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늘귀를 통과한 평안
어디선가 장사치의 소리가 들려온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데, 목소리가 묘하게 일정하다.
그런데 무엇을 파는지 상품명은 또렷이 들리지 않는다.
김밥이요~ 하고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맛있는 꿀떡이 왔습니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보아도 여전히 모호하다.
장사치의 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들이 포개진다.
멀리서는 매미소리인지, 나뭇잎이 서로 부대끼는 소리인지 쓰르륵, 사르륵하는 소리가 들리고, 가까이에서는 오랜만에 돌리는 세탁기 속 빨래가 출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낮게 틀어둔 음악까지 보태지니
이 모든 소리가 내 하루의 배경음악이 된다.
튀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밍밍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
꿰맬 옷이 있어서 바느질함을 꺼냈다.
집에 바느질 도구가 있긴 하지만, 과연 마지막으로 바늘을 잡아본 것이 언제였던가.
요즘은 웬만해선 바느질할 일이 없다.
옷감이 튼튼하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해질 때까지 한벌의 옷을 오래 입지도 않는다.
주말모임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다 보니 옷깃 한쪽이 느슨하게 늘어진 것이 보였다.
이 옷은 4년 전 길거리에서 오천 원을 주고 산 바지. 값이 싼 만큼 바느질도 조금은 허술했다.
그러나 나는 이 옷의 색과 무늬가 좋아서 특별히 애정하는 옷이다.
오바로크만으로 마감이 되어 자칫하면 올이 풀리고 늘어져 속살이 드러날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매력을 지닌 옷이다.
그럼에도 이 옷을 꿰매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지금 놀랍도록 집중해서 바늘을 꿰고 있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실이 바늘귀를 조용히 통과한다.
바늘 하나가 새삼 나를 자각하게 한다.
나는 이제 바늘귀를 꿰는데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예전엔 실을 끊을 때 따로 도구가 필요 없었다.
그저 이로 톡, 끊으면 되었지.
그러나 오늘 나는 작은 가위를 집어 들고 조심스레 실을 자른다.
시간이란 참,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장면으로 만들어 주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바느질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는 수련자의 자세가 되었다.
평범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내 삶의 질감을 만든다.
바늘 끝에서 비로소, 나는 노년의 나를 새삼 자각하며 욕심을 내려놓고 평안을 얻는다.
그리고 멀찍이서 들리던 스피커 소리의 정체를 마침내 알아냈다.
장사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달고 맛있는 수박이요~"