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엄마의 생활철학 #16

- 터져버린 베갯속

by 해피마망

여름동안 베고 있던 메밀 베개 속통을 꺼냈다.

베갯닛은 벗겨서 세탁을 하고,

베개 속통은 살균 소독을 하려고 세탁기에 넣고, 에어살균 코스를 돌렸다.


내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삐삐삐~하는 세탁기 종료음에,

'다 됐군' 하면서 세탁실을 향했다.

뽀송뽀송하게 소독되었을 베개속통을 생각하며 세탁기 문을 연 순간.

아뿔싸!

이게 웬일이람!

세탁기 안은 온통 메밀껍질로 가득했다.

기겁을 해서 만져보니,

베개 속통의 지퍼가 열려서

안의 것들을 전부 토해냈던 것이다.


남편 것과 내 것, 두 개의 베개 안에서 나온 메밀껍질의 양이 세탁기 안에 산이 되었다.

베갯속 주머니와 메밀껍질이 축축했다.

나는 분명 에어살균 코스를 눌렀는데

웬일인지 세탁기는, 세탁-헹굼-탈수 기능으로 작동을 한 것이다.

코스대로 수많은 회전을 하면서

베갯속통의 지퍼가 열리고 이 어마어마한 참사가 일어난 것!


'아! 이것을 어떡한담.'


얼마 전부터 세탁 중 스스로 멈추기를 하더니 세탁기가 완전히 제 기능을 잃은 것인가?

그 와중에도 세탁기 안에 가득 찬 메밀껍질들이 정오의 햇빚을 받아 빛나는데 실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살다 보면 그렇다.

뭐 하나 간단히 정리하고 싶은데, 되려 원래 있던 것보다 더 많이 쏟아지고 스며든 채로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오래된 감정도, 누군가의 한마디도, 잊은 줄 알았던 기억도 그렇다.


처음엔 귀찮고 버겁다가도

손으로 하나씩 건져내다 보면

불현듯 알게 되는 것.

어떤 일은 흩어진 조각들을 통해서만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살균보다 중요한 건

내 안의 먼지를 기꺼이 들여다보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그 속을 열어 먼지와 허물을

털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삶의 순환이고,

늙어가면서 배우는 마음 청소의 지혜다.

사흘 동안이나 세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메밀껍질 산을 치우며 되새긴 깨달음이다.




PS:

세탁기 속 메밀껍질을 제거하는데 사흘의 시간이 흘렀고,

결국 모터 타는 냄새가 나면서 새 세탁기로의

교체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림살이의 순환은 끝을 맺었다.



<상큼 발랄 해피마망의 인생철학>을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저에게는,

제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이 저의 글쓰기 선생님이십니다.


댓글로 남겨주시는 말씀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가르침이 되고 있어요.


읽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배움을 주셔서 진심을 다해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월, 화, 수, 금, 토 연재
이전 16화<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