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면 결국은 해낸다.
작년 겨울 춘천 여행을 갔었다.
케이블카 타고난 후, 펜션 체크인 일정이었는데 하늘이 흐리다.
케이블카를 타도 하얀 구름만 보일게 뻔하니 일정 취소!
케이블카 주변 데크 산책 후, 추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단 숙소 방향으로 이동했다.
펜션 체크인은 2시였지만, 펜션 근처 도착하니 1시다.
일단 가보자는 생각으로 체크인을 하려 했지만, 아직 청소가 안된 상태라 2시에 오라고 주인장님이 말씀하셨다.
펜션 근처에서 놀려고 했지만 온통 산밖에 없다!
근처 주변 관광지를 검색하다 알게 된 등선폭포.
"등선 8경"이 멋지다는 말에 일단 가게 된 목적지.
아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
장엄한 무협지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계곡물도 깨끗하고, 주상절리처럼 바위에 바람의 지나간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절벽은 위풍당당하다.
짧은 시간 이렇게 좋은 곳을 검색한 스스로가 대견해서 어깨가 우쭐!
눈이 덮여 있으니 더욱 신비롭고 운치 있다.
계곡 옆에 만들어진 계단에 오르려 했으나 워낙 눈이 많이 쌓여 있는 데다 미끄러워서 안전사고 위험이 느껴졌다.
우리는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은 계곡에 돌 던지고, 깨끗한 폭포를 멍하니 바라보고 나니 어느새 1시간이 금방 지났다.
우리는 체크인하고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렇게 아주 잠시 우리 마음에 임팩트 강했던 등선폭포.
그렇게 하루 이틀 평범한 일상 속에 춘천의 기억이 빛바랠 즈음 어느 날,
업데이트된 지인 프사에 크리스털 케이블카에서 찍은 사진이 보였다.
남편과 작년 겨울 타지 못했던 케이블카와 오르지 못했던 등선폭포 계단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6월 연휴 같은 코스로 춘천여행을 계획했다.
처음 계획은 삼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스카이워크를 걷고 내려와서 점심 먹고 등선폭포를 본 후 숙소 체크인 일정이었는데 검색하고 알아보다 보니 등선폭포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용화봉 정상이 나오는데 춘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용화봉에 먼저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였다.
남편은 크록스를 신었고, 아이들과 나는 단화를 신었다. 물 한병 들고 오르기 시작했다.
초입부터 웅장한 경관을 지나 드디어 궁금했던 계단 위를 오르고 나니 더욱 아름다운 자연풍경에 그야말로 힐링이 되었다. 거대한 폭포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듯 다양한 폭포 구경하는 재미에 아이들도 우리도 즐겁게 올라갔다.
큰 딸은 점차 가팔라지고 힘든 오르막을 볼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며 불평했고, 아주 천천히 쉬엄쉬엄 쉬면서 올라갔고, 작은 아들은 내가 제일 빠르다며 아빠와 같은 속도로 지치지 않고 오르면서 누나가 살쪄서 힘든 거라며 깐족거리기까지 했다.
아빠는 아들과 한 팀을 이루고, 나는 딸과 한 팀을 이뤄 둘씩 짝지어 등반했다.
어느 순간, 우리 뒤에 10여 명 가까이 되는 산악회원들이 바짝 다가왔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시끌벅적 와글와글 정신없는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천천히 쉬어가는 큰 딸에게 산악회원들이 가까워질 때면 빨리 일어나서 가자며 재촉했고, 절대 겹치거나 마주치지 않으려고 신경 쓰게 되었다.
계단도 많고, 산도 험하고, 점차 생각했던 것보다 코스가 더 길게 느껴졌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333 계단이 나오는데 이때 딸은 나를 원망하면서 서운하게 계속 불평했다.
"왜 아침부터 여길 가야 되냐" "여행 왔는데 덥고 힘들다" "다음엔 엄마만 등산해라"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놔두고 아빠팀보다 먼저 앞서기도 했다.
어느 순간 다가와 미안한지 살며시 툭 치며 미소 짓는 아이에게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딸이 계속 애교 부리니 못 이기는 척 마음을 풀었다.
3시간 후, 거의 정상에 다다랐다.
갑자기 아들이 턱 주저앉았다. 나는 "왜 그래 빨리 가~"라고 말했는데.. "으앙~~~~~~" 아들이 울기 시작했다.
정상이 거의 눈앞에 있고, 누나는 정상이 눈에 보이자 "내가 먼저 갈 거야~" 외치며 갑자기 충전되어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돌을 던지며 계속 연거푸 울어댔다.
나는 얼르고 달래서 겨우겨우 부추겨 아들과 정상에 도착했다.
아들은 엉엉 울고 아빠는 안아서 달래고, 딸은 목마르다고 하는데 물은 바닥을 보이고, 이제 내려가는 길에도 목마르다고 할 텐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간은 12시다.
아들은 뭐가 그리 억울한지 통곡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저런 상황들에 한숨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아들을 달랠 힘도 없었다.
멋지다는 경관이나 봐야겠다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마음에 바람이 불어오면서 전신에 혈액순환이 되었다.
아래를 바라보자마자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상에서 바라본 춘천은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아들에게 "여기 봐봐~"라고 말해도 아들은 서럽게 울기만 했다.
잠시 후, 10여 명 가까이 되는 산악회원들이 우르르 도착했다.
너무 멋있다며 서로 사진을 한 참 찍고 난 후, 가방에서 주섬주섬 맛있는 음식들을 서로 나눠주며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화기애애하게 활기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목이 터져라 울던 아들은 어느 순간 조용히 흐느적거리며 점차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울고 있는 아이들, 험한 산행길에 크록스를 신고 아들을 안고 있는 아빠, 얼굴이 빨개져서 힘없이 옆에 앉아 있는 딸 그리고 그 옆에 덩그러니 세워진 거의 없는 물병 하나.
산악 회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여기까지 이렇게 올라오다니 대단하네~ 혹시 빵 줘도 될까요?"
"오렌지 줘도 될까요?"
"물 줘도 될까요?"
아이들은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힘차게 말했다.
"너무 감사해요 다른 때 같으면 아니에요라고 말할 텐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에요~ 혹시 주실 수 있나요?"
산악회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빵과 물과, 크래미 그리고 오렌지까지 주셨다.
나도 너무 배고파서 먹고 싶었지만, 양이 많지는 않아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단체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말했더니 활짝 웃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이제는 아이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가 마음으로 계속 불편하게 생각했던 산악회원님들..
그분들께 이렇게 은혜를 입고 나니 더욱 죄송스러웠고, 많은 깨달음이 느껴졌다.
산악회원님들의 따스한 온정을 느끼며 선입견을 갖고 판단했던 나의 마음이 반성되었다.
남편은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떠올렸다.
처음엔 누나 놀리며 뛰어가던 아들은 정상 앞에서 방전되어 주저앉았고, 느릿느릿 불평하며 천천히 올라오던 딸은 정상 앞에서 전력질주해서 1등으로 올라오니 처음에 빨리 잘하는 것보다 꾸준하게 끝까지 정상에 오르는 자가 승리자라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눴다.
큰 딸은 "뭐든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멈추지 않으면 정상에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아무 말 없었지만 느낀 게 많아 보였다.
등산하며 인생을 배우다.
등산하며 인생을 배웠다.
계속하면 결국은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