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깊이 알려고 하면 다쳐!
나는 종종 서로의 존재가 친밀하고 돈독하고 소중하며 서로의 관계도 깊게 느껴지지만, 때때로 우리의 관계는 그저 습관에 의한 연결일 뿐임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그동안 오랫동안 함께했던 책 모임, 친구들, 그리고 친밀했던 단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순간과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아이가 2살쯤부터 책으로 함께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모여, 매주 한 번씩 만나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고 책과 연관된 독후활동 하며 아이들의 오감을 충족시키고, 유모차 끌고 함께 나들이 다니며 추억을 쌓았던 공동육아 모임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만큼이나 엄마들 또한,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그렇게 함께 키우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는 만남의 지속을 위해 '엄마들 책 모임'으로 형태를 바꾸어 한 달에 한 번씩 만남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이제 고학년이 되었고, 우리의 인연은 벌써 7년이 되어간다. 7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다.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 만남 안에는 분명 책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꽤 가까운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었고 가끔은 이렇게 이어온 우리의 관계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때때로 관계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곤 한다. 어느 날 책 모임 일정을 카카오톡으로 이야기 나누며 조정하는데 구성원 중 한 명 카카오톡 프로필 메인 사진이 하얀 국화 한 송이였다. 무슨 의미인지, 누가 돌아가셨는지 물어봤더니 저번 주에 친정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말했다. 7년 가까이 알고 지낸 지인의 어머니 부고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는데, 어째서 가장 힘든 순간을 나누지 않았을까. 우리의 관계는 그 정도 깊이가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우리의 관계가 무엇이었는지, 그 진짜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과 함께, 우리가 맺어온 관계의 진짜 모습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각자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형제자매가 몇 명인지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모였고, 그 이상 깊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게 맞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예의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지만, 이제 와서 그걸 물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무 말 없이 지나쳐 버렸다. "책 모임이니까 책에 관한 이야기만 하자"며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며, 그 이상의 깊은 관계를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후, 이건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또 생겼다.
그동안 모임을 이어오다 조금 멀리 이사하게 되어 약 1년 정도 모임에 자주 나오지 못했던 구성원이 한 명 있는데, 어느 날 보니 대화방에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대화방을 나간 것이다. "정모에 못 나간 지 1년 가까이 되었고, 단톡방에 있어도 참여하기 어려우니 이제 나갈게요. 시간 되고 기회 되면 만나요~" 이렇게 인사 정도는 하고 나가는 게 맞지 않나? 나는 또 혼자 멍해졌다. 관계가 멀어지는 방식은 때로는 이렇게 소리 없이 찾아오기도 하는구나 만났던 시간이 길어도 이렇게 허무함만 남길 수도 있구나 싶어 씁쓸했다.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공유했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이나 일상 밖에서는 연결되지 않는 관계. 그것은 '친구'일까, 아니면 그저 '모임 동료'일 뿐일까.
또 다른 모임에서 서로 긴밀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의 아이러니함도 있었다.
모임 안에서는 그렇게 편하고 즐거웠던 사람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너무 반가워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지만,갑자기 고개만 끄덕이고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상황이다. 모임에서처럼 반갑게 맞아주지 않고 특별한 대화도 오가지 않는 분위기에서 함께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짧은 시간은 지옥처럼 힘들고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나? 혼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일이 기억나지 않아 퉁명스러운 표정과 어색함이 더욱 황당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헤어지고 혼자 걸으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먼저 너무 반갑게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 행동을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어느 순간 또다시 친밀하게 이름 부르며 말을 걸어오면 나는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려움이 밀려온다. 상대방의 거리에 맞춰 나도 상황에 따라 거리를 두어야 할까, 아니면 먼저 계속 편하게 다가가야 할까? 내가 느끼는 친밀함의 깊이와 상대방이 느끼는 깊이가 다를 때, 그 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친밀한 관계 속 보이지 않는 38선.
그 위치가 어딜까?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가까움 속에서 거리를 느끼는 순간들.
이러한 경험들은 관계의 복잡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관계들 속에서, 내가 설 자리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있다.
관계가 제일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 깊어지는 관계는 부담스럽고 어렵고, 조심스럽다
너무 깊어지려 하지 말자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