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의 눈을 거두고
딸랑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림에 집중하던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다.
그 눈길에 나는 어깨가 저절로 굳어지며 어설픈 눈인사를 나눈다.
그리곤 빈 의자를 찾아 재빨리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방에서 스케치북과 볼펜을 꺼내고 받침대를 펼치면서 오늘 그릴 그림을 준비한다.
나는 늘 내 손끝에서 나오는 선이 남들보다 한참 서툴러 보인다는 사실이 창피했으므로, 그림을 펼쳐놓는 순간마다 속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실에는 한 주가 다르게 새 식구들이 늘어났다. 새로 온 사람들은 오는 날부터 바로 그림을 그렸고, 그들의 첫 그림은 일종의 테스트처럼 보였다. 나 역시 처음 왔을 때 정사각형을 그렸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것 또한 실력 점검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새로 온 사람들의 그림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 왔는데도 그들은 서슴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나 같은 도형이 아니라
현재 화실 사람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난이도의 그림을 말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 왔는데 어떻게 저렇게 앉은자리에서 몇십 분 만에 슥슥 그릴 수 있지.
나는 선 하나를 긋는데도 삐뚤빼뚤 얼마나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화실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미술 전공자였다.
이들 중에는 전시회를 여러 번 연 작가도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다.
그들은 창업을 준비하거나, 인물화에 대한 좀 더 깊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오는, 미술 전문가들이었던 것이다.
사실 여기는 나 같은 생초보가 올 곳이 아닌, 전문가 그룹이 모이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들을 같은 출발선에 세워 두고 스스로를 심하게 몰아붙였던 것이다. 내 선이 왜 저들의 선처럼 깊지 못한 지, 내 명암은 왜 이토록 어설픈지 자책하며 주눅이 들었다.
그들을 단지 나보다 먼저 와서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있는, 나처럼 평범한 생초보의 사람들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를 그들과 비교하고 었었나 보다.
그렇게 비교는 내 자존심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남의 장점은 점점 커져만 보이고, 내 부족함은 두 배 세 배로 부풀려졌다. 그 잣대 앞에서 나는 늘 모자란 사람, 뒤처진 사람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나만의 걸음을 잃어버린 어리석음이었다.
그러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애초에 나와 그들을 견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자기 길 위에서 수십 년을 걸어온 사람들이고, 나는 이제 막 볼펜을 잡은 초보자이다. 격차는 당연했고, 부족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비교는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아직 피지도 않은 가능성을 미리 꺾어버리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되자 나는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고, 비로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서툰 선조차도 지금의 내 실력이며, 그 자체로 기록할 만한 흔적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화실은 단지 그림을 배우는 곳만이 아니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남들과의 차이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란 오늘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그것이 삶이든 드로잉이든.
'서툴러도 괜찮아요, 인생도 드로잉도'
해피마망의 드로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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