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늙어 갈 용기

나이 들어 보이는 건 정말 싫어!

by 해피러브

요즘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늘도 교회 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화단에 피어있는 꽃을 사진으로 남겼다.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 한편이 따스해진다.

작은 봉오리가 조심스레 세상을 향해 열리고, 내가 보지 못했지만 서서히 계속 피어나 어느새 찬란하게 만개한 모습일 테니 우리의 만남도 인연이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꽃잎은 차츰 힘을 잃고, 서서히 시들어가겠지?


나는 지금까지 시든 꽃을 카메라에 담아본 적이 없다.

초라하고, 지저분하고,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활짝 피어난 꽃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꽃은 가차 없이 자연의 섭리대로 시들기 마련이다.

만약 시들어 가는 꽃에게 감정이 있다면, 한때 화려했던 자신의 모습이 점차 소멸해 가는 과정 속에서 혹 슬픔을 느끼지는 않을까?

또는 자연의 순리에 묵묵히 몸을 맡긴 채, 뒤이어 피어날 새싹과 꽃봉오리들을 지켜보며 제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디게 사그라지기를 염원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꽃들 사이에선 봉우리나, 활짝 피어난 꽃이나, 시들어 가는 꽃이나, 이미 말라버린 꽃이나 서로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며 그 모습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순간이든 서로를 있는 그대로 귀하게 여기며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2025년 현재 44살이다.

2025년 2월부터 점차 흰머리가 돋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점차 새겨지고 있다.

미간에 깊어지는 주름을 방지하기 위해 2025년 처음으로 보톡스를 맞았다. 6개월에 한 번씩 맞으면 좋다며 거의 대부분 3개월~6개월 간격으로 시술을 한다며 권장했다.

미간에 깊어지는 주름은 화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니 꾸준히 보톡스 맞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왼쪽 앞부분에 흰머리가 도드라지게 많이 났다.

머리를 풀면 많이 티가 안 나지만, 머리를 묶으면 너무 많이 보인다. 염색하기 시작하면 한 달에 한 번, 또는 20일에 한 번 주기로 염색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보니 너무 귀찮고 계속 염색하다 보면 두피가 약해져서 탈모가 오는 건 아닐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이 때론 두렵고 어색하다. 내가 노화되는 모습에 복잡한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한 송이 꽃이 서서히 시드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듯, 나 역시 자연스러운 변화 앞에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 내 주름 하나하나, 흰머리 한 올 한 올이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고, 애틋한 추억인데 나는 왜 자꾸 더 어려 보이고 싶고,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에 저항하려는 걸까?

어색한 내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런 걸까?

점차 흰머리가 도드라지면서 지인들은 나에게 "흰머리 뽑아줄까?"라고 말하거나 "염색 안 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염색하긴 싫지만, 44살인데 흰머리 때문에 54살로 보이는 건 사실 더 싫긴 하다.

시들어가는 꽃의 담담함처럼, 나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늙어갈 수 있을까?

내 모습을 사랑하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다짐보다 주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조언에 하나하나 대응하며 이해를 구하고, 나에 대해 변호하는 일이 의도치 않게 번번이 발생하는 상황도 신경 쓰일 거 같다.

꽃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운명을 품위 있게 받아들이듯, 나도 내 삶의 모든 계절을 감사히 맞이하고 싶은데..

자연스럽게 늙어가기 위해선 확실히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 진짜 용기가 필요한 건,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세상과 마주 서는 일인 것 같다.

꽃이 저물어가는 순간에도 단 한 번도 자신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듯이, 나 역시 점점 변해가는 내 얼굴과 머리카락을 구태여 숨기지 않으려 애써보기로 한다.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기고, 더 이상 숨기기 어려우면 그냥 자연스럽게 다녀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시선, 가까운 이들의 조언 앞에서는 마음 한편이 자꾸만 흔들릴 거 같다.

때로는 “왜 염색 안 해?”라는 농담 섞인 물음에 가벼운 대답을 건네다가도, 혼자 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질 거라 생각이 든다.

아직은 나도 겉모습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깨닫는다.

하지만 내 삶의 온전함에 더 귀 기울이고 싶다. 시든 꽃잎마저 햇살 아래 투명하게 빛나듯, 내 시간도, 내 모습도 아름다운 기록이 될 테니까. 아직은 어색하고 두렵지만, 조금씩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말없이 내 곁을 지키는 주름과 흰머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첫걸음일지 모른다.

나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이에게, 조금은 초라해 보이거나 초췌해 보이거나 나이 들어 보여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만원이 아무리 구겨져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겉모습이 어떠하든 나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겉모습보다는 내면을 더욱 깊이 가꿀 시간이다. 꽃 한 송이가 피고 지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듯, 나의 매 순간 또한 찬란하며, 지금 이 순간조차도 충분히 빛나고 있다. 비록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여전히 속상하고 싫긴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억지로 저항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리라, 조용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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