 마을까지 넘어가 사람들의 일상에 두려움을 심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무속인을 불러 굿을 하고 혼령을 달래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로등 없는 밤길을 걸어 다니던 장정들은 괜스레 무서운 티를 안 내려 "시신을 버린 살인마를 찾아 족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일이 커졌다. 하릴없이 조용했던 시골 작은 파출소에서 감당할만한 사건이 아니었는지. 큰 경찰서에 파견된 여경들도 나타났다. 경찰들은 몇십 년 만에 회의란 걸 처음 해봤고, 마을 어르신들도 친목도모 외 이렇게 심각한 사건으로 머리를 맞대 본 적이 없었다. 열띤 토론 끝에 내린 결론.


분명 남몰래 아이를 임신했던 처녀의 소행이라는 거다.


거기서부터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아이를 쥐도 새도 모르게 낳아 버린 처녀가 분명 이 마을에 있을 거라면서. 경찰들은 마을의 미혼 처녀를 모았다. 마을 처녀의 반 정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부모님이 보내지 않았다. 옆집 병아리의 마릿수와 이름까지 꾀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처녀가 열 달 동안 배불러 다녔으면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다.


큰 마을에서 온 경찰들과 여경은 증거도 없이 반드시 범인을 찾겠다며 과장된 의지를 불태우고 다녔다. 경찰서로 오지 않은 처녀는 집까지 찾아갔다. 경찰들과 여경들은 작은 마을의 집안까지 쑤셔대며 결국 범인을 찾아냈다. 그들은 이장댁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열일곱 살 명순이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몰래 아이를 낳고, 태아를 돌에 묶어 마을 저수지에 빠뜨린 파렴치한 살인마로.


그렇게 하루아침에 명순이는 모두의 눈총과 수군거림을 영문도 모른 채 받기 시작했다. 명순과 매일같이 마을 개구멍으로 숨어들어 놈의 밭에서 과일 서리를 해 먹던 이장집 아이들은 펄쩍 뛰었다. 아기 시체를 찾기도 했던 이장집 아이들과 마을 꼬마들은 필사적으로 명순이를 변호했다. 경찰을 붙잡고 "명순 언니는 배가 부른 적이 없다. 저 작은 개구멍으로 임신한 사람이 어떻게 지나가겠느냐."고 엉엉 울며 말했다. 자신들이 명순 언니와 과일 서리를 해먹은 일급비밀까지 경찰에게 밝히면서.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명순 언닌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착한 명순을 대신해 외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을 어른들이 싸했다. 아이들보다 더 명순이는 배가 부른 적이 없다는 걸 알 텐데도. 경찰의 말에 따라 명순이가 범인인 것을 수긍하는 눈치였다.


명순 언니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잠시 대화만 했던 여경이 대체 어떻게 범인을 색출해낸 건지. 얼마나 뛰어난 독심술가인지 아니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잡은 건지. 아무튼 그 여경은 기세 등등하게 명순 언니가 아이를 버린 처녀라고 확신을 했다.


마녀사냥의 결과는 아이의 시신보다 더한 공포였다. 온 마을 어른들은 하루아침에 명순 언니가 지나가면 수군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수긍하게 만든 명탐정 여경의 추리 근거는 놀라웠다. 그녀가 명순을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는 바로 젖꼭지가 까맣기 때문이었다. 여경은 "아이를 낳지 않은 처녀의 유두는 살구빛인데 명순이는 애를 둘은 낳은 여자처럼 젖꼭지가 까맣다."라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본인이 봤던 처녀들 중 가장 젖꼭지가 까맣다고도 하며 확인사살까지 마쳤다.


어린것이 요망하게 임신을 하고 끔찍하게 자식을 죽였다는 소문은 마을 사람들의 밥상에 오른 반찬이자 안줏거리였다. 어른들은 남사스럽다는 듯이 주위를 살피며 젖꼭지가 애 서넛은 낳은 여자처럼 새까맣더라는 말을 속삭였다.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던 착한 명순 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팔려가듯 시집을 가버렸다. 끔찍한 마녀를 내쫓아야 하나 고민하던 이장댁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중매가 들어온 거다. 신랑의 이름도 묻지 않고 저 먼 마을로 유배 보내듯 명순이를 해치워 버렸다.


명순 언니는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한 채 죄인이 되어 다른 마을로 갔다.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것 말고는 별다른 뉴스가 없는 산골 마을들 사이로 서는 장터를 거쳐 명순이의 소문은 한동안 퍼져나갔다. 그래서 그 후에도 명순의 삶은 순탄치 못했단다.


당시 열 살이던 이장댁 딸내미는 이제 60대가 되었다.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피부 관리실도 열 만큼 열심히 살았다. 고객에게 특별 관리를 해 줄 때면 등과 목선을 따라 가슴 부분까지 마사지를 한다. 그래서 이장댁 딸은 여자들의 가슴을 볼 때면, 특히나 중고등학생들의 까만 젖꼭지를 볼 때면 명순 언니가 떠올라 울컥한단다. 사람 피부톤에 따라 다른 게 젖꼭지 색이거든. 이장댁 딸내미는 애를 둘이나 낳았지만 당신 유두가 허연 색인 걸 보고 아이 젖을 물리다 명순 언니가 떠올라 엉엉 울었단다. 시골 아이들과 철없이 개구멍을 기어 서리해먹으며 헤헤 웃던 언니는 얼굴도 다리도 까무잡잡했는데. 50여 년 전 무지했던 이들의 희생양이 됐던 너무나 착한 명순 언니.


지금 생각해도 아이 시체를 버릴 거면 남에 마을에 갖다 버리지 어떤 바보가 자기네 마을에 버리겠나 싶다. 명순을 형사사건 재판장에 세우지 못한 걸로 봐서는 명탐정 여경의 추리가 다행히도 당시 경찰 윗선에서는 반려당했나 보다. 차라리 정당한 재판이라도 받았으면 명순의 무고함이 세상에 알려졌으려나. 당시 죄 없던 그녀는 사회적 사형을 당한 거나 다름없다. 요즘 세상에도 성관계 횟수가 많으면 유두와 생식기의 색이 진해진다고 믿는 무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순이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부디 천진하고 순했던 그녀의 중년과 말년은 아픔을 뒤로하고 행복했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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