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마을에서 만난 손
배가 항구에 닿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바람도, 사람도 아닌 짭조름한 갯내음이었다.
지독하다고도 할 수 있는 냄새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냄새가 참 좋았다.
해초와 생선의 비린내가 한데 섞인 듯한, 한번 맡으면 며칠은 머릿속에 잔향처럼 남아있는,
바닷속 풍경 같은 냄새.
홍성에 있는 작은 섬 죽도에 도착한 나는 한적한 마을길을 걸었다.
오지 섬마을을 탐방하고 싶었던 나는
하나라도 눈에서 놓칠세라 마을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곳은 누군가 평생을 살아낸 자리구나'싶은 곳이 나온다.
낮게 엎드린 집들의 모양, 햇볕에 바랜 현수막, 곳곳에 걸린 생선 말리는 그물 채반까지.
모든 것이 소리 없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둑 옆에 펼쳐진 작은 공터에서 어구를 손질하는 부부를 보았다.
두 분은 마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물 한 뭉치를 두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은 굵은 실을 엮고, 아내는 그물의 빠진 결을 찾아 고르고 있었다.
말이 없어도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흐르는 것 만 같다.
손끝을 타고 흘러나오는 그들의 시간,
함께 살아온 세월,
서로의 숨소리에 길들여진 관계 같은 것들.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그들을 바라봤다.
마치 동화 속 풍경 같은 따뜻한 느낌이다.
오래 보기 민망해서 발길을 옮기다가 아무래도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아쉬움이 남을 거 같아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살짝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바닷바람에 그을린 얼굴이 단단해 보였다.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이 오히려 묘하게 편안했다.
"찍어유~"
그리고 다시 바삐 손을 움직였다.
군더더기 없이 명쾌한 대답을 들으며 마음까지 맑아진 듯 기분이 좋았다.
진짜 삶은 말보다 손으로 말하고, 관계는 목소리보다 조용한 시간으로 더 깊어지는 것.
늘 이어지는 말소리들에서 피로감을 느끼던 나는, 말없이도 하루를 이어가고, 소리 없이도 서로와 동행하는 이 부부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삶이란 크게 보면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그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삶.
관계보다 일상이 먼저 정리되는 삶.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사랑하기보다는
묵묵히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사랑이 되는 삶.
다음날, 배를 타고 섬을 떠나며 낡은 방파제와 어구 더미 사이에서 햇빛을 받던 두 사람의 등을 다시 떠올렸다.
작고 조용한 섬에서 그들은 오늘도 그대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손으로 하루를 이어가겠지.
그리고 나도,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내 하루를 손으로 잘 정리하며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지.
매주 월, 화, 수, 금,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일상을
한 끗 다른 시선으로 유쾌하게 풀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