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도 벅찬 행복
아빠와 엄마 사이에는 오랜 시간 쌓인 의심과 불안이 있었다.
아빠는 몇 차례 엄마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엄마는 그런 불안 때문에 자신의 핸드폰을 없애고 대신 아빠의 핸드폰을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아빠 역시 엄마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핸드폰 관리를 엄마에게 맡겼다.
아빠 전화기에 전화벨이 울리면 엄마가 먼저 전화를 받으시고, 필요한 경우 아빠에게 전해 주신다.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인해 내게 걸려오는 전화의 발신자는 아빠이지만, 실제 통화 목소리는 엄마다.
아빠와 엄마는 가구 공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이전에는 가구점을 병행하셨는데 그 시절 내가 잠시 경리 일을 도와 계좌 이체와 각종 서류 작업을 맡아 처리했었다. 가구점은 화재로 인해 문을 닫았고, 아빠와 엄마는 가구 공장에 전념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계좌 이체나 서류 관련된 일들은 아직도 부모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신다.
육아를 하고, 살림을 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에너지가 고갈된 상황일 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마음 한구석을 부담스럽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휴대폰 화면 발신자 표시에 ‘아빠’라는 이름이 뜨는 순간, 오늘도 어김없이 쏟아질 여러 부탁들이 뻔하게 느껴지면서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계좌 이체 부탁, 지원금 신청, 병원 예약, 운동 신청 접수, 전자 세금계산서, 이체 내역 확인, 공과금 이체…. 손으로 꼽아보면 끝이 없고, 늘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외부 모임이나 사적인 일로 분주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울리는 벨소리와 함께 ‘아빠’ 발신자 표시가 뜰 때면 짜증이 치밀어 올라 ‘야릉탄’이 터질 것만 같다.
받지 않거나, 바쁘다며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마음 끙끙 힘들어하실 생각에 억지로 전화받고 알았다고 말할 때면, 나의 목소리도 날이 서 있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질 때면 엄마는 나에게 '귀찮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신다.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밀려오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표현할 길이 없어 예쁘게 대답하지 못하고 '알았어' 짧게 대답할 때도 점차 많아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